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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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상준 |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서 공적 권력의 획득, 유지, 행사와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제반 활동.
[개설]
과거 화성 지역은 전통적인 농촌 지역으로 보수성이 강하다고 인식되지만 제3공화국 시기[1963~1972]에는 오히려 야당의 지지도가 높았다. 제3공화국 시기 치러진 3차례의 대통령 선거[1963년 제5대, 1967년 제6대, 1971년 제7대]에서 야당 후보가 보다 많은 득표율을 기록했고, 국회의원 선거[1963년 제6대, 1967년 제7대, 1971년 제8대]에서도 여야의 양당 구조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1972년 유신 체제가 형성된 후 화성 지역에서 야당의 우세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제5, 6공화국 시기를 거치면서 보수성이 강화되어 여당의 지지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동탄 신도시 건설 등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보수성이 약화되고 진보성이 강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2010년대 이후 더욱 뚜렷해졌는데, 화성시의 서·남부권 농촌 지역에서는 보수 정당의 지지도가 높았던 반면, 화성시 동부 신도시 지역에서는 진보 정당의 득표수가 높았다. 한편 제1대부터 38대까지 화성군수가 존재했고, 2001년 3월 21일 화성군이 시로 승격된 이후 2021년 현재 제7대 화성시장이 역임하고 있다.
[제1-4공화국 시대: 야당성향과 양당구조의 형성]
제1, 2공화국 시대 화성 지역에 지구당이나 연락 사무소를 설치했던 정당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화성 지역 지구당도 각종 선거 때 선거운동을 했던 것이 주요 정당 활동의 전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3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제3공화국 시기 화성 지역의 정당 별 득표율은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윤보선] 56%, 민주공화당[박정희] 33%, 기타 후보가 8%를 차지하였다.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민당[윤보선]이 61%, 민주공화당[박정희]이 34%를,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김대중], 공화당[박정희]이 각각 55%와 42%를 차지하였다. 제3공화국 시기 화성 지역에서는 야당 후보가 50%가 넘는 득표를 하였다. 한편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권오석]이 42%를, 민정당[홍봉진]은 15%의 지지도를,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권오석]이 48%, 신민당[김형일]이 49%를,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홍사승]이 40%, 신민당[김형일]이 59%를 차지하여 양당 구도가 형성되었다. 1972년 12월 29일 유신 헌법이 공포되고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4공화국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 선포 후 국회가 해산되면서 사실상 정당·정치활동이 중지된 상태였다. 화성 지역에서는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이병희] 52%, 신민당[김형일] 42%, 민주통일당[김진구] 6%를 각각 득표하여 제3공화국 시기 유지되었던 야당의 우세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이병희] 33%, 신민당[유용근] 26%, 통일당[손도심]외 8명의 무소속 후보가 36%를 득표하여 전반적으로 득표율이 분산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5,6공화국 시대 : 보수성의 강화]
1979년 12·12사태를 계기로 등장한 신군부 세력을 이끌었던 전두환은 1980년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어 2월 개정된 새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화성 지역에서는 1981년 3월 25일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32%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1985년 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정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되고,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하지만 민주진영이 김영삼과 김대중 후보로 분열되면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고, 1988년 2월 25일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6공화국이 시작되었다. 화성 지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47%, 민주당 28%, 평민당 17%, 공화당 8%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46%, 민주당 26%, 평민당 12%, 공화당 11%, 국민당 5%라는 득표율을 기록했고, 1992년 3월 24일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화성군에서는 민자당 후보가 37%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이처럼 제5, 6공화국 시기 화성 지역은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가 우세한 가운데 보수성이 강화됐다는 특성을 보인다.
[1990년대 보수성과 2000년대 이후 진보성의 강화]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한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문민정부 시대가 시작되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화성군은 민자당 38%, 민주당 27%, 국민당 26%, 신정당 7% 득표율을 기록했고, 1996년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국당 33%, 민주당 24%, 자민련 20%, 국민회의 16%, 무소속 7%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처럼 문민정부 시기 화성군에서는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0년 4월 13일에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46%, 한나라당 후보가 36%, 자민련 후보가 18%의 지지를 얻었다. 16대 총선에서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지만, 화성군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이 1위를 차지하였다. 화성시의 인구 증가는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의석 수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16대 총선에서 오산시·화성군 1석이던 선거구는 17대 총선에서는 화성시 1석, 18대에는 화성시 갑·을 2석으로 증가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갑·을·병 총3석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동탄 신도시 등이 건설되어 도시화가 진행되고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증가하면서 화성시의 진보성이 강화되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화성시에서 45.9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였다. 한편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2021년 현재 7기까지 민선시장이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