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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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愼弦重 |
영어음역 | Sin Hyeonjung |
이칭/별칭 | 두멧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양판석 |
출생 시기/일시 | 1910년 8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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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7년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6월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11월 22일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10월 17일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 |
성격 | 독립운동가|언론인|교육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조선통신사 편집장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활동 사항]
신현중(愼弦重)은 1910년 8월 4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에서 태어났다. 진주와 통영에서 공립 보통학교를 나오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7년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30년 6월 반제경성도시학생협의회(反帝京城都市學生協議會)를 조직했고, 1931년 4월에는 조규찬(曺圭讚) 등과 함께 반제부(反帝部) 조직을 바탕으로 출판 노동조합을 이끌며 비밀리에 항일 활동을 하였다.
1931년 10월 일본의 만주 침략을 반대하는 격문을 서울의 곳곳에 배포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된 후, 1932년 11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언도받았다. 석방된 뒤 1935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고, 1945년 해방 후 조선통신사 편집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부터 1961년까지 교육계에 몸담았으며, 1980년 10월 17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저술 및 작품]
1993년 신현중(愼弦重)의 글을 모은 『두멧집』이 간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