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한 유학자 정동학의 문집. 정동학[1688~1721]의 자는 명숙(鳴叔)이고 호는 각헌(覺軒)이다. 본관은 팔계(八溪)이다. 할아버지는 정우익(鄭友益), 아버지는 정세망(鄭世望)이다. 어머니는 탐진안씨(耽津安氏)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대평리에서 태어났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거주하였다. 1708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시목리에 마을 화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화재라는 마을의 재앙을 한 노인의 꿈을 통해 막아낸 이야기이다.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시목리 감나무골에는 물버드나무 세 그루가 있다. 100여 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잠든 사이, 불이야라는 외침이 있었다. 사람들이...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 출신인 노광두의 문집. 노광두(盧光斗)[1772~1859]의 자는 청지(淸之), 호는 감모재(感慕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노석규(盧錫奎), 어머니는 밀양박씨 박내오(朴來吾)[1713~1785]의 딸이다. 신성진(愼性眞)의 문인으로 1814년(순조 14...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에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나섰다가 조총을 맞아 숨지자 갑옷과 칼을 바위에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 3권 416-417쪽에 수록되어 있다. 정유재란 때 부모 형제가 왜적에 살해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물리쳤다. 주로 밤에 적의 무기고나 막사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귀곡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는 초동고개에서 산적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죽은 여인이 복수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함양군사』 3권의 422-423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귀곡에서 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는 산적이 많아 혼자 넘기 어려운 곳이었다. 초동에서 귀곡으로 시집간...
-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 재궁마을에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재궁마을 강선바위에 전하는 눈먼 여인이 신선을 만나 눈을 뜨게 되고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 재궁마을 약 300m 남쪽에 강선대가 있는데, 이곳 강선암에는 신선이 내려...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에 전해오는 아기장수 이야기. 강씨 문중에 아기장수가 태어났으나 삼대로 겨드랑이를 찔러 죽이자 용마가 날아올라 비추노봉에 앉았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 3권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골 강씨 문중에서 장군대좌에 묘를 썼는데, 후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걸어다니고 힘이 세며 방 안에서 새로...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남계서원에서 개암 강익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목판.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이고, 호는 개암·송암(松菴)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1549년(명종 4)에 진사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552년...
-
1915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재기의 문집. 정재기(鄭在箕)[1811~1879]의 자는 오이(五而), 호는 개은(介隱)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헌릉참봉을 지낸 정환보(鄭煥輔)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능간(沈能簡)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
183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지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에 수록되어 있다. 1장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의현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 전체, 수도면의 진목리·춘전리, 거창군 마리면·북상면·위천면에 걸쳐 있었다. 지도의 아래쪽은 경상남도 거창군[현재의 경상남도 산청군 일대] 및 함양, 위쪽은 전라도계와...
-
1832년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함양군 향토지. 세로 35㎝, 가로 22.6㎝의 필사본이다. 표지는 능화문황지(菱花紋黃紙), 본문은 저지(楮紙)가 각각 사용되었다. 채색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는 1832년경에 편찬된 경상도 도지(道誌)로, 필사본이다. 20책으로 되어 있다. 각 고을 읍지마다 맨...
-
183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7책 「함양군읍지(咸陽郡邑誌)」에 수록되어 있다. 1장 2면의 지도이다. 지도 속 함양군은 안의면·서상면·서하면을 제외한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걸쳐 있었다. 본 지도는 현재 함양군 함양읍 시내에 있었던 함양읍성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안의·산청계와 경계를 이루며, 왼쪽...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벽송사에서 수도한 승려 응윤의 문집. 응윤(應允)[1743~1804]은 조선 후기 승려로, 출가 후 처음 받은 법명은 관식(慣式)이었다. 속가의 성은 민씨(閔氏)이며, 본관은 여흥이다. 법호는 경암(鏡巖)으로, 집이 경호(鏡湖) 근처에 있어서 사람들에 의하여 붙여졌다. 15세에 출가하여 진희장로(震熙長老)에게서 머리를 깎고 지리산 경내에 있는...
-
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한 유학자 정동의 문집. 정동(鄭棟)[1741~1793]의 자는 백직(伯直), 호는 경재(敬齋)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할아버지는 각헌(覺軒) 정동학(鄭東鶴)[1688~1721], 아버지는 인재(忍齋) 정대징(鄭大徵)이다.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 이익배(李益培)의 딸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인 우정규의 저술. 우정규(禹禎圭)[1718~?]의 자는 여보(汝寶),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우형하(禹亨夏), 아버지는 우서주(禹徐疇), 어머니는 노세첨(盧世瞻)의 딸이다. 1647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6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 검열이 되었고, 통례원(通禮院) 우통례(右通禮)를...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고대 정경운의 필사본 일기. 정경운(鄭慶雲)[1556-?]의 자는 덕옹(德顒), 호는 고대(孤臺)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서 살았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손자이다. 박여량(朴汝樑)[1554~1611], 박손(朴𧂍), 노사상(盧士尙)[1559~1598], 정경룡(鄭景龍)...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에는 남편을 위해 한겨울에 고둥을 잡으러 갔다가 얼어 죽은 벙어리 아내의 지극한 사랑을 담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함양군사』3권의 357-358쪽에 수록되어 있다.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에는 검은 고동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에 고정부락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고정부락 구두쇠의 마음 착한 며느리가 선행을 행하여 탁발승의 예언으로 재난을 피하고, 혼자 살아남아 비구니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45쪽에 수록되어 있다. 고정부락에는 욕심 많은 구두쇠 영감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부자였지만 매우...
-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유학자 이육의 시문집. 이육(李㻙)[1827~1898]의 자는 진화(振和), 호는 곡은(谷隱)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이성일(李成一)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 노광석(盧光碩)의 딸이다. 이육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용전(龍田) 송내희(宋來熙)에게 수학하였다....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에 전해오는 전설.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에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내자 전염병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의 361-362쪽에 수록되어 있다. 함양군 함양읍 곰실에는 해마다 돌림병이 자주 발생하여 마을 사람들의 죽음이 빈번하였다. 주민들이 무당을 찾아...
-
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건립된 공기헌의 불망비. 공기헌(孔沂憲)은 참봉으로 지금의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대방마을에서 200석 정도의 농사를 지었다. 그는 인심이 좋아 거지에게도 후하게 대접을 하였다. 흉년이면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칭송이 자자하였다. 1782년에 걸인들이 돈을 모아 비를 세워 그의 선한 행실을 후세에 남기고자 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광산김씨 집안의 유문을 모아 간행한 단행본. 김기율(金箕律)[1829~1892], 김재경(金在景)[1882~1935], 김정현(金定鉉) 등이다. 1981년에 김귀현(金貴鉉)이 선조의 유문을 모아 간행하였다. 『광산세고(光山世稿)』는 총 5권 1책의 석판본이다. 반곽은 16.0×20.0㎝이다. 사주쌍변이고, 행마다 경계가 있다...
-
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음현 지도. 『광여도(廣輿圖)』는 18세기 관찬(官撰)으로 제작한 『해동지도(海東地圖)』 및 이와 유사한 지도들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만들어진 지도집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그 윤곽이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에 빠져 있는 안음현(安陰縣)이 수록되어 있으며, 마테오리치의...
-
19세기에 편찬된 『광여도』에 수록된 함양부 지도. 조선 후기에 편찬된 전국 군현지도집은 『광여도(廣輿圖)』·『해동지도(海東地圖)』·『여지도(輿地圖)』·『여지편람(輿地便覽)』 등이 있다.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광여도』는 사찬(私撰)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해동지도』처럼 18세기 전반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고, 상당수 군현지도의 윤곽도 비슷하다. 『광여도』...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에 괴바우소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오는「괴바우소와 산적들」은 실덕과 송알 사이에 있는 괴바우소(沼)와 관련된 것이다. 누명으로 신분을 숨기고 살게 된 이판서의 딸 숙영 낭자와 지리산 사냥꾼 랑의 사랑 이야기이자, 랑이 산적들을 깨우쳐 개과천선하게 만든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노광무의 시문집. 노광무(盧光懋)[1808~1893]의 자는 순가(舜嘉), 호는 구암(懼菴)·송파(松坡)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노광리(盧光履)의 문인으로, 1828년(순조 2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들자 치료하기 위하여 낙향하여서 구암서당(懼庵書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건립된 서원. 구천서원은 조선 전기 학자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1701년에 창건하였다. 조선 전기 인물인 박맹지(朴孟智), 양관(梁灌)[1437~1507], 강한[1454~?], 표연말(表沿沫)[1449~1498], 양희(梁喜)[1515~1581], 하맹보(河孟寶)[1531~1...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허비. 구천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창건하여 박맹지(朴孟智), 양관(梁灌), 강한(姜漢), 표연말(表沿洙), 양희(梁喜), 하맹보(河孟寶) 등의 6명을 배향하였다.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에 철폐되었다. 1919년에 후손들이 그 유허지에 ‘구천서원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1984년에 후손들이 현재의...
-
1928년 가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수형의 문집. 강수형(姜壽馨)[1862~1890]의 자는 백윤(伯潤), 호는 귤암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무산(武山) 강용하(姜龍夏)[1840~1908]이다. 어머니는 진양하씨로, 하대련(河大連)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文正里)에서 태어났다. 문정리는 문헌공(文憲公) 정여창(鄭...
