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윤씨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전하는 옛 문서. 고문서(古文書)는 보통 1910년 이전까지 작성된 문서를 말한다. 발급자와 수취자, 작성 목적에 따라 공문서와 사문서로 나뉘고, 다시 형태에 따라 낱장 문서와 성책 문서로 나뉜다. 혹은 고문서를 정리하는 방식에 따라 교령류(敎令類), 소차계장류(疏箚啓狀類), 첩관통보류(牒關通報類), 증빙류(證憑類), 서간통고류(書簡通告類), 치부기...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전하는 옛 문서. 고문서(古文書)는 보통 1910년 이전까지 작성된 문서를 말한다. 발급자와 수취자, 작성 목적에 따라 공문서와 사문서로 나뉘고, 다시 형태에 따라 낱장 문서와 성책 문서로 나뉜다. 혹은 고문서를 정리하는 방식에 따라 교령류(敎令類), 소차계장류(疏箚啓狀類), 첩관통보류(牒關通報類), 증빙류(證憑類), 서간통고류(書簡通告類), 치부기...
-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고산 윤선도의 문학 세계를 조명하고 계승하고자 여는 축제. 전라남도 해남군은 해남윤씨(海南尹氏)의 본관이며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지은 「오우가」, 「산중신곡」의 배경이기도 하여 남도 문학의 요람이자 문향으로 불리고 있다. 해남군에서는 윤선도의 문학 세계를 알리고 보존하고자 많은 프로그램을 동반한 축전인 고산문학축...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확인되거나 제작된 서책 유형의 사료. 고서(古書)는 출판 시기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한국고서동우회에서는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을 고서로 규정하였고, 한국인쇄문화사에서는 1910년을 기준으로 직접 쓰거나 베끼고 목판을 새겨 활자로 찍어낸 모든 책이라고 규정하였다. 고서의 종류는 사본(寫本)과 간인본(刊印本)이 있다. 사본은 고본(稿本)[원고...
-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 사이에 건립된 상류층 가옥.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상류층 가옥은 조선 후기 이후로 근대에 이르는 사이에 건립되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은 양반가 고택으로, 경기도에서 옮겨와 중부 지역 특징인 미음(ㅁ) 자형 배치 구조이다. 해남 공재 고택, 해남 윤철하 고택, 해남 정명식 가옥, 해남 민정기 가옥은 양반...
-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 사이에 건립된 상류층 가옥.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상류층 가옥은 조선 후기 이후로 근대에 이르는 사이에 건립되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은 양반가 고택으로, 경기도에서 옮겨와 중부 지역 특징인 미음(ㅁ) 자형 배치 구조이다. 해남 공재 고택, 해남 윤철하 고택, 해남 정명식 가옥, 해남 민정기 가옥은 양반...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구시리(九市里)는 아흐레 만에 서는 장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구시(上九市)마을은 아흐레 만에 서는 시장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는, 구시저수지가 축조된 후 구시저수지를 경계로 구시마을이 둘로 나눠졌는데, 저수지 위쪽이라서 상구시로 명명되었다고도 한다. 하구시마을은 아흐레 만에 열리는 시장 아...
-
조선 후기 해남윤씨 가문의 종부 광주이씨가 지은 자전적 수기. 『규한록(閨恨錄)』은 해남윤씨 가문의 며느리인 광주이씨(廣州李氏)가 대종가 종부의 대임을 맡게 되면서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사연들을 한글로 쓴 서간체 수필 형식의 수기이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사대부가의 부인들이 쓴 규방문학 중 궁중의 이야기를 기록한 『한중록(閑中錄)』이나 『계축일기(癸丑日記)』 등에 비해...
-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왼쪽에는 옥금산(玉金山)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주령산(珠嶺山)이 싸고 있어 풍수적으로 당(塘)[연못]과 같다고 하여 금당(金塘)이라 불린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진도군 백도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금당리, 하금당리, 갈두리를 묶어 해남군 북평면 금당리로 개설되었다. 1983년 북평면에서...
-
전라남도 해남군에 전하는 문자로 쓰인 기록물. 고려시대까지 현산면 부근에 있던 해남현(海南縣), 마산면 부근에 있던 죽산현(竹山縣), 문내면과 화원면 일대에 있던 황원군(黃原郡)이 조선 초에 해남현으로 통폐합되었다. 이후 해남현이 해남군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일부 지역이 진도로 넘어가고 영암·강진 땅 일부가 해남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해남의 기록유산으로...
