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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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亭里淸道金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 석정 마을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에 있는 청도 김씨 집성촌.
[명칭 유래]
석정리는 1850년경 능주 목사가 고을을 순시하면서 마을에 있는 느티나무에 돌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돌정지라 했다고 전하는데, ‘석정’은 ‘돌정지’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하지만 ‘돌정지’는 본디 물길이 돌아가는 곳을 말한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김경문(金慶門)[1597~1670]을 입향조로 하여 대를 이어오는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의 청도 김씨 집성촌이다. 김경문은 임진왜란 후 능성현 단양면 칠송 마을에서 단양면 석정 마을로 입향하였다.
김여용[1599~1638]의 자는 자명이고 호는 둔재이다. 통정 김경창[1578~1627]의 아들이고,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깨달음이 남과 달랐으며 학문을 좋아하였고, 경전의 뜻을 연구하여 두루 통달하였다. 일찍이 『송명신록(宋名臣錄)』을 읽고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에 이르러서는 세 번 반복하여 읽고 탄식하였다. 1636년에 분개함을 이기지 못하고 안방준을 따라 격문을 발송하고 의거하여 청주에 이르러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김세두[1658~1708]의 자는 여현이고 호는 용암이다. 김경훈[1600~1682]의 증손이다. 품성이 온화하고 어질어서 심력을 다하여 학문을 닦아 성현의 깊은 뜻을 많이 밝혔다. 오봉산 아래에 은거하여 살았다. 김장석의 자는 백견, 호는 하산이며 김경훈의 후손이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평안하며 공손하고 사려가 깊었다. 후학을 양성하니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김기수[1853~1916]의 자는 치규이고 호는 온지재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품성이 뛰어나고 재예가 남보다 월등하였다. 어려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마음 깊이 성리학을 연구하여 그 학문을 발휘하였다. 김윤수의 자는 경중이고 호는 오봉이다. 김점[1369~1457]의 후손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품성이 온화하여 성리학에 잠심하였다.
[자연환경]
석정 마을은 서쪽으로 얕은 구릉이 있고 냇물이 서쪽에서 흘러 들어와 마을의 남쪽을 돌아 북쪽 방향으로 흘러간다. 강 건너에 약간 떨어진 곳에 남쪽에서 동쪽으로 얕은 구릉이 둘러 있어 남쪽의 바람을 막아 주고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55가구 90여 명이 청도 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입향조인 진사공 김차산 단재와 재각인 영모각, 김차산과 김여용을 향사하는 남일단, 1955년 건립한 존양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