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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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閎中 |
이칭/별칭 | 창휘(暢輝),낙호당(樂乎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529년 - 조굉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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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6년 - 조굉중 사헌부 지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67년 - 조굉중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68년 - 조굉중 선공감역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584년 - 조굉중 사망 |
출생지 | 녹구리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4리 |
묘소|단소 | 지곡(智谷)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지곡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창녕(昌寧) |
대표 관직 | 사헌부 지평 |
[정의]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창휘(暢輝), 호는 낙호당(樂乎堂).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건(曺健)이며, 아버지는 조세명(曺世明)이다. 어머니는 나주인(羅州人) 정도(鄭覩)의 딸이며 부인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약(金約)의 딸이다. 조대중(曺大中)의 형으로, 화순 녹구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조굉중(曺閎中)[1529~1584]은 화순 출신으로,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568년에 효도와 청렴으로 선공감역에 제수되었고, 이어 사헌부 지평을 역임했다.
행실이 돈독하고 효도하며 우애하였으며, 명망과 재덕이 높아 미암 유희춘(柳希春),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더불어 서로 강론하며 학문을 연마하였다. 낮이면 주역을 공부하고 밤이면 거문고를 울렸으며, 풍채가 시원하고 깨끗하니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고 사모하였다. 서애 유성룡(柳成龍)과 아계 이산해(李山海) 두 사람도 매양 칭찬하였다.
홍산(鴻山)과 니산(尼山) 두 고을의 수령을 맡았는데, 선정을 베풀어서 생사당(生祠堂)과 선정비(善政碑)가 있다.
[묘소]
묘는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지곡(智谷)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