-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주로 생산되는 특산품과 이를 이용해서 만든 향토 음식. 땅끝 해남은 중생대 우항리 공룡화석지, 천년 고찰 대흥사, 육백년 된 윤선도 종가집,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이 겹쳐서 흘러간다. 이른 봄 어린 마늘밭에 난 풀을 뽑는 농민의 주름진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도 느긋하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푸름과 여유를 잃지 않는 곳, 순박한 사람들이 들과 바다를 끼고...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펼쳐진 차를 중심으로 한 초의, 추사, 소치 등의 교유. 조선 중기 이래로 일부의 선승(禪僧)과 문인들에 의해 겨우 계승되고 있던 음다풍은 19세기에 이르러 해남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성행하게 된다. 조선 후기의 차는 호남을 중심으로 융성하였다. 호남은 다승(茶僧)인 초의(草衣) 의순(意恂)[1786~1866]의 생(生)[무안군 삼향면]과 사(死)...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문화 예술 시설. 땅끝순례문학관은 해남의 문학사를 정립하여 해남의 문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지역문인들의 작품과 문학 사료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문학관이다. 해남 문학의 비조라 할 수 있는 금남 최부, 호남 시학의 스승인 석천 임억령, 독보적인 기록 문학가인 유희춘, 인간애를 표현한 삼당시인 백광훈, 조선의 으뜸시인 윤선도 등 조...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문학을 비롯하여 음악·미술·연극·무용 등의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일제 강점기와 8·15해방. 6·25전쟁 등의 격동 속에서 민족 자존심 회복과 전통문화 재건이라는 문화 의식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복지관·문예관·공보원·문화원 등 다양한 명칭으로 자생적인 문화 시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해남...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문학을 비롯하여 음악·미술·연극·무용 등의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일제 강점기와 8·15해방. 6·25전쟁 등의 격동 속에서 민족 자존심 회복과 전통문화 재건이라는 문화 의식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복지관·문예관·공보원·문화원 등 다양한 명칭으로 자생적인 문화 시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해남...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여 이루어지는 미적 표현. 조선 후기 서화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로부터 시작된 해남의 미술은 일제강점기 서양화의 유입으로 전통 양식과 외래 양식의 갈등을 겪으면서 서양의 근대적 양식을 수용하였다. 1970년대 이후 지역의 화단이 활성화되었으며 1990년 이후에는 해남미술협회[한국미술협회 해남지...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전체가 반석(磻石) 위에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계곡천이 흐르고 있어서 반계(磻溪)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청계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악리와 대운리, 방춘리의 각 일부와 비곡면의 성진리 일부와 마포면의 대월리 일부가 병합되어 해남군 계곡면 반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반계마을, 대운마을...
-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의 본관은 해미(海美)이며 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이다.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백세인(白世仁)이며, 아버지는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이다. 어머니는 정강왕의 딸 하동정씨(河東鄭氏)이며, 부인은 선전관 윤관중(尹寬中)의 딸 해남윤씨(海南尹氏)이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백광홍(白光弘), 백...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 백포리(白浦里)는 백방산 밑에 있는 포구라 하여 백포 또는 백방포라 불렸다. 일설로는 백포마을을 바라보면 하얗게 보여 백포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간척되기 이전 포구 연안에 굴과 꼬막 껍데기가 패총처럼 쌓여 있어 하얗게 보였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모리와 장등리를 병합하여 백포리라 하고 해남군 현산...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백호(白虎)라는 이름은, 마을이 풍수상으로 원경산[뽀쭉산]의 오른쪽[백호]에 자리잡고 있기에 붙여졌다고 한다. 본래 망골, 양지물동, 새터를 합하여 백호동, 백오동이라 칭했는데, 망골은 백호의 큰마을로 고려시대에는 옥산현과 이웃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옥천면소재지였다.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금당리에 있는 1938년 건립된 해남윤씨 재실. 북일 금당 해남윤씨 재실(北日金塘海南尹氏齋室)은 추원당(追遠堂)과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중부 지방 가옥 형태인 ㅁ자형을 하고 있다. 추원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삼문은 소슬삼문이다. 편액 글씨는 근대 서예가 동양 이수형의 글씨이다. 북일 금당 해남윤씨 재실...
