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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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魚-執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원영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0년 3월 29일 - 「민어로 집강 벼슬」 나도성으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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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9월 30일 - 「민어로 집강 벼슬」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융릉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
채록지 |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용소1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정조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용소1리에서 채록된 안녕동에 있는 융릉과 관련한 이야기.
[개설]
「민어로 집강 벼슬」은 안녕리[현재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사람이 정조대왕에게 민어를 바치고 소원으로 집강 벼슬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9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민어로 집강(執綱) 벼슬」이라는 제목으로 306~308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민어로 집강(執綱) 벼슬」은 1980년 3월 29일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용소1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나도성[남, 70세]으로 당시 양감면 설화 조사의 주 제보자이다. 조사자로 성기열, 김응식, 최명동이 참여하였다.
[내용]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겨 안녕리에 융릉을 만든 뒤 자주 다녀갔다. 왕의 행차가 잦음에 따라 안녕리 마을에서는 지금의 면장에 해당하는 집강(執綱)이 마을 백성들에게 매일 길을 닦게 일을 시켰다. 그런데 한 남자가 미련스럽고 일도 잘 하지 않아 집강에게 날마다 몽둥이 매질을 당했다. 이에 남자의 부인이 날마다 매를 맞고 오는 것이 안타까워 좋은 민어 생선 하나를 임금께 바치고 오라고 하였다. 남자는 허름한 촌부 행색으로 민어 한 마리를 짊어지고 대궐로 가서는 임금을 만나뵈기 위해 안녕리에서 왔다며 고집을 부렸다. 문지기가 이를 임금에게 보고하니 들여보내라고 하였다. 남자는 생선 한 마리라도 임금께 드리고 싶어 가지고 왔다고 했다. 시골 백성의 충심에 감탄한 임금은 남자를 기특하게 여겨 좋은 식사 대접을 받게 하였다. 식사를 배부르게 한 남자에게 임금은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노라고 했다. 남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리고 때리던 집강과 같은 벼슬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고, 그 후로 대대손손 집강을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민어로 집강 벼슬」 이야기는 주인공인 어리석은 시골 남자의 행동을 우습게 그려낸 이야기이다. 우스운 이야기를 소화(笑話)라고 하는데, 소화에서는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인물의 특성을 과장하여 형상화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작위적으로 연출한다. 이렇듯 이야기 속 사건이 극단적으로 희화화되면서 실제적 사실성보다 강한 허구성을 가지게 된다. 이는 안녕리 마을 사람들이 왕의 행차를 위해 매일 길을 닦는 상황이나, 미련스러운데다 일을 안 하려는 남자가 매일 매질을 당하는 상황이 그러하다. 일개 촌부가 단신으로 왕과의 대면을 요구하여 성공하는 것이나 민어 한 마리를 진상하고 왕에게 집강 벼슬을 받아 소원을 성취하는 것도 현실적 가능성이 없는 극단적 허구화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강제부역으로 노동력을 무상으로 착취하는 것이나, 탐관오리에게 매질을 당하는 장면에서 과거 일반 백성들의 받았던 일상의 고통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뇌물을 주고 벼슬을 얻고자 하는 악습은 조선 후기 성행했던 매관매직의 폐단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민어로 집강 벼슬」은 실제 지역민의 일화에 당대의 부정과 비리를 결부시켜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