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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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石 遺稿 |
영어공식명칭 | Songseokyugo |
이칭/별칭 | 『송석집(松石集)』,『송석 문집(松石文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난희 |
[정의]
197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주영린의 시문집.
[저자]
주영린(周永麟)[1889~1953]의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덕유(德裕), 호는 송석(松石)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舞沂里)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주영회(周榮會)이며 어머니는 절도공(節度公)조수천(趙壽千)의 후예인 조성원(趙性元)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부인은 정곡(靜谷)배세적(裵世績)의 후손인 배정기(裵正璣)의 딸 분성 배씨(盆城裵氏)로 3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배호식(裵鎬植)·배정식(裵貞植)·배갑식(裵甲植)이고 사위는 류현옥(柳鉉沃)이다. 손자는 배환채(裵煥埰)·배환기(裵煥基)·배환국(裵煥國)·배환구(裵煥龜)·배환배(裵煥培)이고 외손자는 류용일(柳龍日)이다. 주영린은 1953년 11월 25일 향년 65세로 졸하였고, 그해 12월 22일 돈담촌(敦潭村) 뒤 장등(長嶝) 계좌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편찬/간행 경위]
『송석 유고(松石遺稿)』는 아들 주정식(周貞植)이 아버지 주영린의 시문을 모아 간행한 문집이다. 1969년 김희연(金熙淵)에게서 문집의 서문을 받고, 1956년 노근용(盧根容)이 쓴 행장(行狀)을 저본으로 1971년에 조용술(趙鏞述)에게 묘지명을, 안종희(安鍾禧)에게 발문을 받아, 함안군(咸安郡) 칠원면(漆原面) 무기리(舞沂里)에 있는 무기연당(舞沂蓮堂)에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송석집(松石集)』, 『송석 문집(松石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19.3㎝, 세로 26.4㎝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9㎝, 세로 21.6㎝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송석 유고(松石遺稿)'로 되어 있다. 원본은 함안군 산인면(山仁面) 모곡리(茅谷里)조문규(趙文奎) 집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경상 대학교 남명학 연구소에 복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두에 1969년 1월 김희연(金熙淵)이 쓴 서문이 있고, 이후 권(卷)의 구분 없이 30여 수의 시(詩)와 서(書)·기(記)·서(序)·고유문(告由文)·제문(祭文)·전(傳)·행장(行狀)·비명(碑銘)이 실려 있다. 이어서 부록으로 만장(挽章)·제문(祭文)·가장(家狀)·행장(行狀)·묘갈명(墓碣銘)·묘지명(墓誌銘)이 있으며, 권말에 1971년 안종희가 지은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시 중에는 함안의 중산정(中山亭)에 올라 친척족들과의 회포를 읊은 2수 및 화운시(和韻詩), 차운시(次韻詩)가 있으나, 대부분은 만시(挽詩)이다. 행장은 1956년 노근용이 지었고, 묘지명은 1971년에 조용술이 썼다.
[의의와 평가]
『송석 유고』는 1889년에 태어나 1900년대 중반까지 함안 칠원면에서 살았던 유학자 주영린을 통해 당시 시대를 복원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