-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윤씨 어초은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비자 열매를 이용한 대표적인 접빈 음식. 해남윤씨 어초은(漁樵隱) 종가는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와 공재 윤두서(尹斗緖)[1668~1715] 등을 배출한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종가이다.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어초은 종가의 종택은 녹우당(綠雨堂)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녹우당 뒤편의 비자...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 지형이 소 멍에 모양이라 하여 가치(駕峙)라고 부르다가 마을이 가재 위쪽에 있다 하여 웃가재, 한자로는 상가(上駕)라 한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해남군 녹산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점리, 계동리, 신촌리, 중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상가마을,...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 해남군 은소면 원서정마을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산리, 장춘리, 운곡리와 패소리, 등리, 우분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서정마을, 치소마을, 장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서정마을에는 1600년경 해남윤씨와 이씨, 박...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석교리(石橋里)는 마을 앞에 돌다리가 있어 ‘독다리’, ‘독나루’, ‘석교’라 불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덕리, 일정리, 신창리, 석교리와 사교리·충평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석교마을, 심동마을, 신창마을, 일정마을, 목삼마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석호리(石湖里)라 붙여졌다. 본래 해남군 화일면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흑석리, 장명리, 대인리, 대지리, 주천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석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흑석(黑石), 좌일(佐日), 대지(大只)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흑석마을은 약 1400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림공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도 암행어사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비. 서림공원 내에 있는 17기의 비 중 어사 불망비는 3기가 있다. 심상학(沈相學), 이면상(李冕相), 이승욱(李承旭)은 조선 후기 전라도 암행어사로 활동한 인물들이다.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조선시대 왕의 측근의 당하(堂下)[정3품 하계 통훈...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성산리(星山里)는 성산(城山) 아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남윤씨의 꿈에 산 위에 별이 떨어져서 성산(星山)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또 옥천면 내 ‘산’ 자를 가진 여덟 개 마을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성산(星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는 성씨. 고려 건국 이전에 성씨(姓氏)는 왕족과 극히 일부의 중앙 귀족들만이 가지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940년(태조 23) 개국공신들에게 땅과 성씨를 하사하면서부터 출신지와 거주지를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世居姓氏)가 비롯되었다. 이후 과거제의 영향으로 관료 제도가 보편화...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소나무가 많은 산이 있다 하여 송산리(松山里)[화산면]라고 하였다. 본래 해남군 화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치리, 과목리와 봉황리, 주천리, 갑길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송산마을, 탄동마을, 시목마을, 주천마을 등의 자연마을...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먹는 일이나 먹는 음식을 둘러싼 생활과 풍속. 식생활은 지리적·기후적 조건과 같은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성을 띠며, 역사를 비롯한 사회 문화적 환경과도 상관성이 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식생활은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생활과 흐름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해남 지역만의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또한 변화하고 있다. 해남군...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먹는 일이나 먹는 음식을 둘러싼 생활과 풍속. 식생활은 지리적·기후적 조건과 같은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성을 띠며, 역사를 비롯한 사회 문화적 환경과도 상관성이 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식생활은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생활과 흐름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해남 지역만의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또한 변화하고 있다. 해남군...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큰 들가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하여 새들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바꿔 신평리(新坪里)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남군 비곡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월리, 해정리, 소은리, 황죽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계곡면 신평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신평마을 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평마을은 1600...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지명총람』에 의하면 수렁이 많으므로 수실, 또는 화곡이라 하며, 또는 안동부사 윤복이 살았으므로 안동태 또는 안동이라고 하였는데, 이 중 『지명총람』에서 말하는 안동부사는 해남윤씨 윤효정의 넷째 아들 행당 윤복을 말한다. 본래 해남군 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해남면 안동리로 개설...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지명총람(地名總覽)』에 의하면 연못이 있어 연못골 또는 연동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송리와 연동의 이름을 따서 남연리라 하였다가, 1949년에 연동리로 고쳤다. 한편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지금의 연동리 지역에 현일면의 조막동·백련동·죽음리가 있고 1896년(고종 33) 『해남읍지』에는 조...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영암군 옥천시면의 지역으로 영신원(永信院)이라 부르다가, 영신으로 바뀌었다. 마을 이름에 원(院) 자가 붙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묵고 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신리(永信里)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안리를...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오래전 마을에 살았던 덕망가가 외롭고 괴로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마을 사람들이 그 덕망을 사모하여 마을 이름을 전옹(田翁)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3년 영숙이라는 사람이 자기 호의 영(永) 자와 밭이 많다고 하여 전(田) 자를 더하여 영전(永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용동(龍洞)마을은 용이 승천하는 형국으로 생겼는데, 용둠벙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룡골, 비룡동, 비렁골로 부르다가 용동이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림리, 이목리, 자경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로...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용태산 아래에 있어서 용산(龍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마을 형국이 용의 분비물 같아 땅이 비옥하고, 가뭄도 타지 않아 해마다 풍년을 누렸다고 한다.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암리, 문촌리, 용정리, 야곡리...
