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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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邦翰 |
이칭/별칭 | 원중(元仲),상의재(尙義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수용 |
활동 시기/일시 | 1590년 - 오방한 무과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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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오방한 최경회의 종사관으로 진주성 전투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오방한 사망 |
사당|배향지 | 포충사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산 15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보성(寶城) |
대표 관직 | 병조참의 |
[정의]
임진왜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원중(元仲), 호는 상의재(尙義齋). 상서(尙書) 오순(吳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부호군 오안적(吳安迪)이다.
[활동 사항]
오방한(吳邦翰)[?~1593]은 일찍이 박광전(朴光前)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장성하여서는 기사(騎射)에도 능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하여 개운 만호(開雲萬戶)에 임명되었으며 치적을 쌓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부인 김씨와 이별하고, 문홍헌(文弘獻), 박혁기(朴爀起), 구희(具喜) 등과 함께 군부가 몽진하는 마당에 신하로써 마땅히 사의(死義)할 때라고 여기고 서로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기로 하였다. 정병 수백 명을 모으고 달려가서 선조를 호위하자 임금께서 그를 찬양하고 궁시(弓矢)를 하사하면서 영남의 적을 막으라는 명을 내려 영남으로 남하하였다.
진주성에 이르자 성은 적에게 포위되었는데, 이때 지평 문홍헌이 최경회의 종사관으로 천거하여 성이 함락되던 날 크게 외치며 성 위로 올라 적 여러명을 참획하고 또한 많은 적을 참살하였으나 문홍헌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고종 때에 이르러 정려를 받고 병조 참의에 증직되었으며, 포충사에 배향되었다. 부인 김씨도 또한 열행으로 정려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