-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전해오는 전통 놀이. 그네뛰기는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의 하나로 고려 때부터 전해왔다고 하는데 ‘추천(鞦韆)’이라고도 한다. 그네와 들판 또는 넓은 마당이 필요하다. 그네뛰기는 5월 단옷날에 많이 하는 놀이이다. 높은 나무의 가지에 동아줄을 꼬아서 줄을 매달고 줄에 그네를 묶어 그네를 만든다. 그네를 탈 때는 발판에 발을 올려...
-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오는 아이들의 놀이.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그림자가 선명해지는 때 하는 놀이로 아이들이 술래를 정해 다른 아이들의 그림자를 밟으면 그림자를 밟힌 아이가 술래가 되는 놀이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도망 다니고 쫓아다녀야 하는 만큼 순발력과 체력을 기를 수 있다. 특별한 놀이 기구는 필요 없으며 넓은 마당이나 들판에서 노는 놀이이다....
-
경상남도 함양군에 가뭄이 지속되면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냈던 제사 의식.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올리는 다양한 제사 의식을 기우제라 했다. 삼국 시대부터 기우제가 행해졌음을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이는 조선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국왕이나 조정 주도로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지방이나 민간 차원에서도 시행되었다. 왕실의 시조묘, 종묘,...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광보의 선덕비. 김광보(金光輔) 선덕비의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비석의 명문에 병인년(丙寅年)이라는 간지(干支)가 나오지만 시기가 조선 후기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에 있는 기효각(記孝閣) 바로 앞에 있다. 자연암을 손질하여 만든 대석(臺石)에 홈을 파고 명문을 세긴 비신...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선정비. 군수 김이위(金履褘)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문에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보이지 않고 ‘병술년(丙戌年)’에 세워졌다는 간기만 있어 조선 후기의 인물로 추정된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 입구에 박재문 영세불망비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함양군청에서 지방도1023호선을 타고 마천...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김진사의 사위 맹서방이 장인의 백마를 훔쳐다가 검은색을 칠해 자기 것이라 하니 김진사가 사위를 혼내기 위해 아들 셋을 내려보냈으나 모두 맹서방에게 당하고 돌아왔다. 이에 김진사가 맹서방의 지략을 인정하고 용서하였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97쪽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전라...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이사엽에 관한 사실을 모아 편찬한 실기. 이사엽(李師燁)[1742~1825]의 초명은 사덕(師德), 자는 군필(君苾), 호는 나졸재(懶拙齋)이다.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이성창(李星昌), 어머니는 함양박씨 박대유(朴大裕)의 딸이다. 경상도 안의현 중동리[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에서 태어났다. 늑천(櫟泉) 송명...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낙방 선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노래.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29쪽에 수록되어 있다. 과거에 낙방한 선비의 초라한 모습이 전체 내용을 이루고 있다. 형제를 찾아갔던 어제와 과거에 떨어진 오늘, 과거 급제라는 바람과 그것이 좌절된 현실이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대구를 이루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어제는 형제간에 찾아갔...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에 있는 낙포 김사형의 영정각. 안의천 상류 좌안에 있는 마을회관 바로 뒤에 있다. 망덕산의 서사면 말단부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에는 작은 곡저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낙포(洛圃) 김사형(金士衡)[1341~1407]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 고조부는 김방경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대간과 개성윤으...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인 난곡 우석일의 문집. 3권 1책 목활자본의 『난곡집(蘭谷集)』 이본(異本)이 있다. 우석일(禹錫一)[1612~1666]의 자는 자행(子行), 호는 난곡(蘭谷),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인 눌계(訥溪) 우형(禹悙)에게 가학을 전수받고, 17세에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열녀 남양방씨의 정려비. 남양방씨는 효행으로 통정대부와 공조참의에 추증된 모우당 우문화(禹文華)의 며느리이다. 시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조모(祖母)를 극진히 모셨다. 정유재란 때 왜적에게 조모와 잡혀 해를 당할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꾸짖고 순절하였다. 후일 조정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의 남양홍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남양홍씨 족보 책판. 남양홍씨의 족보를 간행하기 위해 1716년(숙종 44)에 판각한 책판으로, 족보는 1718년에 인간(印刊)되었다. 이 목판은 1998년 11월 13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되었다. 남양홍씨는 1471년(성종 2)에 천령부사(天嶺府使)를 지낸 홍인손(...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세거하고 있는 남원양씨 인물 7인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 『용성세고』에 수록된 7인은 양천지(梁川至)[1396~1447]를 비롯한 그 자손들이다. 양천지의 자는 장원(長源)이고 호는 성곡(省谷)으로,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아들 양관(梁灌)[1437~1507]의 자는 옥지(沃之)이고...
-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오는 민속놀이.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정월대보름이나 단옷날 여성들이 널빤지 아래 가마니를 놓고 그 위에 널을 놓은 후 마주보고 번갈아 뛰어오르며 노는 놀이이다.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 세시(歲時) 원일조(元日條)에 의하면 “항간에서 부녀들이 흰 널조각을 짚단 위에 가로로 걸쳐 놓고 양쪽 끝에 갈라서서 굴러뛰는데 그 높이가...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신. 노광두의 자는 청지(淸之), 호는 감모재(感慕齋), 본관은 풍천이다. 노광두(盧光斗)[1772~1859]의 할아버지는 노정국(盧楨國),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노석규(盧錫奎)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 박내오(朴來吾)[1713~1785]의 딸이다. 노광두는 1772년 11월 18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에서 태어...
-
경상남도 함양군의 노동 현장에서 일할 때 부르던 노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불렸던 노동요는 노동현장에서 노동 행위를 즐겁게 하거나 행동을 통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부르던 노래이다. 노동요는 일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능요에 속하며, 기능요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의 내용이나 일의 진행상 필요한 말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일과는 관련이 없으나 일...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의 버선밭골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노부부의 버선밭골」은 노부부가 자식도 없이 단둘이 행복하게 살았는데, 몽달귀신이 호랑이로 변신하여 영감을 잡아먹자 할머니가 호미로 호랑이에게 맞서다 죽어 열녀비를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61쪽에 수록되어 있다....
-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노숙동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책판. 노숙동의 자는 화중(和仲)이고, 호는 송재(松齋)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리, 집현전 교리, 사헌부 감찰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치평요람(治平要覽)』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고려사』의 기...
-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유학자 민치홍의 문집. 민치홍(閔致鴻)[1859~1919]의 초명(初名)은 치은(致殷), 자는 운거(雲擧)이다. 호는 농운(農雲)·화강(華岡),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송암(松菴) 민동혁(閔東爀), 어머니는 해주정씨이다. 경상도 진주부 진주군 가곡[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가선리]에서 태어났다. 18...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의 화림동 계곡에 있는 정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에 있다. 안의면에서 육십령으로 향하는 국도26호선을 타고 도로를 따라 4㎞가량을 오르면 농월정 계곡에 도착한다. 농월정은 계곡 맞은 편 월연암 위에 있다. 안의 삼동 중에서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간직한 곳이 화림동(花林洞)이다. 화림동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금천이 ‘팔담팔...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사를 위해 지내오던 제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무사를 위해 마을의 오래된 정자나무나 당집을 지어 당산제를 지내왔다. 당산제는 설날에서 정월 대보름 사이에 마을 어귀에 있는 큰 나무나 당집 등 마을을 지키는 신령스러운 자연물에 대해 제를 올리는 의식으로, 오랜 연원을 가진 민간신앙의 일종이다. 경상남도 함양 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 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는 유림들이 함양 출신 명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초기에는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자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1357~1417],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희운의 문집. 정희운(鄭熙運)[1678~1745]의 자는 태오(泰吾), 호는 동봉(東峯)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정세정(鄭世楨)이다. 어머니는 남원양씨로, 사재감 참봉 양지영(梁地英)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구라마을에서 태어났다....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전하는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내용의 노래.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04쪽에 수록되어 있다. 상사병을 고치는 만병초와 지붕밖에 고치지 못하는 샛대[갈대] 잎을 대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병초로 부모의 상한 마음을 고치고자 하는 자식의 효성이 4음보의 율격구조를 지닌 짧은 사설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지리...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서 망부석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도 사나이와 전라도 처녀가 혼인을 하여 살았는데 남편이 육십령을 넘다가 도적에게 목숨을 잃자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의 391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도 사나이가 전라도 규수와 결혼하여 행복...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의 매치마을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2012년에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81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 매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매화낙지(梅花落地)의 명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한 가정의 안채는 함양에 속해 있고 사랑채는 전라도 아영에 속해...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모동술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구평마을에 살던 박정승에게 청상과부가 된 딸이 있어 천민 모동술에게 아무도 모르게 시집보내었다. 하지만 모동술이 무식하여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니 작은아들이 암행어사로 가서 꾀를 내어 모동술을 무시하거나 건드리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여 누이를 잘 살게 한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난평리에서 둥구나무 목신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목신의 은공」은 어머니가 매일같이 정성 들여 나무 앞에서 빌었더니 목신이 나귀로 변신하여 아들이 과거에도 급제하고, 사람으로 변신한 여우를 잡아 아내도 얻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46쪽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경상남도 함...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인 무산 강용하의 문집. 강용하(姜龍夏)[1840~1908]의 자는 덕일(德一), 호는 무산(武山)이다. 본관은 진양이며, 거주지는 경상남도 함양이다. 미산(薇山) 정환주(鄭煥周)[1833~1899]와 종유하며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1811~1876]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문망(文望)[학문으로...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내려오는 무당들의 제의. 섣달그믐에 무당들이 내림굿을 하거나 영적 기를 북돋우기 위해 지내는 제의를 무신제라고 한다. 무신제는 무속 신앙이 전해오던 고대 부족국가의 제사 의식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는 신라 시대에 불교와 합쳐졌다. 무속의 사제를 무당이라고 하는데, 여사제를 ‘무’라하고 남사제를 ‘격’이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지역별로 무당들이 해마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양처제의 시문집. 양처제(梁處濟)[1643~1716]의 자는 계통(季通), 호는 묵재(黙齋)이다. 본관은 남원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孝友村)에서 태어났고, 말년에는 곡성면 오지리[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로 이주하여 심성을 수양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할아버지는 의금...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난 물재 노광리의 문집.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를 모방하여 「...