-
전라남도 해남에서 시어머니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아 한식 된장의 명인이 된 한안자의 동국장 이야기. 우리나라 장(醬)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뜻으로 선장양(善醬釀)이라고 하였고, 고구려 안악3호분 고분벽화 등에는 장을 보관한 듯한 옹기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데에서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월호마을은 ‘노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노하(路下)라는 이름이 나타나고, 월호(月湖)라는 지명도 나온다. 마을 입향조가 월채산에 떠오르는 달이 연못에 비추는 것을 보고 시를 짓다 마을 이름을 ‘월호(月湖)’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본래 해남군 화이면 지역이었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
-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
-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
-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광계(尹光啓)[1559~?]는 많은 시문을 남겨 해남윤씨(海南尹氏) 집안 문인학풍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해남의 귤정(橘亭) 윤구(尹衢), 귤주(橘洲) 민여안(閔與顔)과 함께 3귤로도 불리고 있다. 윤광계의 자는 경열(景說), 호는 귤옥(橘屋)이며,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해남윤씨 득관조인 윤효정(尹孝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구(尹衢)[1495~?]는 해남윤씨(海南尹氏) 문중에서 가장 먼저 중앙 관계에 진출한 인물이다. 문장이 뛰어나 광양 최산두(崔山斗)[1483~1536], 해남의 유성춘(柳成春)[?~?]과 더불어 호남삼걸로 불렸다. 또한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을묘명현(乙卯名賢) 중 한 사람이다. 윤구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형중(亨仲),...
-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구(尹衢)[1495~?]는 해남윤씨(海南尹氏) 문중에서 가장 먼저 중앙 관계에 진출한 인물이다. 문장이 뛰어나 광양 최산두(崔山斗)[1483~1536], 해남의 유성춘(柳成春)[?~?]과 더불어 호남삼걸로 불렸다. 또한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을묘명현(乙卯名賢) 중 한 사람이다. 윤구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형중(亨仲),...
-
고려 후기 해남 출신 윤광전이 아들 윤단학에게 노비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 윤광전(尹光琠)은 해남윤씨(海南尹氏) 중시조로 영동정공(令同正公)이라고 불린다. 고려 공민왕 때 사온직장영동정(四醞直長令同正)을 지냈으며,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박환(朴環)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윤광전의 아들인 윤단학(尹丹鶴)은 고려 우왕(禑王) 때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
-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이자 화가.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 삼재로 손꼽힌 문인화가이다. 당시 중국의 영향 속에 있던 회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와 풍속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였다. 윤두서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또는 종애(種涯)이다. 고산(孤山) 윤...
-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복(尹復)[1512~1577]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원례(元禮), 호는 행당(杏堂) 또는 석문(石門)이다. 해남윤씨의 파시조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과 정귀영(鄭貴瑛)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윤구(尹衢)·윤행(尹行)과 함께 과거에 합격하여 해남윤씨 집안의 기틀을 다졌다. 윤복은...
-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이자 시조작가.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러 벼슬을 역임한 문신이자 국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문인이다. 윤선도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아버지는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윤유심(尹唯深)이고 어머니는...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고산 윤선도가 남긴 수적 및 관계 문서. 윤선도 종가 문적(尹善道宗家文籍)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국문학사의 최고 시문학인으로 평가받는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 가 직접 손으로 쓰거나, 엮어 펴낸 수적들과 관계된 여러 문헌들을 일괄하여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2호로 지정...
