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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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旅 |
영어공식명칭 | Jo Ryeo |
이칭/별칭 | 주옹(主翁),어계(漁溪),정절(貞節),조여,어계 처사(漁溪處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길 104-1[원북리 59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진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부인은 흥양 이씨(興陽李氏)이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큰아들 조동호(趙銅虎)는 군수를 지냈고, 둘째 아들 조금호(趙金虎)는 첨지(僉知)를 지냈으며, 막내아들은 조야호(趙野虎)이다.
[활동 사항]
조려(趙旅)[1420~1489]는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서 태어났다.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1455년(세조 1)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함안으로 돌아와 서산(西山) 아래 은거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 서산을 백이산(伯夷山)이라 불렀다. 조려는 벼슬하지 않고 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를 어계 처사(漁溪處士)라 하였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사사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 시신을 수렴하였다고 전한다. 유지(柳輊), 김시습(金時習)과 교유하였고,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3권 2책의 『어계집(漁溪集)』이 있다.
[묘소]
함안 조려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 산53번지에 있다. 2015년 3월 19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83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1698년(숙종 24)에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려도 사당을 세워 제향하도록 건의하자, 1706년에 서산 서원(西山書院)이 건립되었다. 1781년(정조 5)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정절(貞節)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