-
개항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출신 정환주의 문집. 정환주(鄭煥周)[1833~1899]의 자는 명신(命新), 호는 미산(薇山)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동생을 데리고 화림사(花林寺)[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 법화사(法華寺)[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두류산(頭流山)[지금의 지리산], 백무동(白霧洞)...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곡리에서 암행어사 박문수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박문수가 경상남도 함양에서 과부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이 진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해하였으나 진상을 파헤쳐 남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을 훈계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문화원에서 발간한 『우리고장의 전설』 81쪽과 2012년 함양군사 편찬위...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박여량의 친필 일기. 박여량 『감재일기』는 박여량(朴汝樑)[1554~1611]의 후손 박호정이 2011년 11월 함양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박여량의 자는 공간(公幹), 호는 감수재(感樹齋)이다. 본관은 삼척이다. 박여량은 지금의 함양군 수동면에서 태어났다. 1600년(선조 33)에 문...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성북마을 출신의 무관이자 의원. 박윤수(朴潤壽)는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1571~1639]의 후손으로, 부친은 박지식이다. 조상인 박명부의 세거지가 경상도 안의현 광풍리(光風里)인 점을 고려하면 박윤수의 출생지 역시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성북마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윤수의 호는 영송(嶺松), 본...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박은호에게 내려진 정려. 박은호의 본관은 밀성이다. 정유재란 때 부친과 황석산성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성이 함락되자 부친을 업고 탈출하다가 순절하였다. 조정에서 이 일을 알고 그의 충효정신을 기리려고 정려를 내렸다. 함양군 안의면 귀곡리 귀곡마을 입구 근처의 밭에 있다. 함양군 안의면 면소재지인 금천리...
-
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에 세워진 선정비. 부사 박재문(朴載文)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773년(영조 49)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 입구에 김이위 불망비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함양군청에서 지방도1023번을 타고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 쪽으로 나아가면 창촌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박재문 영세불망비는 작...
-
조선 후기 경상도 안의현감을 지낸 실학자. 자는 미중(美仲)·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연상(煙湘)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이다. 한성부 서부(西部)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지금의 서울시 중구 순화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노론 명문가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박필균(朴弼均)[1685~1760], 아버지는 박사유(朴師愈)[1703...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정동의의 문집. 정동의(鄭東義)[1815~1883]의 자는 형지(亨之), 호는 백암(栢菴)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정덕화(鄭德和), 어머니는 신창표씨(新昌表氏)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학림(學林)에서 태어났다. 저포(樗圃) 노광주(盧光柱), 자애(紫崖) 이병...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있던 서원. 백연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를 흐르는 위천 근처 소고대 주변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시대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857~?]과 조선 전기 영남 사림의 정신 지주로 있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670년(현종 11)에 지방의...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교북리에 효자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교북리에는 장님인 어머니를 지극히 모시는 효자가 살았다. 탁발승이 소의 간을 1,000개 구해다 먹이면 눈을 뜰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효자는 백정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를 잡는 곳마다 잡아...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난 백초 노형하의 시문집. 노형하(盧亨夏)[1620~1654]의 자는 장경(長卿), 호는 백초(白草)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효공(文孝公)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7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의 고향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거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진사에 합격하고 1648년(인조...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군. 원래는 군자사에서 수행했던 고승의 유골이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60번지 벽송사 3층석탑 옆에 이건되어 있다. 3기의 부도 중 왼쪽의 것은 전체 높이가 80㎝이고, 상륜부는 유실되었다. 중앙에 있는 것은 탑호가 ‘율봉당(栗峯堂)’으로 희...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평정리에 강문필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 송정(松亭) 강문필(姜文弼)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조선 중기에 활동한 학자로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과 갈천(葛川) 임훈(林薰)[1500~1584]을 따라 학행과 효행을 실천하였다. 벽송정 터는 송정(松亭) 강문필(姜文弼)이 심신을 수양하고 지인들과 교류했던...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출신인 전병순의 문집. 전병순(田秉淳)[1816~1890]의 자는 이숙(彛叔), 호는 부계(扶溪)·겸와(謙窩)이다.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추천(楸川)[지금의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일대]에서 태어났으며, 전석채(田錫采)의 아들이다. 홍직필(洪直弼)[1776~1852]의 문인으로, 조병덕(趙秉德)·전우(田愚)[1841~1...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과 인근의 사근도 소속 역인(驛人) 현황을 편제한 호구대장. 『사근도형지안(沙斤道形止案)』은 크기가 가로 55.5㎝, 세로 51.6㎝이며, 98매의 필사본이다. 사주단변에 30칸이 구분되어 있고, 각 장마다 도장이 찍혀 있다. 『사근도형지안』은 경상북도 문경시 옛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47년(영조 23)에 작성된 호구대장으로,...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정취동 출신 허원식의 시문집. 1915년에 간행된 4권 2책의 『삼원당문집(三元堂文集)』 이본(異本)이 있다. 이 문집의 서문은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지었다. 허원식(許元栻)[1828~1891]의 자는 순필(舜弼), 호는 삼원당(三元堂),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21세에 사미헌(四未軒) 장복추...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천리 삼천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 「삼천동 효자 삼형제」 이야기는 효심으로 어머니를 살리고, 메마른 가뭄에 샘이 솟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88쪽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천리 삼천마을에 마음이 착한 삼형제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나라 전체가 4년간 혹...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서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상사바위」설화는 상사병으로 죽은 처녀의 혼이 뱀으로 나타나 못다 한 사랑에 대한 원한을 푸는 내용이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기와 조각이 나와 그곳이 암자 터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 골짜기에는 뱀이 많다고 한다. 『함양군사』 3권에 수록되어 있다. 장수사 동편에...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전해지는 상여를 내어갈 때 부르는 장례 의식요. 경상남도 함양군의 「상여메기」는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장례 의식요이다. 「상여소리」, 「상도소리」라고도 한다. 앞소리꾼이 사설로 메기면 뒷소리를 후렴으로 받으며 선후창으로 노래한다. 함양군의 「상여메기」노래의 내용은 사람이 부모의 덕으로 태어났다는 내용, 늙은 것을 서러워하는 내용, 병이 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 출신의 효자. 서기보(徐麒輔)[1771~1857]의 자는 성원(聖源), 호는 모와(慕窩),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명순(徐命舜), 할아버지는 서영수(徐永修)이다. 아버지는 서유우(徐有佑)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追贈)되었다. 서기보는 서유우의 5남이자 함양의 효자 서대순(徐玳淳)과 열녀 심씨의 남편 서학순...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주암마을의 애기소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노총각이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자식을 잃는 슬픔을 겪는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주암마을에 마음씨 착한 노총각이 살았다. 총각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오니, 집이...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선유정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선유정의 유래」는 선녀의 날개옷을 망가뜨려 함께 살게 된 사냥꾼이 날개옷을 고쳐주어 선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132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계곡 옆에는 ‘선유정...
-
경상남도 함양군 북상면 월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교육기관. 2018년을 기준으로 성천서원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 있다. 1703년(숙종 29)에 안음현감 정중만이 동춘당 송준길(宋浚吉)[1606~1672]이 노천[현재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대로마을]과 월성[현재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생활한 것을 기념하고 교육장소로 쓰기 위하여 지방 유림들과 논의하여 함...
-
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에 거주한 노긍수의 시문집. 노긍수(盧兢壽)[1823~1899]의 자는 시용(時用), 호는 소은(小隱), 본관은 풍천이다. 아버지는 노광직(盧光稷)으로, 효성으로 사헌부 감찰에 증직(贈職)[사망한 자에게 승급되는 품계]하였다. 진주(晉州)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介坪)으로 이주하였다. 1873...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명세의 문집. 강명세(姜命世)[1632~1708]의 자는 덕수(德秀), 호는 소치재(笑癡齋)·소치자(笑癡子)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문재(姜文載)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영남(尹英男)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에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마산리[당시 마안(馬鞍)] 서쪽 산기슭 아래에 작은 집...
