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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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岩里-中心-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원영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0년 6월 9일 - 「조암리를 중심한 전설」 김선진으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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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6월 20일 - 「정묘조 이야기」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삼괴 -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장안면 |
채록지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
성격 | 설화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에 걸친 삼괴 지역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개설]
삼괴(三槐)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 지역을 함께 일컬어 부르는 지명이다. 삼괴 지역은 쌍부 또는 삼귀라고 불리기도 했다. 쌍부는 쌍부산이라고도 불렸던 쌍봉산과 관련한 지명이다.
삼귀와 삼괴에 대한 지명 유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2012년 출간된 『경기도 화성시 구비전승 및 민속자료 조사집』8-장안면 편 62쪽과 75쪽에 수록되어 있다. 먼저 삼귀는 발안 지역에서 선창포구까지 바닷물이 나갈 때 세 곳을 휘돌아나갔기 때문에 삼귀(三歸)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삼귀라고 발음하는 것보다 삼괴라고 발음하는 것을 더 쉽게 여겨 삼괴라고 바꾸어 지금도 삼괴라고 한다는 것이다.[제보자 문오근[남, 76세], 노진리 주민] 다른 하나는 삼괴에 대한 것인데, 우정읍과 장안면 지역에 큰 느티나무 고목이 세 그루가 있었다. 느티나무가 얼마나 컸던지 다섯 명이 안아야 될 정도로 둘레가 큰 아름드리 거목이었다. 그래서 느티나무 괴(槐)자를 써서 삼괴라 불렀다고 한다.[제보자 이상림[남, 78세], 어은리 주민]
2021년 현재 우정읍과 장안면은 우정읍의 읍소재지인 조암리의 상권을 주로 이용하는 한 소비 생활권이다. 우정읍과 장안면의 중심 상가 지역이 조암이 되었기에, 조암이라는 대표 지명으로 두 지역을 같이 묶어 일컫기도 한다.
삼괴칠면(三槐七面)의 명칭과 관련하여서는 『역사자료총서』1-국역 수원부(군)·남양부(군)읍지(화성시, 2006)의 내용을 참조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수원부에 속하는 지역 중 쌍창(雙倉)에 속한 화방면(禾方面)·수류면(水流面)·마정면풍도(馬井面楓島)·초장면(草長面)·사정면(奢井面)·팔라곶면(八羅串面)·압장면(鴨長面)의 일곱 개의 면이 삼괴 지역에 해당된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6월 2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조암리(朝岩里)를 중심한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350~355쪽에 수록되어 있다. 1980년 6월 9일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김선진[남, 43세], 조사자는 성기열, 최명동, 김용범이다.
[내용]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에 있는 조암시장은 일제 강점기 중 1917년쯤에 생겼다.[제보자는 1980년 조사 당시 조암시장의 역사가 63년이 되었다고 함] 예전 삼괴(三槐) 지역에서는 장안면 사랑리에 있는 삼괴장터라는 곳이 큰 시장이었다. 삼괴장터는 사랑리 근처에 있는 육포(六浦)라는 항구로 물건을 싣고 들어와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또 임진왜란 때에는 육포로 왜적이 침입하였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화리의 덕목리[덕목동이라고도 함]마을에 보금산이 있는데, 이를 지네산이라고도 한다. 이곳으로 왜적들이 쳐들어오자 주민들은 지네산의 꼭대기로 피신을 하고서는 돌을 모아 밑으로 굴려 왜적들과 투쟁을 하였다. 왜적과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열세에 몰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밑에서 지네들이 나와 독을 뿜어 왜적을 물리쳤다. 그래서 이 산을 지네산이라고 하게 되었다. 우정면 화산리 사금말[사기말이라고도 함]에서는 패배한 왜적 백여 명을 굴에 집어넣고 나뭇등걸을 세워 입구를 막고 불을 질러서 죽였다고 하는데 그 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렇게 왜적이 들어왔다는 전설을 모아 추적하고 고서에서도 왜적 침입의 기록을 찾았다. 한편 육포 지역에는 오래된 묘가 많았는데, 무덤 주인들을 조사해보니 전부 무관(武官)들이었다. 많은 무관들이 어찌하여 이 시골구석에 와서 전부 죽었는지 그 까닭을 살펴보면, 육포라는 포구가 있었으니 해안을 경비하는 군부대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육포와 관련한 무관들이 지역을 지키다 전쟁 중에 전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역에 20기에 가까운 무관들의 묘와 묘비가 남아 전한다.
또 노인들이 구전으로 전하길 삼괴칠면(三槐七面)이라고 하였다. 삼괴 지역에 일곱 개의 면이 있다는 것이다. 어은리 일대는 화방면이고, 쌍봉산 너머 마을은 마정면이다. 쌍봉산은 말의 형국인데, 말의 머리가 멱우리 쪽 방향으로 되어 있다. 멱우리 동네에 가면 마정(馬井)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은 말이 물을 먹는 곳이라 하였다. 그리고 쌍봉산 능선 끄트머리 지역을 말미라 하는데, 이는 말의 꼬리를 말한다. 우의정을 지낸 정재승의 묘비에 마정면이 나오고, 신립장군의 후손의 비석에 화방면이 나온다.
[모티프 분석]
「조암리를 중심한 전설」은 여러 개의 단편적 구비 전승 자료가 이어지는데, 서사적 모티프를 분류할 수 있는 설화로는 지네산 이야기가 있다. 지네산 전설의 모티프는 지네산의 지네가 독을 내뿜어 왜적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왜적의 침입에 주민들은 산으로 피신을 왔고, 또 산에서 왜적과 전투를 하게 된다. 지네는 주민을 보호하고, 쳐들어 온 왜적을 징벌하는 서사적 맥락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위기에 봉착한 주민들 편에서 행동하는 조력자이자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많은 왜적을 모두 물리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독을 내뿜는 신이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지네산의 지네는 산신이자 마을의 수호신격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화1리 덕목동 주민들은 지네산에 산제를 지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2018년 출간한 『화성시 마을신앙 디지털 사전』의 218~223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추가 자료의 내용에서는 지네가 독을 내뿜거나 입김을 부니 안개가 짙게 꼈고 이에 아군은 유리하고, 왜적들은 불리한 상황이 된다. 또 보금산은 불을 환하게 밝혀주자 대병력이 있다고 착각한 왜적들은 퇴각한다. 이처럼 이화1리에서 모시는 산이 주민들과 아군들을 도와주는 신이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산신의 영험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