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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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상우 |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의 역사와 현황.
[전근대 및 개항기 화성의 교육]
근대학교가 설립되기 전에는 불교 사찰이 교육기관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화성 지역에는 4세기 말 불교가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독산성 보적사, 태안읍의 갈양사, 북양동의 봉림사등의 사찰이 교육 면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시대에는 읍치였던 화산 주변에 1291년 수원 향교가 설립되면서 화성 지역의 학교 교육이 본격화되었다. 향교는 공자와 선현을 제향하는 대성전과 교육을 실시하는 명륜당으로 구성되며 선현 제향과 학교 교육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였다. 향교의 교육 내용은 주로 유학으로 유교 정신을 지방민과 학생들에게 보급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불교는 고려 시대에도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불교에서는 스승은 있으나 깨닫는 것은 자력으로 해야 한다는 자력 신앙으로 논리보다 직관을 강조하는 철저한 자율 학습을 교육 방법으로 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수원 광교산의 89암자를 비롯하여 창성사, 무봉산 만의사, 비봉산 봉림사, 독산성 보적사, 견불산 수리사, 상황산 갈양사 등 많은 사찰이 화성 지방에 널리 분포하여 중생 교화에 전력하였다.
조선 시대 화성의 국가 교육기관은 수원 향교와 남양 향교가 있다. 향교에서는 시문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는 경학을 교과 내용으로 하였으며 교재로는 소학과 사서오경, 근사록, 심경 등이 이용되었다. 향교 외에 사학으로 서원이 있다. 화성 지역에는 안곡 서원, 명고 서원, 매곡 서원이 대표적인 서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서원의 교육은 원장, 강장, 훈장 등의 원임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사서오경등을 교육하였다. 이러한 강학 활동 이외에 풍부한 서적의 공급도 중요한 교육 활동의 하나였다. 이외에도 오산의 궐리사와 남양의 용백사도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개항기에 들어서면서 화성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적 교육 기관은 1896년 2월 10일 수원군 북부면 신풍동에서 개교한 수원군공립소학교이다. 입학 자격은 신분 제한 없이 만 7세부터 15세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3년 과정으로 수업료는 받지 않았으며 교과서를 대여해 주었다. 당시 수원군수 서행순이 학교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이필구가 최초의 교원으로 임명되었다. 1898년 10월 1일 개교한 남양군공립소학교는 남양군수가 개교 당시 책임자였으며, 박제현이 최초의 교원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1902년 2월 17일 수원군 북부면 보시동에 있는 북감리교회에서 남녀매일학교가 개교되었다. 남자 15명과 여자 3명으로 시작한 남녀매일학교는 삼일소학당이라 불리며 1904년에는 남녀 각 22명과 15명으로 학생수가 증가하였고 1906년에는 종로 교회의 삼일학당과 장안동의 삼일여학당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1908년 8월 26일 사립학교령이 공포되어 사립학교 설립에 정부의 인가가 필요하게 되자 1909년 삼일학당은 사립삼일학교로 삼일여학당은 사립삼일여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게 되었다.
수원농림학교는 한성부에 있었던 농상공부 소관 농림학교가 1907년 1월 수원군 일형면 서둔리로 신축. 이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09년 6월 1일 농상공부령에 의한 교칙개정으로 학제가 2년제에서 3년제로 개편되었으며 1910년 후에는 조선총독부 농림학교로 개칭되어 권업모범장에 부속되게 된다.
또한 수원의 상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인 수원상업회의소는 1909년 2월 그 부속사업의 하나로 상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을 강습할 목적 하에 수원상업강습소를 부설하였다. 그러나 1909년 7월 조선상업회의소령이 공포되고 이 법령의 설립기준에 미달된 수원상업회의소가 1916년 4월에 폐쇄되기에 이르자 수원상업강습소도 경영난으로 폐교되기에 이르렀고 이후 몇몇 유지의 도움으로 화성학원으로 개칭하여 운영되었다.
[일제 강점기 화성의 교육]
일제 강점기인 1911년 11월 1일 「조선교육령」에 의하여 공립수원보통학교는 수원공립보통학교로, 공립남양보통학교는 남양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을 바꾸게 되었고 이어서 1913년 4월 1일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있었던 사립 신명학교가 폐쇄되고 수원군수를 설립자로 하여 오산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였다. 사립 신명학교의 폐쇄는 식민통치에 방해가 되는 민족교육기관을 통제하여 일제의 의도대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민족 사학 탄압 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로 일제는 사립 신명학교의 폐쇄와 함께 오산공립보통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이명삼 교장을 해임하고 태촌면, 동북면에서 일어강습회를 실시하고 오산청년국어야학회를 여는 등 일본화 교육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민족주의 성향의 교육을 지향하는 인사들에 의해 화성 지역에서의 신학문보급과 반일 애국청년운동 등이 계속해서 전개되었다. 민족 교육의 다른 한 축인 서당의 운영도 계속되었다. 꾸준히 증가하는 서당을 통제하기 위해 일제는 1918년 2월 21일 서당규칙을 공포하면서 서당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다.