-
1928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우여무의 문집. 우여무(禹汝楙)[1591~1657]의 자는 대백(大伯), 호는 속천(涑川)이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아버지는 우형(禹悙)[1567~1652],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 최응회(崔應會)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당시 이전(泥田)]에서 태어났다.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에 있는 석교비. 1759년(영조 35)에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 음지마을에서 양지마을로 건너가는 돌다리를 놓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59년 건립 당시 화주(化主)는 박만귀(朴萬貴)이고 감별좌(監別坐)는 이만춘(李萬春)과 서봉상(徐奉尙)이었다. 이후 다리가 훼손되자, 1962년에 함양박씨와 합천이씨의 후손인 박판섭(朴判...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백평 출신 이수완의 시문집. 이수완(李秀完)[1676~1744]의 자는 공직(公直), 호는 수족당(睡足堂)·내왕헌(來往軒)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평(栢坪)[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내백리 잣들마을]에 거주하였다. 세 차례 초시에 선발되었으나 당시 벼슬아치의 방해로 끝내 합격하지 못하였다. 금호(錦湖) 가에 수족당...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에 시루소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의 잿들에 있는 시루소 안에 뱀 두 마리가 있어서 마을의 안녕을 지킨다는 이야기이다. 1983년 함양군에서 발간한 『(우리고장 전통 가꾸기)천령의 맥』의 173쪽과,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의 386쪽에도 수록되어 있다....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시비정거리」는 여론을 통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나간 조상들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141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와 운림리의 경계에는 ‘시비정거리’라는 사거리가 있다. 조선 후기에 김씨와 박씨가 위천수를 사이에 두고...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에서 있는 늪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시어머니의 시샘이 아들과 며느리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소(沼)[늪]에 얽힌 이야기이다. 2012년에 간행된 『함양군사』3권의 443-444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에서 금반으로 내려오는 계곡의 벼랑 아래에 소가 두 개 있는데, 계곡의 위에 있는 것이 서방소이고 아래...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불렀다고 전해오는 노래. 시집가던 3일 만에 남편이 병들어 죽었는데, 잠이 들어 그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39쪽에 수록되어 있다. 2009년 7월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시목마을 시목마을회관에서 노귀남[여, 79세]으로부...
-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 신효선의 정려.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 손곡마을 동쪽 임천과 만나는 구릉말단부에 정려가 있다. 주변으로 3채 정도의 민가가 있으며 동쪽에는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신효선은 호는 덕재이며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부모님의 병환이 위중할 때 변을 맛보면서 부모를 간호하였다. 하늘에 자신이 부모를 대신하여 아...
-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아버지를 찾은 아들」은 박어사가 경상남도 함양을 지나다가 원두막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때 만난 한 여인이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게 된 이야기이다.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박어사가 지방을 시찰하다가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를 지나게 되었다. 비가...
-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 유학자 정문섭의 문집. 정문섭(鄭文燮)[1859~1929]의 자는 주성(周聖), 호는 아석(我石)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정수대(鄭秀大)이다.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慎氏)로, 신성선(愼性宣)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정수갑(鄭秀甲), 친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계성(權桂成)의 딸이다. 갑...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인 안동권씨의 정려.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내동마을 도로변에 있으며, 내동마을 회관과 인접하여 있다. 정태일의 처 권씨부인은 1756년(영조 32)에 태어났고 이웃 고을에서 혼인하였다. 1795년(정조 19) 남편이 호랑이에게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였을 때 권씨부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호랑이와 싸워...
-
1832년 경상남도 안의현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편찬한 향토지. 경상남도 안의현은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과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에 해당하며, 읍치는 안의면 금천리·교북리 일대에 있었다. 1832년(순조 32) 7월 안의현과 관련된 역사, 소속된 고을의 이름, 거주하는 성씨 및 풍속, 자연 환경, 물산, 각종 시설의 위치 및 내력, 지역 인물 관련...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에서 혈연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송정지의 한 노부부가 아들이 없어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지만, 노인의 사후에 현몽을 통해 결국은 자신의 아들로 대를 잇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의 401쪽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송정지에는 노부부가 있었는데 재산은 많았으나 자식이 없었다....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의형제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김정승 아들에게 박정승 아들이 어사가 되어 응징한 이야기이다.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에 수록되어 있다. 김정승과 박정승은 사이가 좋아 자식을 낳으면 사돈을 맺기로 했는데, 둘 다 아들을 낳아 의형제를 맺어 주었다. 그런데 박정승의 아들은 가문이 쇠락하여 지리산...
-
18세기경에 편찬된 『여지도』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음현의 지도. 『여지도』는 3책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지도』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과 비슷하지만 안음현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안음현은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되며, 1767년(영조 43)에 안의현(安義縣)으로 명칭을 바꾼다....
-
18세기경에 편찬한 『여지도』에 수록된 함양부 지도. 보물 제1592호로 지정된 『여지도(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輿地圖)』는 3책 33장의 지도첩이다. 경상남도 함양군은 1729년(영조 5)에 군(郡)에서 부(府)로 승격되었다가 1788년(정조 12)에 다시 군으로 강등된다. 따라서 함양군의 명칭만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9년 이전에, 『여지도』는...
-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오는 민속놀이. 경상남도 함양군에서는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아이와 어른이 연을 날리며 놀았다. 연날리기에 대한 기록은 18세기 말엽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와 19세기 초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및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데 『경도잡지』 상원조(上元條)에는 “...
-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안의현의 지방행정, 그리고 물레방아의 제작과 보급 등을 재조명해 본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1786년(정조 10) 선공감 감역을 시작으로 평시서 주부, 사복시 주부, 한성부 판관을 역임했다. 1792년(정조 16) 12월부터 3년 남짓 안의현감을 지내고, 다시 중앙관직으로 나가 1796년 한 해 동안 제용감주...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안의현감을 지낸 박지원의 문집. 박지원(燕巖集)[1737~1805]의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 또는 연상(煙湘)·열상외사(洌上外史),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홍대용(洪大容)[1731~1783], 이덕무(李德懋)[1741~1793], 박제가(朴齊家)[1750~1805], 이서구(李書九)[1754~1825], 유금(...
-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영각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종모양 부도군. 영각사는 877년(헌강왕 3) 때 심광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시대 때 폐사된 절을 1449년(세종 31)에 원경 스님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이후 1834년(순조 34)에 화재로 화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으며, 1886년(고종 23) 강용월대사가 중수하였다. 1...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8책에 수록된 안의현 향토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邑誌)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영남읍지』 8책의 안의현읍지는 먼저 1장 2면의 안의현 지도가 있고, 내제에 이어 안의현의 옛 이름인 안...
-
1871년에 편찬한 『영남읍지(嶺南邑誌)』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지도. 1장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의 아래쪽은 경상남도 거창, 함양계가 경계를 이루고 위쪽은 전라도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전 시기 지도와 마찬가지로 읍치를 왼쪽 하단에 위치시키고 있다. 위천과 남강과 같은 군내 주요 수계를 중심으로 산계를 간단하게 표시하였다. 향교, 창고, 사찰 및 암자 그리...
-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된 향토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3)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함양부읍지」는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되어 있다. 1871년에는 함양군이었음에도 읍지 제목은 「함양부읍지」로 되어...
-
18세기에 편찬된 『영남지도』 내에 수록된 함양부 지도. 『영남지도(嶺南地圖)』 는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 지도첩으로, 채색필사본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제4책에 수록된 안음(安陰)과 산음(山陰)은 1767년에 안의(安義)와 산청(山淸)으로 개칭되므로 이 지도책은 1767년 이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제...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 경내에 있는 부도. 승려 청매(靑梅) 인오(印悟)[1543~1623]의 생몰시기를 고려할 때 영원사 방광사리탑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영원사 동쪽 구릉 경내에 있다. 영원사 방광사리탑이 확인되는 영원사(靈源寺)는 신라 진덕여왕 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 영원사에 보존되어...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오연 김면운의 문집. 김면운(金冕運)[1775~1839]의 자는 천찬(天贊)이고 호는 오연(梧淵)이다. 본관은 의성이다. 덕천서원(德川書院), 임천서원(臨川書院), 정강서원(鼎岡書院), 청곡서원(淸谷書院) 등의 원장을 지냈다. 만년에 용봉리(龍鳳里)에 ‘오연(梧淵)’이라는 집을 지어 우거하였다. 김면운의 종현손 김황(金榥)[18...