-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의중(尹毅中)[1524~1590]은 중앙의 여러 요직을 거치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여 해남윤씨 가문이 16세기 명문 사족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윤의중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천(駱川) 또는 태천(駘川)이다. 할아버지는 해남윤씨 득관조인 윤효정(尹孝貞)이며, 아버지는 윤구(尹衢)이다. 고산(孤...
-
조선 후기 해남윤씨 가문의 천주교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1759~1791]의 본관은 해남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해남윤씨 출신으로 증조부가 윤두서(尹斗緖)이다. 아버지는 윤경(尹憬)이며, 어머니는 권기징(權沂徵)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종연(李宗延)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정약용(丁若鏞)과는 외사촌간이며, 1801년 신유...
-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인. 윤효정(尹孝貞)[1476~1543]은 해남윤씨 해남 입향조이자 어초은파(漁憔隱派) 파조이다. 해남윤씨가 지역의 명문 사족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닦았다. 윤효정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희삼(希參), 호는 어초은(漁憔隱)이다. 아버지는 윤경(尹耕)이며, 부인은 정귀영(鄭貴瑛)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이다. 윤구(尹衢), 윤행(尹...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율동마을은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 밤골이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율동(栗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덕리(龍德里)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가 개설되었다. 율동리에는 율동마을과 용덕마을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율동마을은 1540년 무렵 송산리 시목마을에서 해남윤씨 윤후강(尹厚綱)이...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각종 의례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옷. 해남 지역에서는 관혼상제 시에 예를 갖추고자 할 때 의례복을 입는다. 전통적인 의례복은 한복을 위주로 하면서 관복과 도복을 착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현대에는 점차 의례복도 서양복의 영향을 받거나 전통 복식과 서양 복식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상례 때 망자가 입는 수의, 혼례의...
-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풍수가. 이의신(李懿信)[?~?]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풍수가였다.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태생으로 관련 설화가 많이 전한다. 선조 때부터 왕가의 묏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선조는 이의신에게 벼슬을 내려 자신의 옆에 붙잡아 두었다. 광해군 때는 교하 천도설로 조정을 발칵 뒤집기도 하였다. 이의신의 본관은 원주(原...
-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임수(林秀)[1454~?]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희암(希巖)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임득무(林得茂)의 아들이다. 임수는 임우원(林遇元)·임우형(林遇亨)·임우리(林遇利)·임우정의 4형제를 두었다. 이들 중 임우형의 가계가 가장 번성하였는데, 임천령(林千齡)·임만령(林萬齡)·임억령(林億齡)·임백령(林百齡)·임구령(林九齡) 등 임우형의 다...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장촌리는 장자(長者), 즉 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장자(長者), 장재(長材), 장촌(長村)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촌(長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계리와 장재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남계리는 1789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적량원(赤良院)은 조선시대 남리역과 녹산역을 연결하는 교통, 통신을 위하여 설치된 숙소로서, 통행하는 관리들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서 적량원은 “현의 서쪽 23리[약 9.03㎞]에 있다.”라고 하였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
-
조선 전기 호장직을 세습하며 해남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해남정씨들을 일컫는 명칭. 정호장(鄭戶長)은 고려 때부터 호장(戶長)직을 세습해 온 해남정씨(海南鄭氏) 집안의 인물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해남정씨는 조선 전기 강력한 향권(鄕權)을 바탕으로 금남(錦南) 최부(崔溥),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 임수(林秀) 등을 사위로 삼아 후원함으로써 이들 가문이 해남 지역을 근거지...
-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종가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음식. 종가 음식은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으로 대표되는 종가 문화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종가는 유교문화가 토착화된 조선 중기 이후 조상의 제사를 수행하고 사회적 지위를 상속하며 친족집단을 통합하는 중심으로 부각되었다. 종가의 음식 문화는 상류층의 문화이면서 지역적 특...
-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 영위하는 삶의 특징. 조선시대 살림집은 거주자의 신분과 경제력에 의해 그 규모와 형식이 거의 결정되었다. 즉 주로 농업에 종사했던 일반 백성의 집과 주로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부를 누린 상류층 집으로 크게 양분되어 나타난다. 두 유형은 대체로 볏짚과 기와라는 지붕 재료가 우선 눈에 띄기 때문에 일반인도 쉽게 구별할 수 있고 건물 수...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법정리. 창리(昌里)는 고려시대 창(倉)이 있었던 곳으로 국세를 받아 보관하였다가 흉년에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해서 창물, 창리(倉里)라 불렀다. 해방 후에 한자가 창리(昌里)로 바뀌었다. 창리는 본래 진도군 삼촌면 지역으로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금리, 방축리...
