「왕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236
한자 王-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천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2년 - 「왕재」 김주영으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 「왕재」 『경산의 전설과 민담』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왕재」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 「왕재」 『경산문화대사전』에 수록
관련 지명 왕재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천1리
채록지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천1리 지도보기
성격 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원효|요석공주|설총|무열왕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담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천1리에 있는 오솔길에 전해지는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천1리에 자리한 반룡산(盤龍山) 계곡을 오르는 오솔길 중 하나를 왕재라고 부른다. 신라 때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이 길을 넘었다고 해서, 그때부터 ‘왕재’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채록/수집 상황]

「왕재」 설화는 2002년 김주영[남, 당시 64세]에 의해 채록되었으며, 2003년 경산문화원에서 간행한 『경산의 전설과 민담』에 설화의 내용이 수록되었다. 또한 2005년에 간행된 이동근·김종국의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와 2009년에 경산시립박물관에서 발간한 『경산문화대사전』에도 이와 같은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 시대 때의 일이다. 신라 무열왕[602~661]의 딸인 요석공주(瑤石公主)[?~?]가 만삭의 몸으로 원효(元曉)[617~682]를 만나기 위해 초개사(初開寺)를 찾았다. 하지만 원효는 요석공주를 만나주지 않았고, 요석공주는 원효의 고향인 불지촌에서 설총(薛聰)을 낳았다. 막상 아기는 낳았지만, 양육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석공주는 주변 스님들의 안내로 지금의 용성면 용전리에 소재한 반룡사(盤龍寺)에 머물게 되었고, 이곳에서 설총은 유아기를 요석공주와 함께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의 무열왕 내외가 몰래 딸 요석공주와 손자 설총을 만나기 위해 경주에서 산내 지역을 거쳐 반룡사 뒷산을 넘어왔다. 이때 반룡사 뒷산을 넘어오는 길을 무열왕 내외가 산을 넘어온 길이라고 해서 ‘왕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산 정상에 어느 왕의 태를 묻었다고 하여 ‘왕재’라 칭하여진다고도 한다.

[모티프 분석]

「왕재」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설총의 탄생’, ‘신라 무열왕이 넘어온 길’ 등이다. 경산은 원효, 설총, 일연(一然)[1206~1289] 삼성현이 태어난 지역으로 이들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으며, 「왕재」 설화도 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왕재」 설화는 경산시 용성면 용천1리에 있는 한 오솔길이 원효대사, 그리고 원효의 아들인 설총과 관련 있음을 밝히고 있는 지명 유래담이다. 요석공주와 원효가 연을 맺어 설총을 낳고 반룡사에 머무르게 된 이유가 설화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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