3·1운동의 영향으로 소위 문화통치로 회유책을 실시한 일제는 관립고등보통학교 설립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화성 지역에도 기존의 학교 외에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설립된 보통학교로는 송산공립보통학교, 팔탄공립보통학교, 태장공립보통학교, 반월공립보통학교, 삼괴공립보통학교, 동탄공립보통학교, 안룡공립보통학교, 향남공립보통학교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교 증설은 이들 학교에 일본인 교장이 취임하고 한국인 교사와 더불어 일본인 교사가 임명되며 일본어와 일본문화 교육에 주력하는 등 일제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편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몇몇 독지가들에 의해 사설강습소가 설립되었다. 양감면에는 김용묵이 양감보신강습소를 설립하였고 오산읍 외삼미리에는 윤학영이 삼미의숙을 설립하였으며 성호면 세교리에는 홍종각 등이 광성학원을 설립하였다. 이외에도 설립자는 알 수 없으나 장안면 사곡리의 광명의숙과 사랑리의 양명의숙, 장안리의 장안강습소, 정남면의 대성강습소 등이 운영 되었다.
초등교육에 비해 화성 지역 중등교육의 발달은 매우 지체되었다. 1899년 4월 근대식 「중학교 관제」, 이듬해 9월 「중학교 설립규칙」이 공포되었다. 이후 공립 및 사립, 인문 및 실업 계통의 다양한 중등 교육기관이 전국적으로 설립되었다. 특히 1905년부터 1910년 사이에 사립학교의 전국적 확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에 화성 지역에 초등교육 이후 단계인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은 전혀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는 일제 식민지 권력의 일반적인 교육 정책이었던 우민화 정책의 큰 흐름을 반영한 결과였다. 화성 지역에서 중등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해방 이후였다.
[해방 이후 화성의 교육]
1945년 해방 이후 1949년까지 4년 동안 설립된 학교는 1946년 개교한 사창국민학교·청원국민학교, 1948년 개교한 석천국민학교, 1949년 개교한 갈담국민학교·마산국민학교·병점국민학교·청룡국민학교 등 7개교이다. 1950년대에 설립된 4개의 초등학교와 1개의 분교는 1950년 6월 1일 한국전쟁 직전에 개교한 정림국민학교와 활초국민학교, 전쟁 중이던 1952년 개교한 상신국민학교와 장안국민학교 석포분교, 1953년 개교한 월문국민학교 등이다. 전쟁 이후 한동안 국민학교 신설은 이루어지지 않다가, 1960년에 이르러 고정국민학교·해운국민학교, 1961년 갈천국민학교가 신설되었다.
해방 후 화성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중학교는 1949년에 사립으로 설립된 팔탄고등공민학교이다. 이 학교는 1953년 8월 19일 화성여자중학교로 바뀌었다가 2004년에 다시 남녀공학인 화성중학교가 되었다. 화성 지역 중학교의 신설은 주로 195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 기간에 신설된 화성 지역 중학교 8개교 중 6개가 1950년대에 세워졌는데, 1953년 남양중학교·송산중학교, 1954년 발안중학교·삼괴중학교·화도중학교, 1956년 서신중학교이다. 끝으로 1961년 비봉중학교가 개교하였다. 이 시기 화성 지역에 세워진 고등학교는 4개교로, 1954년 남양고등학교·발안농업고등학교, 1960년 삼괴종합고등학교, 1961년 송산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현대 화성의 교육]
1952년 4월 25일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자 화성군에서는 19명의 교육위원이 선출되어 화성군 교육구를 설치하게 되었고 교육구에는 의결기관으로 화성군 교육위원회를 두고, 집행기관으로 공무원인 교육감을 두었다. 이 시기에 화성 지역에는 병점·청원·갈담·활초·화남초등학교 등 국민학교 5개교, 정문·상신·어도·국화도·당수·함산·운평·갈천초등학교 분교장 등 8개의 분교장, 오산·남양·화성·송산·발안·삼괴·반월·화도·오산여중, 서신·화산 등 11개 중학교, 오산·남양·발안농고·삼괴고등학교 등 4개 고등학교가 개교되었다.
1960년대에는 석포초등학교 등 초등학교 13개교와 비봉중학교, 정남중학교 등 중학교 2개교, 오산여자상업고등학교, 비봉고등학교, 반월상업고등학교, 송산종합고등학교 등 고등학교 4개교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1964년 1월 1일 교육자치제 실시에 따라 도의 일반행정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구성되자 그 산하기관으로 화성군교육청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1978년 7월 5일 수원시 고등동에 소재해 있던 화성교육청이 오산읍 오산리 862번지로 청사를 옮기고 관내 57개 초등학교와 14개 중학교의 교육 행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초등학교의 개교는 없었고 장안여자중학교 1개교, 경성고등학교와 화성여자상업고등학교 등 고등학교 2개교, 수원공업전문대학, 장안실업전문대학, 오산공업전문대학 등 전문대학 3개교가 설립되었다.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한 경기도 교육위원회의 방침에 의해 교육청 및 학교에서 자율적, 창조적인 교육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는 장명, 성산초등학교 등 초등학교 2개교, 동탄중학교와 발안중학교 양감분교 등 중학교 2개교, 수원대학교 1개교가 설립되었다.
