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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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秉萬 |
이칭/별칭 | 회계(晦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829년 - 조병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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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74년 - 조병만 전라도 소두로 상소 올림 |
활동 시기/일시 | 1874년 - 조병만 고금도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882년 - 조병만 해배 |
활동 시기/일시 | 1889년경 - 조병만 운곡 정사 건립 |
몰년 시기/일시 | 1895년 - 조병만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21년 - 조병만 운곡 영당 배향 |
수학|강학지 | 운곡 정사(雲谷精舍)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운곡 |
사당|배향지 | 운곡 영당(雲谷影堂)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운곡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창녕(昌寧)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회계(晦溪).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석윤(曺錫胤)이며, 아버지는 조치순(曺致淳)이다.
[활동 사항]
조병만(曺秉萬)[1829~1895]은 성재(性齋) 허부(許傅)의 제자로,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여 일곱 살 때 천지인 삼재를 물었고, 12세 때는 규화시(葵花詩)를 읊었다. 효성과 우애가 순수하게 갖추어졌고, 문장이 해박하여 세상에서 추앙하였다.
1875년(고종 12)에 흥선 대원군의 재입궐을 청하다 유배 간 사람들을 위한 전라도 상소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고금도(古今島)의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9년 동안 섬에 살면서 문하생을 교육시켰고, 유배가 풀려 돌아온 뒤에 문하생들이 유허비를 세워주었다. 1889년경에 운곡 정사(雲谷精舍)를 짓고 기거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학문의 깊은 뜻을 탐구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집에 『회계집(晦溪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운곡 영당(雲谷影堂)에 향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