-
1593년 6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출신의 무장 오희남이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했던 사건. 오희남은 경상남도 안음현 모동리 무월 출신[현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으로, 함양오씨 성재공(誠齋公)의 현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953년 6월,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수문장으로 항전하다가 진주성 함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선무원종공신...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에서 옹기장수 정씨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옹기장수 정씨가 장터에서 만난 소리꾼 여인과 사랑에 빠져 혼인하였다가 여인이 죽고난 후에,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자 동네에 재물을 희사(喜捨)[신불(神佛)의 일로 돈이나 물건을 기부함]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문화원에서 발간한 『우리고장의 전설』169쪽과 2012년 경...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왕무덤골’로 불리는 골짜기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1994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과,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노모와 함께 사는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게으름뱅이에 난봉꾼이었고, 아내는 정숙한 여인이었지만...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소나무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우계(愚溪) 하맹보(河孟寶)의 부인이 우물에 정화수를 떠놓고 남편과 아들이 잘되기를 늘 기도하였는데, 후에 아들이 어머니의 노고를 그리며 심은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의 385-386쪽에 수록되어 있다. 하맹보가 터를 잡고...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우석일·우광남의 효자 정려. 난곡(蘭谷) 우석일(禹錫一)[1612~1666]은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의 문인이며, 학문뿐만 아니라 효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우석일의 재종조(再從祖)인 우광남 역시 모친이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였으며 부친이 도적을 만나 해를 당하려고 할 때 눈물로써 도적을 감...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에 전해오는 효자 이야기. 우씨 가문의 효자가 부모님의 병환을 낫게 하려 호랑이를 찾아 나섰고, 부모님 시신이 훼손되자 강도를 쫓아가 결국 시신을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 3권 419-420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월림마을 우씨 가문에 효자가 있었다. 부모님이 병환이 들자 힘든 농사일...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신. 우정규(禹禎圭)[1718~?]의 자는 여보(汝寶),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남재(南齋) 우희길(禹熙吉)의 자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우성린(禹聖隣), 할아버지는 우형하(禹亨夏), 아버지는 우서주(禹徐疇)이다. 모친은 노세첨(盧世瞻)의 딸이다. 우희길이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 목현리 인근에서 거주하였을...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에 월명산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의 월명산에는 두 개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데, 이 무덤에는 역녀(驛女) 월명과 경주 총각 삼돌이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함양군사』3권의 356-357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의 월명 처녀와 경상북도 경주 총각 삼돌이의 지극한...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출신의 유학자 우홍전의 문집. 우홍전(禹洪傳)[1702~1786]의 자는 군보(君甫), 호는 월주(月洲)·농와(聾窩), 본관은 단양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함묵당(含黙堂) 우필인(禹弼寅), 아버지는 돈암(敦菴) 우완(禹琬), 어머니는 흥덕장씨(興德張氏)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를 아내로 맞아...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허용두의 문집. 허용두(許容斗)[1851~1934]의 자는 군백(君伯), 호는 위암(渭巖),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 정취마을에서 태어났다.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삼원당(三元堂) 허원식(許元栻)[1828~1892]의 아들이다. 19세에 아버지를 따라 가 성재(性齋) 허전(許傳)[179...
-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오는 서사민요.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오는 「유진사네 유생이는」은 이야기를 갖춘 서사민요이다. 작품의 내용이 비교적 길게 나타나고 있으며, 유진사네 유생이 급제를 하고 혼인한 처녀가 죽자 살려내었다는 이야기가 전반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34쪽에 수록되어 있다. 유생이 과거에 급...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있는 육십령 고개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문화원에서 1994년에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02쪽과,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2012년에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92쪽에 수록되어 있다. 고개의 이름이 ‘육십령’이 된 데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영(嶺)마루가 경상남도 안의 감영과 전라북도...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전해오는 민속놀이. 설에 가족들이 모여 윷가락을 던지고 윷의 모양에 따라 말판을 움직이면서 노는 놀이이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聖湖僿說)』 사희조(柶戱條)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遺俗)으로 본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북사(北史)』와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의 문헌에는 백제에는 저포(摴蒲)·악삭(握槊) 등의 잡희(雜戱)가...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에 은행나무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은행정 은행목」은 운곡리 은행마을 앞에 자리한 은행나무가 생기게 된 유래담과 일제 강점기에 은행나무를 베어내려고 하였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는 1999년에 천연기념물 제40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983년 함양군에서 발간한 『(우리고장 전통가꾸기...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에서 소장 중이었던, 조선 후기 고승 응윤의 문집인 『경암집』의 책판. 응윤 경암집 목판은 전체 47매였으나 4매를 분실하여 현재 43매를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응윤의 성은 민씨(閔氏)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초명은 관식(慣式)이었으나 뒤에 응윤으로 고쳤다. 법명은 경암(鏡巖)인...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구진정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중학교 뒤에 구진정이란 우물이 있었다. 이곳에는 조선 시대 이 진사가 정쟁에 휩쓸려 함양군 수동으로 귀양을 와서 특유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귀양살이를 잘 이겨내고, 9명의 아들을 모두 진사시에 합격시켰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3...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함양군사』 3권의 364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동구마을에 마을 청년들의 흠모 대상인 어여쁜 이낭금달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마을의 심씨 총각이 하루는 꾀를 내어 자신의 베잠방이를 몰래 처녀의 방에 넣어 두었다. 처녀가 자는 동안에 벌어진 일이라 처녀는 까마득히 몰랐다. 처...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에 이서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이서구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장수의 원혼을 달래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함양군사』3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서구가 함양군수로 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함양군수로 오는 사람은 첫날밤에 죽어나가 아무도 오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전라감사를 지낸 이서구...
-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으로 조선 후기 정희량의 난에 창의한 충신. 이숙(李橚)의 본관은 성주(星州)로, 고은(孤恩) 이지활(李智活)과 송계(松溪) 이지번(李之蕃)의 후손이다. 동생은 이진(李榗), 아들은 이한필(李漢弼)이다. 성주이씨 집성촌인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서 태어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이 발생하자 이와 공모한 정희...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에 중수된 정자. 이요정은 구룡천과 인접하여 그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구룡천은 조선 전기 함양군수였던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그 아름다움을 보고 서계(西溪)라고 하였던 곳이다. 구룡천 상류부 오른쪽 언덕 구릉의 남사면 말단부에 있다. 함양군 함양읍에서 국도24호선인 함양로를 따라 인월 방...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청향당 이원의 『청향당실기(淸香堂實記)』 간행을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목판. 청향당(淸香堂) 이원(李源)의 본관은 합천이다. 자는 군호(君浩)이고, 호는 청향당이다. 33세에 진사에 합격한 이후 심성수양과 학문에 매진하였다. 일찍이 남명 조식과 교유하였고, 퇴계 이황과도 도의로 사귀며 학문적 교류를 하였다. 46세에 곤양 훈도(昆陽訓導)에...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워진 효자 이재환을 기리는 정려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상비마을 입구에 정려각이 있으며, 정려각의 앞면과 뒷면에 길이 나 있다. 인접한 거리에 큰 노거수가 있으며, 그 아래에 정려각이 있다. 이재환 효자 정려비는 원주(原州)가 본관인 이재환의 효행을 기려 1826년(순조 27)에 내려진 정려이다. 이...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군수 이헌주의 선정비. 함양 군수를 역임한 이헌주(李憲周)의 선정을 치하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헌주는 전임 군수인 김려가 1822년에 순직한 후에 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1823년(순조 23) 3월에 이 선정비를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에 위치한 상림공원 내의 선...
-
1862년 3월에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발생한 반정부 농민 항쟁. 경상남도 함양의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1862년(철종 13) 3월 16일에 발생하였다. 농민봉기의 주된 원인은 삼정(三政)의 문란을 비롯해 환곡의 폐단에 대한 시정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과 지역 관리들의 탐학 때문이었다. 19세기는 조선의 역사에서 격변의 연속이었다. 그 전반기 60여 년은 이른바 세도정치...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내산치라골 마을 뒷구릉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임여방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나주임씨 종친회에서 임여방(林汝芳)[1661-1752]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유허비의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종친회에서는 6·25전쟁 이전[1948년 경]일 것으로 추정한다. 1728년(영조 4)에 정희량이 반란을 일으키자, 임...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건립된 임운의 효행 정려. 임운 효자 정려는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하백마을 앞에 있으며 난평삼거리의 동쪽인 한들로 변에 해당한다. 한들로 현대종합기계 북서쪽 공터에 정려가 있다. 임운(林運)[1709~1775]은 본관이 나주이고, 만회(晩悔) 상재(尙榟)의 후손이다. 임운은 어머니가 병이 생기자 변을 맛보고 병의 차도...
-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온 경상우도초유사 김성일이 민심수습과 의병모집을 했던 사건.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우도초유사(慶尙右道招諭使)로 임명된 김성일은 1592년 5월 4일에 함양군에 도착하여, 8월 6일에 경상좌도관찰사에 임명되어 이동할 때까지 약 3개월간 함양군을 거점으로 민심위무와 항전독려 및 의병모집 활동을 하였다. 1592년 4월 13일, 왜적의 부산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에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도촌마을 오낭원이 인심이 좋아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였는데, 한 손님이 청암산 상투 바위 위에 묘를 쓰라고 하여 그대로 하였으나 장군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74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도촌마을에 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성리학자. 전병순(田秉淳)[1816~1890]의 자는 이숙(彛叔), 호는 부계(扶溪)·겸와(謙窩),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1816년(순조 16) 4월 27일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추천(楸川)마을[지금의 금당리 추상마을과 추하마을 일대]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동인(田東仁), 할아버지는 전시룡(田始龍)이다. 할아버지는...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에 스님의 은혜를 배신하고 죽음을 맞은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함양군사』3권의 359-360쪽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삼봉산 중턱에 절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주지 스님과 동자가 살았는데 하루는 스님이 함양읍으로 시주를...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일두 정여창의 신도비. 정여창(鄭汝昌)[1450~1504]은 본관은 하동, 자는 백욱(伯勖), 호는 일두(一蠹),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정여창은 안음현감으로 5년간 재임하면서 백성들에게 인정을 베풀고 문교(文敎)를 일으키는 등 덕행을 행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1689년에 신도비를 세웠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에서 일두 정여창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 이 책판은 모두 369매로,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것이다. 그의 문집은 정구와 정여창의 증손자 정수민(鄭秀民)이 함께 유문을 수습하고, 편집하여 1635년(인조 13) 처음 발행하였다. 이어 1743년(영조 19)에 도암(陶菴)...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임과 수수밭에서 사랑을 나누던 내용을 노래한 것.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15쪽에 수록되어 있다. 「정요」는 남녀의 사랑을 다룬 내용을 짧은 사설로 드러내고 있다. 노래에서 화자는 수수밭에서 임과 사랑을 싹틔운 것으로 보이며, 추수를 구시월까지 참아 달라고 수수밭 임자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노래가 이루...