-
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천연기념물로는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73호],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394호], 해남 성내리 수성송[천연기념물 제430호] 4개가 있다.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
-
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천연기념물로는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73호],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394호], 해남 성내리 수성송[천연기념물 제430호] 4개가 있다.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
-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최산정(崔山靜)[1535~1593]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이천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이때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최산정의 본관은 통천(通川)이며 자는 국원(國垣), 호는 옥포(玉圃)이다. 할아버지는 최세진이며, 아버지는 최환성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와 해남윤씨(海南尹氏)이며, 아들은...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옥천 일대의 마을 가운데 대산-봉산-성산-용산-다산-송산-호산에 이어 여덟 번째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하여 팔마, 팔매라고 불린 데서 팔산리(八山里)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한 서기산에서 뻗어나온 마을 뒷산이 팔자형(八字形)으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본래 해남현에 딸린 팔마부곡이었으나...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씨 문중 상류 주택. 해남 공재 고택(海南恭齋古宅)은 조선시대 최고 자화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가옥이다. 윤두서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는 선비화가로 고산 윤선도(尹善道) 증손이다. 1670년(현종 11) 건립되어...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씨 문중 상류 주택. 해남 공재 고택(海南恭齋古宅)은 조선시대 최고 자화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가옥이다. 윤두서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는 선비화가로 고산 윤선도(尹善道) 증손이다. 1670년(현종 11) 건립되어...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비자나무 숲. 비자나무는 주로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 높이 25m까지 자라는 큰키나무이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지만 3년 정도 자라면 갈색으로 변한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제주도 등 주로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상록 교목이다. 넓게는 일본에도 분포하고 있다. 목재는 바둑판, 장기판 등을 만들고, 종자는 기름을 추출하고 잎과 가지 등은 모...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윤씨 집안에서 전수되어 상품화된 메주로 만든 생장. 해남 동국장은 윤선도의 후손인 해남윤씨 가문의 며느리 한안자에 의해 상품화된 전통적인 장류이다. 해남 동국장을 개발한 명인 한안자는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40호로 지정되었다. 동국장(東國醬)이라는 용어는 1766년 유중림(柳重臨)이 편찬한 『증보산...
-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생산되는 쌀. 해남군은 간척지가 잘 발달하였고, 농지가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논농사에 유리해 예부터 쌀을 주로 재배해 왔다. 쌀은 해남군의 대표적인 주산물로 농가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간척 공사로 2015년 기준으로 해남군의 논 면적은 21.550㏊, 쌀 생산량은 145,776톤으로 군 단위 지자체 중...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도가 머물렀던 유적지. 해남 윤선도 유적(海南尹善道遺蹟)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시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1642년(인조 18) 54세 때 전라남도 해남군 금쇄동과 수정동, 문소동의 첩첩산중에 머물면서 자연을 이용해 연못과 정자 등을 조영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 원림 지구이다....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에 있는 개항기 해남윤씨 문중의 주택. 해남 윤철하 고택(海南尹哲夏古宅)은 윤철하가 1906년 안채를 건립하였고, 가옥의 이름을 해남 윤철하 고택으로 하였다. 윤철하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일곱째 아들의 후손으로, 해남 윤철하 고택이 있는 초호리는 윤두서 후손들의 씨족 마을이다. 안채 이외에 별당채[19...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에 있는 개항기 해남윤씨 문중의 주택. 해남 윤철하 고택(海南尹哲夏古宅)은 윤철하가 1906년 안채를 건립하였고, 가옥의 이름을 해남 윤철하 고택으로 하였다. 윤철하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일곱째 아들의 후손으로, 해남 윤철하 고택이 있는 초호리는 윤두서 후손들의 씨족 마을이다. 안채 이외에 별당채[19...
-
전라남도 해남군의 여덟 군데 아름다운 경치. 해남 산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해남 팔경(海南八景)으로 금강폭포(金剛瀑布)[해남 금강골], 미암청풍(眉岩淸風)[금강산 미암산], 홍교유수(紅橋流水)[해남읍 홍교], 호산명천(葫山名泉)[호산 문필봉], 연봉제월(蓮峰霽月)[덕음산], 두륜귀운(頭輪歸雲)[두륜산], 남포귀범(藍浦歸帆)[어성교], 은사효종(隱寺曉種)[은적사...
