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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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22-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2년 9월 - 문화공보부,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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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12월 21일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사적 제299호로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6월 - 제암리 입구에 3·1독립운동추모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9년 4월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3·1운동순국기념탑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0년 8월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3·1예배당 건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0년 10월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유족회관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9월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3·1운동순국기념탑 추가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3년 11월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제암리3·1정신교육관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12월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23인상징조형물 설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3월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개관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5년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스코필드 동상 건립 |
현 소재지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22-4 |
성격 | 유적지 |
관련 인물 | 안정옥|안종린|안종락|안종환|안종후|안진순|안봉순|안유순|안종엽|안필순|안명순|안관순|안상용|조경칠|강태성|홍원식|홍순진|김정헌|김덕용|안무순|안경순|김흥렬|김성열|김세열|김주남|김주업|김흥복 |
면적 | 607㎡ |
관리자 | 화성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1919년 4월 15일 일제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학살지.
[개설]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은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사건이 발생한 현장이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는 부하들과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15세 이상 남자 주민을 마을 앞 교회당에 모이게 한 뒤, 출입구와 창문을 막고 집중 사격을 가하여 참살하였다. 또한 교회당 및 마을에 불을 놓아 33채의 가옥 가운데 31채를 불태웠다. 아리타는 이어 인근의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지금의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로 가서 일가족 6명을 더 살해하였다. 제암리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인 4월 16일, 미국 영사 커티스(Raymond Curtis), AP통신 경성 특파원 테일러(A. W. Taylor),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H. Underwood) 등에 의해 사건이 서울에 알려졌다. 또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도 사진을 찍어 일본 제국주의의 비인도성을 세계에 알렸다.
한편, 제암리사건의 희생자 수는 자료마다 다르다. 주서울 미국 총영사 베르그홀쯔(L.A. Bergholz)가 1919년 4월 23일 미국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는 기독교인 10명, 천도교인 25명이 교회 안에서 학살되었고, 부인 2명이 교회 밖에서 참살되어 총 37명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1959년 정부에서 순국기념비를 세우면서 확인한 희생자 수는 천도교인 14명, 기독교인 및 기타 9명 등 총 23명이다.
[위치]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22-4번지에 있다.
[현황]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는 해방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각종 기념물과 전시관이 건립되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946년 6월 제암리 마을 입구에 3·1독립운동추모비를 건립하였고, 1959년 4월에는 학살 현장에 3·1운동순국기념탑을 건립하였다. 1970년 8월에는 일본의 사회단체와 기독교인들의 모금으로 3·1예배당이 건립되었고, 10월에는 유족회관이 건립되었다. 1982년 9월에는 문화공보부가 학살 현장을 발굴 조사하고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이어 1982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3년 9월에는 1959년 건립한 3·1운동순국기념탑을 지금의 기념관 앞으로 이전하고, 제암교회 앞 주차장 동편에 해당하는 자리에 3·1운동순국기념탑을 1기 더 건립하였다. 1993년 11월에는 제암리3·1정신교육관을, 1995년 12월에는 23인상징조형물을 설치하였다. 2001년 3월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을 개관하였고, 12월에는 고주리에서 학살당한 6인의 묘역을 정비하였다. 2015년에는 제암리 학살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의 동상을 세웠다.
[의의와 평가]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은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