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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곡리[북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240
한자 龍谷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인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내북면 용곡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2년 - 전라남도 화순군 내북면 용곡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로 개편
지명 용곡리 -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7.42㎢
가구수 60가구
인구[남,여] 94명[남자 44명, 여자 50명]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북면 용곡리는 자연 마을인 용촌(龍村)·약수(藥水)·상곡(上谷)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6·25 전쟁 이후 금성(金城)이 새로 추가되었다.

[명칭 유래]

용곡리의 지명은 용촌 마을의 용(龍)자와 상곡 마을의 곡(谷)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용촌 마을은 원래 용시암이라 하였다. ‘용시암’이라는 이름은 과거 지명이었던 무학촌(無鶴村)에서 유래하였다. ‘무학촌’은 찬 샘이 있는 고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는데 찬시암골이 용시암골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용선리(龍仙里)라고 표기되었고 이후 용선리를 줄여 용선이라고 불렀다.

약수 마을은 굴등굴에서 약수가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곡 마을은 골짜기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웃골로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며 상곡이라 하였다. 금성 마을은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새터 마을이라 불리다가 마을 안에 금바우산이 있어서 금성이라 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동복현 내북면(內北面) 무학촌(舞鶴村)으로 기록되어 있고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전라남도 동복군 내북면(內北面) 용선리(龍仙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전라남도 화순군 내북면 용곡리(龍谷里)로 개편[약수 마을·용촌 마을·상곡 마을·수촌 걸생 마을 각 일부]되었고, 1932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내북면과 외북면을 합하여 북면으로 칭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용촌 마을 동쪽은 성적골과 백아산 산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골짜기를 따라 새로 만들어진 금성 마을과 이어져 있다. 남쪽은 백아산의 남쪽 산등으로, 북쪽은 백아산 마당 바위에서 뻗은 산등이 형성되어 있다.

금성 마을의 동쪽은 용촌 마을로 가는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고 서북쪽으로는 골짜기를 따라 이천리와 연이어 있다. 남쪽과 북쪽에는 백아산에서 뻗은 산등이 형성되어 있다.

약수 마을의 동쪽은 백아산 산등이 위치하는데 산등 아래에 약수제 저수지가 있다. 서남쪽으로는 골짜기를 따라 내가 이어져 다곡리로 연결되며 북쪽은 백아산의 산등으로 옛 도로가 있어 용촌 마을과 나뉜다.

상곡 마을은 동쪽과 서쪽이 산등으로 형성되고 남쪽은 내를 따라 이루어진 골짜기로 외부와 이어진다. 북쪽은 사슴재로 길성 마을용촌 마을로 갈 수 있으며 서남쪽에는 솔뱅이·깃대봉·표적봉이 있고 남쪽으로 시루봉과 필봉이 위치한다.

[현황]

용곡리화순군 북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2012년 현재 1구(區)[용천 마을, 금성 마을]와 2구[약수 마을, 금성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7.42㎢의 면적에 60가구 94명[남자 44명, 여자 5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용곡리의 북쪽은 이천리노기리, 동쪽은 노치리, 남쪽은 수리와천리, 서쪽은 길성리를 경계로 하여 인접하여 있다. 주산물은 벼이고 특산물은 표고와 매실이며 주 소득원은 벼와 표고이다. 국도 15호선용곡리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관통하여 중앙부를 지나간다.

민속 및 문화 유적으로 매방아, 연둥이 담터를 비롯하여 다수의 절터, 짐대 터, 조씨 사당 터, 유씨 사당 터, 장승 터, 서낭당 터, 1990년 건립된 유영섭 당선 기념비, 1990년 3월 건립된 유장춘 시조비, 조탑, 내북면사무소 터 등이 있다. 그밖에 1967년 축조된 약수제 저수지, 약수교, 용촌교 등이 있다. 지역 관광지로는 백아산백아산 자연 휴양림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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