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7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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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陽縣社稷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서사리 196-1번지 일원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창국 |
[정의]
경산시 하양읍 서사리에 있는 조선 시대 하양현의 사직단
[개설]
사직단은 국토의 신[社]과 오곡의 신[稷]에게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제례공간으로 조선 시대 지방현에서 관아, 향교와 더불어 중요한 시설이었다. 지방의 사직단은 읍성의 서쪽에 있었으며, 단(壇)은 사단과 직단이 있는 도성과 달리 사와 직을 한 단으로 같이하고, 사는 단 위 동쪽 가까이에, 직은 단 위 서쪽 가까이에 두었다. 사직의 제사는 종묘와 함께 길례 대사의 하나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이였으며, 지방의 주·현에서는 봄·가을에 사직제를 지냈다. 사직단은 일제 통감부가 1908년 칙령으로 폐지시켜 현재 전국에 남아 있거나 복원된 곳은 서울과 대구 노변동,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 경상남도 창녕, 전라북도 남원,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 등 6곳 정도이며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화성지(花城誌)』에 의하면 하양현 사직단은 현의 서쪽 3리에 있었다고 하며, 1905년 하양군에서 만든 사직단의 진설도(陳設圖)[각종 의례에 필요한 기물과 음식, 위패를 늘여 놓은 그림]와 홀기(笏記)[의식의 순서 기록]가 현재 하양향교에 전해지고 있다.
[위치 및 현황]
하양읍 서사리에 있는 우미린 더 센트럴 아파트 도로 건너 서북쪽에 서사근린공원이 있는데, 공원 북서쪽[금호어울림 아파트 동북쪽]의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말단부에 사직단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 약 1.4㎞에 하양향교가 있다. 사직단 유적은 2021년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현지 보존 조치가 취해졌으며, 주변은 2021년 현재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조사지역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이 시행하는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개설 예정 부지의 3구역[서사리 유물 산포지1] 중 동쪽 구간인 3-Ⅱ구역이다. 화랑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19년~2020년까지 발굴조사되었으며, 조사결과 초기 철기 시대 목관묘 5기·삼국 시대 석실묘 1기·조선 시대 추정 하양현 사직단이 확인되었다.
사직단은 무학산[하양현 진산]의 남쪽 사면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방형으로 둘려진 담장[壝] 안에 제단이 설치된 형태이다. 제단의 북서쪽 모서리 부분에는 예감이 있으며, 남쪽에는 문지가 있고, 이외에 보도·배수로·외곽담장[周垣] 등이 설치되어 있다. 예감[瘞埳)[제사를 마친 후 축문, 혼백 등을 태우고 묻기 위한 구덩이]은 평면 방형으로 길이 90~109㎝, 깊이 63㎝ 규모이다. 사직단의 규모는 담장을 기준으로 동서 길이 19.3m, 남북 길이 20.7m이다. 조성 시기는 암거(暗渠)에 사용된 평기와의 문양으로 볼 때 16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하양현 사직단은 당초의 모습은 잃었으나 『국조오례의』에 나와 있는 사직단 배치의 전형이 잘 남아 있어 향후 복원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되며, 대구 노변동의 경산 사직단과 함께 경산 지역 사직단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경북향교자료집성1』(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2)
『대구 노변동 사직단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 2005)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개설공사부지 내 3-Ⅱ구역(서사리유물산포지1)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화랑문화재연구원, 2020)
「경산 서사리유적에서 16세기 조성된 하양현 사직단터 확인」(『매일신문』, 2020. 10. 2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