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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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永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1월 7일 - 윤영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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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윤영배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정무원 비서 및 비서과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10월 - 윤영배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잠입하던 중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12월 3일 - 윤영배 무기징역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8월 30일 - 윤영배 징역 2년 추가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66년 8월 12일 - 윤영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21년 - 윤영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771 |
활동지 | 경성부 공덕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조선혁명당 정무원 비서 및 비서과장 |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윤영배(尹永配)[1905~1966]는 1905년 1월 7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771번지이다. 1934년 만주로 망명하여중국 길림성 집안현에서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정무원 비서 및 비서과장에 선임되어 군자금 3,000원을 모집하였다. 1936년 10월 경 노동자·농민과 지식인들의 세력 규합 및 조직화를 위하여 국내로 들어왔으나,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잠입하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7년 12월 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강도치사], 약취공갈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39년 7월 24일 경성부 공덕동에 있는 경성형무소 제5공장에서 간수의 수형자 살해에 항의하고, 수형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는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계속되었고, 수형자 1,122명 중 277명이 참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1941년 8월 30일 윤영배에게 징역 2년이 추가 선고되었고,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1966년 8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202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