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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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守正 |
이칭/별칭 | 이직(而直),농음(聾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575년 - 조수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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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0년 - 조수정 은둔 |
몰년 시기/일시 | 1638년 - 조수정 사망 |
묘소|단소 | 조수정 묘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농소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창녕(昌寧)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직(而直), 호는 농음(聾瘖).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조세명(曹世明)이며, 아버지는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이다. 어머니는 경주인(慶州人) 김응성(金應星)의 딸이며 부인은 홍주인(洪州人) 송방형(宋邦衡)의 딸이다.
[활동 사항]
조수정(曺守正)[1575~1638]은 어렸을 때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였다. 기축년(1589) 화를 당한 뒤부터는 세상일에 뜻이 없어서 발자취를 감추고서 오직 시와 술로써 슬픈 뜻을 달랬다.
편액[액자]을 ‘농음(聾瘖)’이라고 한 이유는 귀머거리처럼 듣지도 않고 벙어리처럼 말하지도 않으며 종신토록 뜻을 숨긴다는 의미이다. 성리학에 전력하여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자기의 임무를 삼았으며, 승주의 수령으로 온 지봉(芝峰) 이수광(李睟光)과는 의리지교를 맺었으며, 이수광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가 자주 편지를 보내어 출사를 권유했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동리(東里) 임위(林瑋)가 그의 신실함을 칭찬하였다.
[묘소]
묘는 화순군 화순읍 농소(農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