한편 1989년 오산읍이 시로 승격하여 분리 독립함에 따라 화성교육청은 화성군과 오산시를 관리하는 통합 교육청이 되었다.
1995년 이후 학교 변화를 살펴보면 1995년 4월 태안읍 신리. 망포리가 시 군간 경계 조정으로 인하여 수원시로 편입됨에 따라 태장초등학교가 수원 교육청으로 편입되고, 고정초등학교 우음분교, 마산초등학교 형도분교가 폐교되었으며, 창문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또 봉담초등학교 수기분교가 2000년도에 수기초등학교로 승격, 개교하였고, 송화초등학교, 동학초등학교가 신설되었다. 중학교는 발안중학교 양감분교가 2001년에 양감중학교로 승격하였고, 봉담중학교, 진안중학교, 동학중학교가 신설되었으며 고등학교로는 두레자연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기타 학교로는 장안면에 발달지체아에게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잠재능력을 최대한 계발,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사립특수학교인 해원학교가 설립되었고, 정남면에 기독교학교로 청각 언어장애 어린이들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향상시켜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우리학교가 신설되었다.
한편 사교육 시설도 많이 증가하였다. 1988년 69개소에 불과하던 사설학원 수는 10년 뒤인 1998년도에는 3배에 가까운 199개소로 급증하였고,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2020년에는 24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분야별 학원분포를 보면 문리계 학원이 44개소, 기술계 26개소, 예능계 109개소, 경영실무 68개소로 예능계학원이 가장 많이 설립되어 있으며 총 수강자 수는 8,860명, 강사수는 352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화성교육청은 1991년 지방교육자치법이 시행되면서 경기도 화성교육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함에 따라 화성시와 오산시를 통합 관할하고 있다. 또한 태안읍과 동탄면 지역에 동탄1신도시가 2001년 고시 이후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었고, 2011년부터는 동탄2신도시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외에도 향남읍·남양읍·봉담읍 등에 대규모 택지 지역이 조성됨으로써 화성시의 도시화는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도시화로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화성 지역의 교육 상황도 큰 폭으로 변하였다. 2016년 기준으로 화성시 인구 6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이 변화를 나타낸다.
2018년 5월 기준 화성시에 소재하고 있는 초등학교 92개교 중 56.5%인 52개교가 2000년대 이후 신도시와 그 인접 지역에 신설된 학교라는 사실은 화성 지역 학교교육의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중학교의 경우에도 39개 중학교 중 26개교가 2000년 이후에 신설되었다. 고등학교는 25개교 중 17개교가 2004년 이후 신설된 학교에 해당한다. 동탄신도시를 시작으로 연이어 대규모 택지가 조성됨으로써 화성시는 교육 취약 지역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동탄을 중심으로 한 동부 지역은 우수한 교육 여건을 바탕으로 많은 공립학교가 세워지고 학생들이 유입되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시설이나 교육의 수준에서는 평준화된 상태로 학교별 차이가 크지 않다. 병점고등학교·화성고등학교·삼괴고등학교 등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는 기숙제로 운영하고 있어서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신입생 선발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분류되어 중학교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평준화하자는 학부모들의 움직임이 있으나 실현 여부는 미지수이다.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사립 특수목적고등학교인 동탄국제고등학교가 2010년에 설립되었다. 동탄국제고등학교는 화성시와 오산시 출신을 우대하는 기숙형 학교이다. 과거에 실업계 고등학교로 부르던 특성화고등학교는 발안바이오과학고등학교 이외에는 없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전국적인 현상이 화성시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화성시의 교육은 여타 지역과 유사하게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인구의 집중, 대학 입학에 유리한 특수목적고등학교와 우수 인문계 고등학교 선호,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둘러싼 논쟁, 특성화고등학교의 부진 등을 겪으며 변화하여 왔다.
그리고 2010년 초반 혁신학교 운동이 출범하였다. 또한 혁신학교와 함께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혁신공감학교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혁신공감학교는 혁신학교를 일반화하고자 하는 경기도교육청의 특별 정책이다. 예비 혁신학교인 혁신공감학교는 학생 중심, 현장 중심으로 경기 혁신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로서 참여와 소통, 존중과 배려, 개방과 협력의 학교 문화를 바탕으로 한 함께 만들어 가는 빛깔 있는 학교를 추구하고 있다. 학교 내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한 협력적 교사 문화와 교육 활동의 전문성 향상을 추구하는 학교가 혁신공감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