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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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Dolmen |
이칭/별칭 |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강병학 |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개설]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하는데,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 형식 중 하나이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고임돌, 지석(支石)]에서 유래하였으며, 보통 큰 돌을 이용하여 돌상자 모양의 무덤방을 만든 후 무덤방 위에 큰 덮개돌을 올려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일반적인 무덤으로서의 역할 외에도, 공동 묘역의 묘표석이나 집단의 영역을 표시하는 기념물 혹은 제단 등의 기능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장품은 청동 검·방울·거울, 간 돌검·간 돌 화살촉, 옥제 장신구류, 토기류 등이며, 고인돌에 묻힌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주는 위세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인돌의 형태는 고임돌의 유무 및 형태, 구조에 따라 탁자식 고인돌, 기반식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 위석식 고인돌로 구분된다. 탁자식 고인돌은 판판한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땅 위에 네모꼴의 무덤방을 만들고, 무덤방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는 형식이다. 한강 북쪽이 주 분포권을 이루고 있어 북방식이라고도 한다. 기반식 고인돌은 땅 위에 있는 3~4개 또는 그 이상의 받침돌이 덮개돌을 받치고, 땅속에 무덤방을 마련한 형식이다. 주로 남쪽에 집중되어 있어 남방식이라고도 부른다. 개석식 고인돌은 땅 위에 커다란 덮개돌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덮개돌과 무덤방 사이에 받침돌을 두지 않아 무지석식(無支石式)으로도 불린다. 위석식 고인돌은 덮개돌 아래에 자연석 또는 판석(板石) 수 매를 돌려놓은 형태인데, 판석을 이용한 것은 소위 제주식이라 부른다.
[화성시의 고인돌]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약 6만여 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남·북한 모두 합쳐 약 3만여 기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지역은 서북한 지역을 비롯한 충청도, 전라도 등의 서해안 지역이다. 경기도에서는 총 539기의 고인돌이 알려졌는데, 화성 지역을 포함한 서해안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한강 하류와 안성천, 진위천, 황구지천 유역에 해당한다.
화성 지역에서 보고된 고인돌은 송산동 고인돌 2기, 수기리 고인돌 3기, 병점동 고인돌 7기, 반송리 고인돌 2기, 관항리 고인돌 3기, 동오리 고인돌 5기, 귀래리 고인돌 4기, 망월리 고인돌 2기, 제기리 고인돌 1기, 문학리 고인돌 1기 등 총 30기이다. 이들 고인돌은 대부분 하천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부에 자리한다. 정식 발굴을 통해 조사된 고인돌은 없으며, 모두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에 고인돌의 정확인 구조나 형식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병점동 고인돌 1·2호, 수기리 고인돌 1·2호는 판석형 석재를 눕혀 덮개돌을 받치게 한 후 내부에 별도의 무덤방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탁자식과 기반식의 중간 단계로 추정되는 변형 고인돌로 보이며, 화성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가 한반도의 중간 지대임을 상기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대부분의 고인돌이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으며, 구조나 형식 또한 불분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울러, 기존에 보고된 고인돌 역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는 개발 사업으로 인해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은 채 위치가 이동된 것들도 있다. 기존에 알려진 고인돌만이라도 보존 및 관리에 관심을 기울여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