-
1899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편찬한 읍지. 『해남군읍지(海南郡邑誌)』[1899]는 해남군에서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해남군읍지』[1899]에 대한제국 의정부 참사관실(參事官室)의 인장이 찍힌 것으로 보아 1899년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생안(先生案)」의 마지막 인물인 김용규(金容圭)가 1899년 3월 해남군수로 부임하였다가...
-
1899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편찬한 읍지. 『해남군읍지(海南郡邑誌)』[1899]는 해남군에서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해남군읍지』[1899]에 대한제국 의정부 참사관실(參事官室)의 인장이 찍힌 것으로 보아 1899년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생안(先生案)」의 마지막 인물인 김용규(金容圭)가 1899년 3월 해남군수로 부임하였다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해남동초등학교 설립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해남동초」는해남 주민들과 만석꾼이었던 이재량, 민경호(閔京鎬)[1863~1931]의 노력으로 해남동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해남동초」는 2017년 1월 5일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80-5 해남문화원 문화사랑방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민부삼[남]이다. 2017...
-
윤존부를 시조로 하고 윤효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토착 성씨. 해남윤씨(海南尹氏)는 전라남도 강진에 거주하던 윤효정(尹孝貞)[1476~1543]이 해남정씨(海南鄭氏) 집안의 사위가 되어 해남으로 이주하면서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윤구(尹衢)[1495~?], 윤의중(尹毅中)[1524~1590]을 비롯하여 윤선도(尹善道)[1587~1671],...
-
윤존부를 시조로 하고 윤효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토착 성씨. 해남윤씨(海南尹氏)는 전라남도 강진에 거주하던 윤효정(尹孝貞)[1476~1543]이 해남정씨(海南鄭氏) 집안의 사위가 되어 해남으로 이주하면서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윤구(尹衢)[1495~?], 윤의중(尹毅中)[1524~1590]을 비롯하여 윤선도(尹善道)[1587~1671],...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택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 해남윤씨 녹우당(海南尹氏綠雨堂)은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종택으로 해남윤씨 득관조(得貫祖)인 윤효정(尹孝貞)[1476~1543]이 15세기 중엽 무렵 연동리에 터를 잡은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집 뒤로는 덕음산(德陰山)[덕움산]이 있고, 앞으로는 멀리 문필봉(文筆峯)이 자...
-
전라남도 해남군에 세거하는 해남윤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 자료. 해남윤씨(海南尹氏) 녹우당(綠雨堂) 가문은 우리나라 단일 종가로는 가장 많은 문헌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고려 말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문서들은 16세기 윤효정(尹孝貞)[1476~1543] 대를 거쳐 윤구(尹衢)[1495~?], 윤의중(尹毅中)[1524~1590] 등 집안의 여러 인물들이...
-
정원기를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해남정씨(海南鄭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해남의 토성(土姓)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초계정씨(草溪鄭氏)로 알려져 있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는 1561년(명종 16) 진사시에 합격한 정언홍(鄭彦洪)[1536~?]과 같은 해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정언재(鄭彦湜)[1...
-
조선 전기 해남정씨 가문이 해남 지역에서 다른 사족 가문과의 혼인을 통하여 사족화되는 과정. 조선 전기 해남정씨가(海南鄭氏家)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왜구 침탈로 인한 혼란 수습과 해남현 치소를 옮기는 과정에 기여하여 향역을 면제받고 인근 지역 사족과의 혼인을 통하여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해남정씨와 통혼한 사족들도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해남정씨가는 해남 지역 사족들의 연수(淵藪)...
-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종택 녹우당과 해남윤씨 집안의 인물 이야기. 해남윤씨(海南尹氏)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대표 명문 종가로, 종택인 녹우당은 호남 문화예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녹우당(綠雨堂) 고택 앞에 서면 만나게 되는 500여 년 된 늙은 은행나무는 녹우당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500년이 넘는...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남계리에 회화나무의 수령(樹齡)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해남군 마산면 남계리에 있는 회화나무의 수령은 400여 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회화나무와 임백령」은 임백령(林百齡)[1498~1546]의 호에 회화나무 수령의 추정 근거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회화나무와 임백령」은 2016년 6월 6일 해남군 마산면 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