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5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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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天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왕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5년 9월 20일 - 백천장선생묘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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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백천장선생묘 - 경기도 화성시 기안길 65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수원(水原) |
대표 관직 | 국자진사|한림학사|좌복야사공대사도|금자광록대부 |
[정의]
고려 후기 경기도 화성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수원(水原). 시조 백우경(白宇經)의 후손으로, 수원 백씨 중시조(中始祖)이다. 6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활동 사항]
백천장(白天藏)[?~?]은 원나라에 유학하여 국자진사·한림학사·좌복야사공대사도(左僕射司空大司徒)·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를 역임하였다. 귀국한 이후에는 충선왕 때 수성백(隋城伯)에 봉하여졌다.
[학문과 저술]
『용학석의(庸學釋義)』·『하락생성(河洛生成)』·『음양변합(陰陽變合)』 등을 저술하였다고 전한다.
[묘소]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에 백천장과 삼한국부인(三韓國夫人) 월성(月城) 최씨의 합장묘가 있다. 무덤 앞에는 상석·묘비·장명 등 문인석이 구비되어 있다. 묘역 하단에는 신도비 및 '숭모재(崇慕齋)'라는 재실이 있다. 묘역은 정동향(正東向)으로, 뒷면은 사성(莎城)을 두었다. 봉분 바로 앞에는 상석(床石)이 있고, 우측으로 묘비가 2개가 있다. 묘비는 그의 17세 후손인 백홍수(白鴻洙)가 1813년(순조 13)에 세웠다. 전문에는 '정당문학수원백 원조금자광록대부 우승상백공천장 배삼한국부인 월성최씨지묘(政堂文學水原伯元朝金紫光祿大夫右承相白公天藏配三韓國夫人月城崔氏之墓)'라는 명문이 있고, 비문은 송조빈(宋朝彬)이 글을 지었다. 묘역의 우측에는 수원 백씨의 원시조 사당인 송계공단각(松溪公壇閣)이 있다. 조선 후기에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성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10리 이내의 산소는 모두 이장하게 하였으나, 그의 묘소는 조정에서 보호하여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천사릉(天使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85년 9월 20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