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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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淨川里密陽朴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정천리 정천 마을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정천리에 있는 밀양 박씨 집성촌.
[명칭 유래]
정천리는 본디 마을에 맑은 샘이 있어 맑은샘[淨泉]이라 했는데 후에 정천(淨川)으로 변천되었다.
[형성 및 변천]
박위[1574~?]와 박천주(朴天柱)[1582~?]를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화순군 도암면 정천리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1602년(선조 35) 무렵 박위가 흥양현에서, 1603년경 박천주가 벽지리 매산등에서 각각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박천주의 자는 경국(擎國)이고 호는 회재(悔齋)이다. 증 좌승지 박지수(朴枝樹)[1552~?]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지냈다.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나이 10세에 부모님 상을 당하여 슬퍼하여 몸을 크게 상하였다.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계속 부모님이 처음 돌아가신 때와 같이 하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였다.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박이소(朴以素)[1616~1700]의 자는 여옥(汝玉) 이고 호는 태암(台庵)이다. 박천주의 아들로 관직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천성이 순후하여 동생 박성소(朴性素)[1621~1692]와 함께 두문 분출하여 도학을 강의하였다. 일찍이 자제들을 경계하여 가로되 ‘사람들은 마땅히 나에게 있는 것을 찾을 것이고 어찌하여 번거롭게 밖에 있어서 이익이 없는 것을 구하리오’라고 하고 시문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오직 고인들이 자기 몸의 수양을 위한 학문에 노력할 것을 편달하고 권면하였다.
박재성(朴載成)의 자는 군화(君華)이고 호는 시암(侍庵)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돈독했다. 어머니가 병을 앓자 간호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손가락의 피를 내어드려 다시 소생하였다. 부모님 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였다.
박옥동(朴玉東)의 자는 춘서(春瑞)로, 본성이 돈독하고 효성스러웠다. 음식을 입맛에 맞추고 몸을 편안하게 해드렸다. 아버지가 병들었는데 자라가 빙천으로 뛰어 올랐다. 어머니가 병을 앓자 개구리를 약에 함께 넣어 드려 빠른 차도를 보았다.
[자연환경]
정천 마을은 동쪽으로 조락산, 서쪽으로는 톳골, 남쪽으로는 정천저수지, 북쪽으로는 매산들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35가구 63명이 밀양 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870년 건립한 밀양박씨 정려문과 1805년경 박장환(朴章煥)이 건립한 소월정(嘯月亭), 박태형(朴泰亨)이 건립한 물망재(勿忘齋), 충효단(忠孝壇), 도천재(道泉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