-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의병. 정재호(鄭在鎬)[1863~1944]의 본관은 하동이다. 함양군 수동면에서 산 몽천(夢泉) 정광한(鄭光漢)[1588~1648]의 후손이며, 도곡서원에 제향된 만강재(晩康齋) 정덕하(鄭德河)[1782~1854)의 증손이다. 정재호는 1894년(고종 31) 무과에 급제하였다. 1906년 봄에 민종식(閔宗植)[1861~19...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에 건립된 정현의의 정려.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 산146-1번지에 있다. 북쪽에는 산두마을이, 남쪽에는 긴 구릉이 펼쳐지는데 정려각은 구릉말단부와 함양남서로가 접하는 곳에 있다. 이곳은 휴천면 소재지에서 함양남서로를 따라 1.2㎞쯤 가면 된다. 정현의(鄭鉉毅)는 해주사람으로 2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3년상을 다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에서 정희량이 일으킨 난. 정희량(鄭希亮)은 정온(鄭蘊)의 현손이다. 본명은 준유(遵儒)이며 참봉(參奉) 중원(重元)의 둘째 아들이다. 안의의 사족으로 노비와 전택이 많았다. 당시 붕당의 전개 양상에서 남인을 실각시키고, 그들을 처벌하는 경중에 따라 서인 내에서도 노론과 소론의 입장 차가 있었다. 재야의 남인들과 소론 계열에서는 노론 세력들...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조귀천의 정려.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 독산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개천인 지우천과 인접하여 있다. 비의 형태는 화강암의 받침 위에 비석을 놓았으며, 비석의 양쪽에 장방형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가첨석을 올려놓았다. 비에는 ‘효자백정조귀천지려 부득악질단무명지화 이진기질즉유사문복호 명려 함풍5년 을묘 사월이일...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조을대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조을대」는 이름도 성도 없는 떠돌이가 오랑캐가 쳐들어 왔을 때 장수가 되어 오랑캐를 무찌르고, 이후 임금님에게 인정받아 공주를 아내로 맞았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함양군사』 3권 408쪽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혼자 자랐...
-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서대순의 문집. 서대순(徐玳淳)[1810~1889]의 자는 윤백(允伯), 호는 졸암(拙菴)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추증된 서기보(徐麒輔)이다. 어머니는 김녕김씨로, 김세태(金世泰)의 딸이다. 저포(樗圃) 노광주(盧光柱) 등과 교유하였다.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
-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 줄다리기의 기원은 농경문화와 관련이 있다. 기록으로 보면 당나라 봉연(封演)이 쓴 『봉씨문견기 (封氏聞見記)』에 춘추시대 오(吳)·초(楚) 사이의 싸움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5세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처음으로 줄다리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줄다리기에서 암줄이 이기...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지리산 무당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지리산 무당이 법우화상을 꾀어 여덟 딸을 낳아 전국 팔도의 무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의 377쪽에 수록되어 있다. 지리산 산신설화에는 4가지 설이 있다. 그중 법우화상과 지리산 무당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
18세기에 편찬된 지도책인 『지승』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현의 지도. 『지승(地乘)』은 총 6책으로 구성된 회화식 군현 지도집으로, 책 크기는 27×19㎝이다. 각 책에는 각 도별 지도와 각 도의 군현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본 지도가 수록된 제3책 경상도를 살펴보면, 먼저 도의 전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경상도 지도가 처음에 수록되어 있으며, 다음에 경상도의...
-
18세기에 편찬된 지도책 『지승』에 수록된 함양부의 지도. 『지승(地乘)』의 제작 시기는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1776년에 이성(尼城)에서 초산(楚山)으로 개칭된 충청도의 이산(尼山)과 평안도의 이산(理山)은 반영되어 있고, 1787년 신설된 장진, 1789년에 이동한 수원의 읍치, 1795년에 시흥(始興)으로 개칭된 경기도의 금천(衿川)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에 건립된 진양강씨와 권무중의 정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 488번지에 있다. 신관리 기동마을 동쪽 앞산 너머 들판 초입에 있다. 증 참판 권수룡의 처인 열녀 진양강씨는 남편이 사망하자 유서를 남겨 뒷일을 처리하도록 부탁하고 자신은 남편의 뒤를 따랐다. 경상도관찰사가 이런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여 1832년에 정려가 내려졌다...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하씨 삼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정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의 도천마을에 있다. 진양하씨 삼인정려는 우계(愚溪) 하맹보(河孟寶), 하원룡(河元龍), 하필명(河必明)의 정려이다. 하맹보는 어려서부터 옥계 노진의 문하에서 학문에 힘썼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우애가 두터웠다. 아...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고로쇠물을 마시러 용추계곡을 오가면서 불렀다는 민요. 「질굿내기」는 「짓구내기」, 「길군악」으로도 불린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용추폭포가 가사에 등장하며, 용자정(龍自亭) 앞에 길군악 비석이 있다. 2013년 김기현이 엮고, 함양군에서 발행한 『함양의 들소리』[2013]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2011년 7월부터 함양군 민속예술...
-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656년에 정수민이 편찬하고 1888년에 후손들이 간행한 향토지. 정수민(鄭秀民)[1577~1658]은 조선 후기 학자이다.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증손자이다. 학덕과 품행이 정여창과 비슷하다 하여 소일두(小一蠹)라고 불리었다. 인조...
-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하원순의 문집. 하원순(河元淳)[1858~1924]의 자는 치경(致敬), 호는 청봉(晴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하석간(河錫幹)이다. 어머니는 재취부인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우(盧光禹)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당시 우동(愚洞)]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남원 뇌...
-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유학자 박용근의 문집. 박용근(朴容根)[1857~1915]의 자는 여회(汝晦), 호는 춘사(春史), 본관은 함양이다. 7대조 지지당(止止堂) 박승뢰(朴承賚) 때부터 운봉현(雲峯縣)[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의 통일신라 이래 행정 구역]에 거주하였으며,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갈포(葛圃) 박문식(朴文植)은 효...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정희보의 문집. 정희보(鄭熙普)[1683~1763]의 자는 중욱(仲旭), 호는 퇴성헌(退省軒),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72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섬시 직장(內贍寺直長)에 제수되었다. 1733년에는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시강원 보덕과 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 조하망(曺夏望), 강박(姜樸) 등과 교유(交遊)하며 이름...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원산리에 팥죽배미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팥죽배미」는 원산마을의 못된 박씨가 가난한 강씨의 논을 팥죽 한 동이를 주고 빼앗았는데, 고을에 부임한 사또가 강씨 부인의 사연을 듣고 해결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68쪽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원산리에 박씨라...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함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풍천노씨 가학십도」의 책판이다. 총 수량은 19매 38장이다. 풍천노씨가학도서(豊川盧氏家學圖序)는 총 3매 6장으로, 1847년에 홍직필(洪直弼)과 노광리(盧光履)가 지은 서문이 제5장까지로 되어 있다. 제6장은 가학십도의 의미를 4언 4구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의 풍천노씨 가학십도는 총 14매 28장...
-
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풍천노씨 가문에서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모아 정리한 문집. 노광리(盧光履), 노광두(盧光斗)[1772~1859] 등이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1848년에 간행하였다. 『풍천노씨가학십도(豊川盧氏家學十圖)』는 1책[37장]의 목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2×21.5㎝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인. 하재구(河在九)[1832~1911]는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우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백(致伯), 호는 위수(渭叟)이다. 고조부는 하한윤(河漢潤), 증조부는 하성원(河聖源), 조부는 하필명(河必明)[1783~1841], 부친은 진사(進士) 하석문(河錫文)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정효맹(鄭孝...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의 한신계곡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전해오는 「한심한 한신계곡」이야기는 험난한 계곡에서 한신이라는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원래는 계곡이 험난하며 물의 양이 갑자기 많아지고 굽이치는 부분이 많아 ‘한심(寒深)계곡’으로 부르다가 ‘한신계곡’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험난하지만 경치가 아...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시누이가 오라비에 대한 야속함을 한탄하며 부르던 노래. 시누와 올케가 깊은 소(沼)에 빠졌는데 오라버니가 올케부터 구하는 것을 보고 시누가 이것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14쪽에 수록되어 있다. 2009년 2월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 효산마을 마을회관에서 백상동[여, 76세]으로부터 채록...
