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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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敏中 |
이칭/별칭 | 응행(應行),학탄(鶴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동교 |
[정의]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응행(應行), 호는 학탄(鶴灘). 아버지는 사마(司馬) 조세명(曺世明)이다.
[활동 사항]
조민중(曺敏中)[1541~?]은 문학으로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1573년(선조 6)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589년 기축옥사에 아우 조대중(曺大中)이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고, 자신도 의금부에 구금되었으나 여러 번 상소하여 풀려났다.
이후 벼슬에 나아갈 뜻이 없어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는데 호남과 영남에서 학문을 성취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중국의 정현(鄭玄)[127~200,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과 왕통(王通)[584~617, 중국 수나라의 사상가]에 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