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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931
한자 長川敎會
이칭/별칭 감리교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화성시 장지안길 66[장지동 608-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93년 3월 2일연표보기 - 장지내교회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장지내교회에서 장지리교회로 개칭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설립 목적]

장천교회는 메리 스크랜톤이 장지내에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육성하고자 1893년 3월 2일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서울과 제물포를 제외한 한강 이남 최초의 감리교회였다.

[변천]

1893년 3월 2일 화성의 장지내교회[현 장천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은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 여선교사로서 이화학당 창설자인 메리 스크랜튼(1832~1909) 선교사의 노력의 덕분이었다. 스크랜튼 선교사는 1891년에 이화학당을 루이자 로드와일러(Miss L. C. Rothweiler)에게 맡겨놓고 전도활동에 전념하던 가운데 장지내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변지역에 복음을 전파했는데, 장지내에서 박효성과 이춘원이 협력하면서 교회가 세워졌다. 1896년에는 입교인이 17명에 이르렀다.

장지내교회는 박효승이 1894년에 첫 교회건물을 건축하였고 1897년 봄에 두 번째로 6칸의 교회 건물을 지었다. 이 때는 달성교회당에서 10원을, 당시 청국에 거주하는 미국의 한 소년이 2원을 보조하였고 나머지 비용은 박효승이 담당하였다. 스크랜튼 여선교사는 1900년에 장지내교회에 학교를 설치하였고, 상동교회의 전도부인인 김사라[Sarah Kim]가 그의 딸 메리[Mary]와 함께 와서 교사로서 섬겼다. 장천교회는 1902년 3월 5일 당시 서지방 장로사인 조원시[George Heber Jones, 趙元時, 1867-1919]가 장로사를 대신하여 수원구역회를 조직할 때에 용인지방의 아리실교회를 포함하여 수원의 교회들과 함께 수원구역회에 포함되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할 때 장지내교회는 교인이 39명이었는데 11원 71전을 출연하였다.

장천교회의 개칭 시기는 명확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1932년에 총독부에 교회명을 제출할 때 장지리교회당이 장지리교회로 바뀌었다. 1956년 교회가 부흥하며 재정적으로 자립하여 교회를 신축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장천교회는중국신학교와 라오스에서 해외선교사역을 하고 있으며, 유치부, 초등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를 통하여 후세대를 양육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고자 동영상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현황]

장천교회는 2007년 동탄신도시 개발계획에 따라 교회 건물이 철거되었다가 재건축되었다. 현재 목사 1명 등이 사역하고 있다. 교회조직으로 선교부, 교육부, 사회봉사부, 예배부, 재무부 문화부, 관리부가 있다.

[의의와 평가]

장천교회는 서울과 제물포를 제외한 한강 이남의 최초의 감리교회로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근대 교육을 실시한 교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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