-
조선 후기 이덕무가 경상도 함양 지역에서 저술한 영남지방 견문기.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자는 무관(懋官), 호(號)는 아정(雅亭)·형암(炯庵)·청장관(靑莊館)·동방일사(東方一士)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무림군(茂林君) 이선생(李善生)[1410~1475]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성호(李聖浩)[1718~?]이다.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문충공 하륜을 위해 건립한 재실.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河崙)[1347~1416]을 위해 건립한 재실로 1855년 하문도가 호정집을 중간한 장소이기도 하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서쪽 2칸은 방으로 동쪽 2칸은 마루로 구성하였으며 매년 음력 3월 항례를 올리고 있다. 함양...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금대암에 있는 조선 시대의 종. 함양 금대암 동종이 있는 금대암은 신라 656년(태종무열왕 3)에 행우조사(行宇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로서 금대사(金臺寺)라고도 한다. 1950년 6·25 전란 때 소실된 뒤 금대암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금대암에 있는 신중탱화. 신중탱화(神衆幀畵)는 불법을 보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것으로, 주로 조선 후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다른 불화들에 비하여 한국의 재래 신들이 많이 묘사되고 있어 토착신앙과 불교의 조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금대암은 지리산에 있는 경상남도의 전통사찰 84호로, 656년(태종 무열왕 3)에 행호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있는 옥계 노진의 신도비. 노진(盧禛)[1518~1578]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자응(子膺)이고 호는 옥계(玉溪)·칙암(則庵)이며 본관은 풍천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증조부는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이고 할아버지는 노분(盧昐)이다. 아버지는 참봉 노우명(盧友明)이고 어머니는 권시민(權時敏)의 딸이다. 153...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고택.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노참판댁 고가는 개평마을의 동쪽 지역, 풍천노씨 대종가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삭막교에서 서쪽으로 약 85m 떨어진 곳 우측에 함양 노참판댁 고가가 있다. 호조참판에 추증된 노석규(...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도솔암에 있는 조선 시대 목조관음보살좌상. 경상남도 함양군 도솔암 법당에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으로 조성발원문을 통해 1707년 진열(進悅), 계초(戒椘), 신연(信衍), 태응(太應), 태원(太元), 청휘(淸輝) 등 6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조각승인 진열의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2010...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백운암에 있는 조선 시대 동종. 함양 백운암 건륭32년명 동종은 명문을 갖춘 조선 시대 종으로, 1767년(영조 43)에 제작되었다. 원래는 보운암(普雲庵)에 있던 유물이다. 주종장(鑄鍾匠)으로는 백예적(白詣適)과 안명발(安命發)이 기록되어 있다. 백예적은 옥천사(玉泉寺) 동종[1776] 제작에도 참여한 장인이다....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경상남도 함양군 백운암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1674년(현종 15) 조각승 성조(性照)를 비롯한 7명의 조각승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운산 영은사에 봉안하기 위해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하였는데, 경상남도 함양군 영은사가 폐사하면서 인근 부속암자인...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 앞마당에 있는 조선 시대 승탑군.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내장사(內藏寺)의 창건 기록에 의하면 영은사(靈隱寺)는 신라 시대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승탑군에 확인된 명문을 참고할 때 1743년(영조 19)에 처음 승탑이 조성된 이래로 18세기 말까지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옛 영은사 터에 있...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법인사에 있는 감로왕도. 가로 144㎝이고, 세로 141㎝로 진채와 담채로 병용하여 채색하였다. 화폭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위쪽의 중앙에는 7여래가 좌측의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우측의 지장보살·관세음보살과 함께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다른 형상들에 비해 크게 묘사되어 있다. 7여래의 의상은 굵은 먹선으로 제비꼬리처럼 날렵하...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원래 경상남도 함양군 덕유산 장수사(長水寺)의 부속 암자인 은신암(隱身庵)에 있었으나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법인사로 옮겨져 봉안되었다. 복장물에서 나온 발원문을 통해 영규(靈圭)가 불사의 책임을 맡고, 조각승 조능(祖能)이 1657년(효종 8)에 조성...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에 보관되어 있는 『묘법연화경』의 목판. 『묘법연화경』은 초기 대승경전의 하나로 한국 천태종의 근본경전이다. 일명 『법화경』이라고도 한다. 중국 후진(後秦)의 구마라습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인데, 전체 7권 28품이다. 본문이 221매이고, 변상도(變相圖) 2매, 예제편람 1매, 규작음 2매, 다라니경 1매 등으로 구성되어 있...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에 있는 지엄을 그린 조선 후기 초상화. 「함양 벽송사 벽송당 지엄 진영」은 원래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있는 벽송사에 있었으나 효과적인 보존을 위하여 본사인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갔다. 가로 85㎝, 세로 135㎝의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화면의 상단에는 가로의 나무 축이 있고, 걸기...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건립된 교육기관. 함양 송호서원은 조선 전기 단종의 폐위 소식을 접한 뒤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있는 박유산(朴儒山)[높이 712m]으로 은거한 고은(孤隱) 이지활(李智活)[1434~?]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함양 송호서원은 이지활을 추모하기 위하여 1830년(순조 30)에 건립되었다. 1832년부터는 세종의 1...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풍년의 기원과 지역의 경치를 예찬하며 부르는 노래. 경상남도 함양군의 주민들이 풍년이 오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으며, 함양군 내의 경치를 예찬하는 노래이다. 2012년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05쪽에 수록되어 있다. 2009년 2월에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문하마을 마을회관에서 박금순[여, 82세]으로부터...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 대고대마을에 있는 양희의 신도비. 양희(梁喜)[1515~1581]는 문신으로, 자는 구이(懼而)이고 호는 구졸암(九拙菴)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1580년(선조 13)에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옥하(玉河)의 객관에서 병사하였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양의 구천...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임술증의 처 밀양박씨의 정려.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번지 상림공원 역사인물공원에 있다. 1797년(정조 21)에 세워졌다. 비문은 일두 정여창의 7대손인 정덕제(鄭德濟)가 지었다. 정려비는 원래 함양향교 입구에 있었으나 1932년에 도로 확장공사로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111-69로 옮겨졌다. 이후 20...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보살좌상 및 복장물 일괄. 함양 영원사에 있는 목조보살좌상으로 1655년 조각승 승일, 성조 등이 제작하였다. 목조보살좌상에서는 경전류 7종, 다라니인경 15뭉치, 발원문 1개, 서천취경제 1개, 후령통 1개 등 모두 25종의 복장물이 발견되어 2016년 9월 29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8호로 지...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영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탑군. 승탑은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놓고 쌓은 돌탑을 지칭하는 것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 승탑은 설파상언(雪坡尙彦)[1707~1791] 대사의 것으로 가장 먼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승탑은 당호가 새겨져 있지만 주인공들의 생몰연대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산...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백운암 입구에 있는 석장승. 함양 영은사지 석장승은 신라 시대의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한 영은사(靈隱寺) 경내에 있었던 사찰 장승이다. 현재는 백운암 입구의 길가 양쪽에 1기씩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장승에는 각각 ‘우호대장군(右護大將軍)’, ‘좌호대장군(左護大將軍)’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하...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용추사에 있는 창건주 각연대사의 진영. 「함양 용추사 각연대사 진영」은 함양 용추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4점의 고승 진영 중의 1점이다. 각연(覺然)은 487년(소지왕 9)에 장수사 및 그 부속 암자인 용추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장수사(長水寺)는 소실되었지만, 18세기 설파 상언이 장수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한 것으로 유명하...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천룡 탱화. 「함양 용추사 건륭18년 천룡도」는 모시 바탕에 채색을 한 것이다. 세로 61.7㎝, 가로 107.8㎝의 화폭에 붉은색 선으로 가장자리를 둘러 경계를 구분하였다.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황토색을 많이 사용하였고, 연녹색도 사용되었지만 탈색되어 현재는 흔적만 살필 수 있다. 화면의 중간에는 부처의...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용추사에 봉안되어 있는 무학대사의 진영. 용추사 무학대사 진영은 용추사에 봉안되어 있는 4점의 고승 진영 가운데 1점으로 자초(自超)[1327~1405]의 것이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은신암 등지에는 무학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온다. 진영은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것이다. 화면에는 전체적으로 얼룩과 박락(剝落)[그림이 오래 묵어 긁히고...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용추사에 있는 송운대사의 진영. 「함양 용추사 송운대사 진영」은 용추사에 봉안되어 있는 4점의 고승 진영 가운데 1점으로 사명대사[1544~1610]의 것이다. 사명대사의 자는 이환(離幻)이고, 호는 사명당(四溟堂)·종봉(鍾峯)·송운(松雲)이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를 도와 승병을 이끌었고, 종전 후에 강화사(講和使)로 일본에 가서 포로...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일주문. 용추사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용추사 일주문은 여타 일주문과 다르게 화려하고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계곡의 상류 용추사 입구...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지장시왕상.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상으로 복장기를 통해 1694년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모두 13구의 불상이 있는데 중앙에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무독귀왕상이, 그 좌우로 시왕상이 5구씩 배치되어 있다. 2002년 10월 24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0호로 지정되었다....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사에 있는 청허대사의 진영. 「함양 용추사 청허대사 진영」은 용추사에 봉안되어 있는 4점의 고승 진영 가운데 1점으로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것이다. 서산대사의 자는 현응(玄應)이고, 호는 청허(淸虛)이다. 서산대사는 조선 중기 대표적인 선승이면서 임진왜란 때 궐기하였던 승병의 지도자였다. 진영은 비단 바탕에...
