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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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時啓 |
이칭/별칭 | 은암(隱庵),자옥(子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임시계 의병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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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임시계 활동지 - 전라북도 전주 일원|충청북도 청주 일원 |
묘소 | 대리 칠충각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대리 154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옥(子沃). 호는 은암(隱庵).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숙(林塾)이다.
[활동 사항]
임시계(林時啓)[?~?]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동생 임시태 및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집안의 재산을 모아 군용(軍用)에 충당하였고, 전주에 이르러 이흥발(李興浡)을 만나 함께 행군하기로 하였다. 청주(淸州) 서평원(西平原)에 이르러 적 9명을 참수하였다. 다시 진군하던 중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병사를 해산하고 돌아와 어은동(漁隱洞)[현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에 은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1872년(고종 9) 동몽 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고, 1876년(고종 13)에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가증(加贈)받았다. 정려(旌閭)를 받아 칠충각(七忠閣)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