-
조선 중기 지족당 박명부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에 건립한 서당. 박명부(朴明榑)[1571~1639]는 문신이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도 활약하였다.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발발했는데, 청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하였다. 청과의 강화로 낙향하여 농월정을 건립하였지만 다시 관직에 나가 예조참판, 한성좌윤,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지족당문집』이 있다....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풍천노씨의 대종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함양 일두고택이 있고, 그 동쪽에 풍천노씨 대종가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앙교가 있고, 중앙교에서 서쪽으로 약 8...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호정 하륜의 불천위 위패를 봉안한 사당. 호정(浩亭) 하륜(河崙)[1347~1416]은 이색(李穡)[1328~1396]의 제자로 1365년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이방원(李芳遠)[1367~1422]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고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다. 그 후로 영의정부사·좌정승·...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상림 내에 있는 조선시대 중층 누각.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의 함양 상림 내의 다볕당 마당 한쪽에 있다. 함양 함화루는 조선시대 함양읍성(咸陽邑城)의 남문으로, 당시 명칭은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고 하여 망악루(望嶽樓)라 하였다. 함양읍성은 1380년에 둘레 735척[약 223m]의 토성으로 쌓았다가 1729년(영...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과 그 주변 풍광. 거연정 일대(2만 143㎡)의 화림동 계곡은 남강의 상류인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함양군 서하면과 안의면을 거쳐 흐르는 계곡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 안의현에 속하였으며 영남 제1의 명승으로 심진동·원학동과 함께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한 곳이었다. 강 중앙에 솟은 자연바위에 세워진 거연...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고택.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는 1880년에 건립된 주택으로 풍천노씨가 처음 지었으나 최근에 하동정씨 종가에 매매되어 하동정씨 고가가 되었다. 남강 상류 우안의 덕암천과 평촌천 합류지점에 있고 천왕봉의 동쪽 사면 산록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함양 일두 고택의 서쪽에 있는데...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화림동 계곡 암반 위에 건립한 조선 후기 정자. 조선 중기 화림재 전시서(全時敍)가 함양군에 은거할 때 억새로 지은 것을 후손인 전재학이 1872년 재건한 정자이다. 정면에는 구한말 유학자인 송병선이 쓴 ‘거연정’ 현판이 걸려 있는데 ‘거연(居然)’이라는 정자 이름은 중국 송나라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에서 딴 것으로 사람이 물과 돌이...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화림동 계곡의 다볕자연연수원 앞쪽 남강변에 있다. 1802년에 서강(西岡) 전세걸(全世杰)과 전세택(全世澤)이 조선의 5현이라 불린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함양 군자정은 정여창의 처가가 있던 곳으로, 해동의 군자가 머무른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하였다. 군...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복장물.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물 일괄은 2006년 4월 6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복장물로는 전지 1장으로 이루어진 「조성발원문(造成發願文)」과 함께 대장경 목록 1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2권, 『보치진언다라니(寶齒眞言陀羅尼)...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법인사에 있는 지장보살 탱화. 「함양 법인사 지장탱」은 수미대좌 위에 앉은 큼직한 지장보살이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장식이 단순한 수미단(須彌壇)[불상을 올려 놓는 단]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다. 왼손은 단전에 두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내미는 설법인의 자세를 취한다. 연녹색 바탕의 신광과 진녹색 바탕의 두광을...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상연대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좌상. 함양 상연대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612년 조각승 현진에 의해 만들어진 불상으로, 2008년 1월 10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6호로 지정되었다. 함양 상연대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 39.5㎝의 소형불상이다. 긴 상체에 비해 무릎이 낮으며, 머리를 앞으로 숙인 채 결가부좌를 하고...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좌상. 함양 안국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한 안국사의 극락전에 봉안된 삼존불 가운데 좌협시불이다. 대세지보살상인 우협시불은 관음보살좌상을 모방하여 제작한 것이다. 원래 불상은 대구광역시 통천사로 옮겨 갔다고 한다. 2004년 개금(改金)[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하는 과정에서 가로 14...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한 안국사 극락전 중앙불단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현재 삼존불로 조성되어 있다. 우협시는 좌협시를 모방하여 제작한 것이고, 원래 불상은 대구광역시 통천사로 옮겨 갔다고 한다. 2004년 개금하는 과정에서 가로 17㎝, 세로 9㎝의 복장공을 열었으나 복장유물은 이...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에 있는 화사 천여가 제작한 산신탱. 한국의 사찰에서는 특이하게 산신각(山神閣)을 별도로 두고 그 안에 산신도를 모시고 있다. 이것은 한국 고유의 민간신앙과 불교가 결합하여 생겨난 것으로,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함양 영각사 산신탱」은 비단 바탕에 채색을 하였으며, 화면의 가운데 절반 정도의...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오담 정환필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주택. 정환필은 정여창(鄭汝昌)의 12세손으로 함양 일두 고택에서 분가하였다. 호는 오담이고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학식이 높아 호남의 기정진 등과 교유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의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 종암교에서 서...
-
조선 말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건립된 고택. 우명하교길에서 효리길로 진입하면 마을회관이 보이고, 마을회관 바로 뒤에 있다.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는 우명천의 오른쪽 언덕에 있는 침식성 저구릉인 승안산 말단부에 남동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우명리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7대손 정희운(鄭凞運)이 경종 연간[1720~1724]...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중층 누각.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1-15에 있다. 함양군청 정면 고운로와 학사로가 교차하는 남서쪽으로 주변에 우체국과 법원, 경찰서 등이 있다. 신라시대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함양의 태수[당시 천령태수]로 재임할 때 자주 올랐다고 전해진다. 특히 성리학자로서 영남학파의 종조였던 점필재 김종직(金宗...
-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 『해동지도』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새롭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 비변사에서 제작한 지도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도, 평안도, 함경도 군현지도에는 비변사지도를 참조하여 수정하였음을 나타내 주는 쪽지가 첨부되어 있다. 지도에 수록된 내용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시기적 내용을 담...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모아 놓은 조선 후기 관리들의 선정비군. 조선시대 수동면 일대에서 찰방, 군수,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찰방에 대한 선정비가 4기, 군수 및 관찰사는 각 1기, 기타 1기이다. 특히 찰방에 대한 것이 많은데, 이는 화산리 일대에 조선 시대 사근도를 관할하는 사근역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근도의 본역은 사근...
-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거주한 화헌 서인순의 시문집. 서인순(徐璘淳)[1827~1898]의 자는 은경(殷卿), 호는 화헌(華軒)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서인순의 13대조이다. 5살 때부터 서당에서 공부하였으며, 20살에 향당에 이름이 알려졌다. 번번이 향시에 낙방하자 과거에 뜻을 접고 위기지학(爲己之學)...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황오의 문집. 황오(黃五)[1816~?]는 자가 사언(四彦), 초명은 이로(里老), 호는 녹차(綠此)·한안(漢案)·동해초이(東海樵夷)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태어났다. 방촌(尨村) 황희(黃喜)[1363~1452]의 후손이다. 강신용(姜信鏞)과 가까운 족친(族親)들이 글을 수집하여 문집을...
-
정유재란 때인 1597년 8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황석산성에서 왜적의 공격으로 발생한 전투. 함양 황석산성은 석성으로 둘레는 2,924척[877.2m]이었다. 성 안에는 한 줄기 물줄기와 군창(軍倉)이 있었는데, 18세기경에 군창은 없어졌다. 1597년의 정유재란 때 왜군이 음력 8월 16일부터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8월 18일까지 3일간 지속된 공방전이다. 임진왜란...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황석산성 피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관군이 패하여 도망하자, 옥녀라는 젊은 부인이 왜병을 부엌칼로 찌르고 성벽으로 몸을 던지자 많은 아낙들이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76쪽에 수록되어 있다. 1597년 정유년에 왜적이 재차 침략을 해왔을 때 경상남도...
-
정유재란 때 경상남도 함양군의 황석산성을 둘러싼 의병과 왜군의 치열한 전투. 의병항쟁은 임진왜란 때 전쟁으로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자, 희생과 구국정신으로 침략군인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임진왜란 때 활약이 컸던 의병장으로는 곽재우·고경명·조헌·김천일·김면·정인홍·정문부·최경회·김덕령·조종도 등을 들 수 있으며, 경상우도 지역에서 먼저 의병...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사람들을 봉안하기 위해 설립된 사당. 황암사는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안음현감 곽준과 함양군수 조종도를 비롯한 3,500명의 순국선열들을 봉안한 사당이다. 1714년(숙종 40)에 황석산 아래에 사당을 짓고 ‘황암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봄·가을로 위령제를 지냈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활동한 문인. 황오(黃五)[1816~?]의 자는 사언(四彦), 호는 녹차(綠此)·녹차거사(綠此居士)·한안(漢案)·동해초이(東海樵夷)·녹일(綠一)이다. 조선 후기인 1816년(순조 16)에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어머니는 영일정씨(迎日鄭氏)로, 정추희(鄭樞熙)의 딸이다. 황오에 대한 기록이 남아...
-
근대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민재남의 문집. 민재남(閔在南)[1802~1873]의 초명은 수일(壽一), 자는 겸오(謙吾), 호는 회정·청천(聽天)·자소옹(自笑翁)·명곡주인(明谷主人)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감찰에 추증된 민이환(閔以瓛)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능(盧稜)의 딸이다. 외가인 함양에서 태어났다. 1867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