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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성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2131
한자 順城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16년 10월 10일 - 화순형과 능성현을 통합하여 순성현 개설
개정 시기/일시 1418년 7월 8일 - 순성현에서 화순현과 능성현 분리

[정의]

1416년부터 1418년까지 있었던 화순현능성현을 통합한 옛 행정 구역.

[개설]

조선 초기 1416년(태종 16) 10월에 화순현(和順縣)능성현(綾城縣)을 통합하면서 각각 한 글자씩을 따서 순성현(順城縣)으로 불렀다. 그러나 3년만인 1418년 7월에 원래대로 복구되어 다시 화순현능성현으로 고쳐 불렀다. 화순현의 관할 지역은 지금의 화순군 화순읍동면 지역이고, 능성현의 관할 지역은 지금의 능주면, 춘양면, 청풍면, 도곡면, 도암면, 이양면, 한천면 지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고을의 폐치 분합은 여러 가지 사유가 있었다. 전란으로 인한 폐해, 충효열에 어긋난 인물이 출생한 곳이나 그 같은 사건이 있는 곳, 향교의 전패가 훼손되는 경우 등이다. 두 고을을 통합하거나 한 고을을 강등 또는 없애 버리고 다른 고을에 분속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조선 초기에 화순현능성현순성현으로 합해진 정확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지방 군현 통치의 편의를 위하여 합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순성’이라 하여 화순의 ‘순’자가 앞에 오는 것도 고을 규모나 지역 세력 간의 역학이 작용했을 수도 있으나 이 또한 정확하게 살피기는 어렵다. 그 무렵 『세종실록지리지』의 호구 수는 화순이 209호(戶) 615구(口), 능성이 139호 763구의 규모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장흥 도호부 능성현 조에 “태종 16년(1416) 병신(명나라 태종 영락 14년)에 화순현을 합하여 순성 현령으로 고쳤으며, 3년이 지나 무술(1418)에 다시 나누어 능성현으로 하였다[太宗十六年丙申 [大明 太宗皇帝 永樂十四年] 合和順縣 改順城縣令 越三年戊戌 復分爲綾城縣].”고 기록되어 있다. 또 화순현 조에는 “태종 5년 을유에 동복현을 혁파하여 본현[화순]에 합속하고 화순 감무라고 칭하였고, 3년이 지나 정해(1407)에 복순이라 개칭하였고, 16년(1416) 병신에 이르러 다시 동복을 나누어서 본현[화순]을 능성에 합속하여서 순성현이라 칭하였고, 18년 무술에 따로 본현[화순현]을 두었다[太宗五年乙酉 革同福縣 合屬于本縣 稱和順監務 越三年丁亥 改稱福順 至丙申 復分同福 以本縣合屬于綾城 稱順城縣 戊戌 別置本縣].”고 기록되어 있다.

뒤이은 기록인 『신중동국여지승람』 전라도 화순현 건치 연혁 조에는 “태종 5년에 동복을 없애고 본현[화순]에 합쳐 소속시키고 화순 감무라고 칭하였다. 7년(1407)에 복순으로 고치고 16년(1416)에 다시 동복을 쪼개서 본현[화순]을 능성에 합쳐 소속시켜 순성이라고 일컬었으며, 18년(1418)에 각각 복구시키고 예에 의하여 현감으로 하였다[太宗五年 省同福 合屬于本縣 稱和順監務 七年 改稱福順 十六年 福析同福 以本縣合屬于綾城 稱順城 十八年 各復舊 例爲縣監].”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전라도 능성현 건치 연혁 조에는 “본조 태종 16년(1416)에 화순현을 합쳐서 순성현(順城縣)으로 고쳤다가 얼마 안 되어 각각 복구시켰다[本朝 太宗十六年 合和順縣 改順城縣 未幾各復舊].”라 기록되어 있다.

화순과 능성이 합해져 순성현이 된 것은 1416년(태종 16)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 된다. 즉, “다시 용안·함열·동복에 현감을 두고, 부령·보안을 합하여 부안현으로 하고, 화순·능성을 합하여 순성현으로 하였다[復置龍安 咸悅 同福縣監 倂扶寧 保安爲扶安縣 和順 綾城爲順城縣].”는 『태종실록』 32권[태종 16년 10월 10일, 무진] 기록이다. 그리고 이듬해 기록에서는 순성 현령 김중성(金仲誠)에 대한 내용이 『태종실록』 33권[태종 17년 4월 25일, 신사]에 나온다. 이어 화순과 능성이 다시 분리되는 기록도 확인된다. 즉, “순성현을 고쳐서 능성현이라 하고, 다시 화순현과 교하현 두 현을 세웠다[改順城縣爲綾城 復立和順 交河兩縣].”는 기록이 『태종실록』 36권[태종 18년 7월 8일, 병진]에 나온다.

[내용]

1416년(태종 16) 10월에 화순현능성현이 합해지면서 화순과 능성에서 한 글자씩 따서 순성현이 되었다가 3년만인 1418년 7월에 다시 화순현능성현으로 복구되었다. 화순현은 백제 시대에는 잉리아현(仍利阿縣)이라 하다가 통일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여미현(汝湄縣), 고려 태조 23년(940)에 화순현으로 고쳐 불렀다. 지금의 화순군 동면이서면 일부 지역이 관할 영역이었고 치소는 화순읍에 있었다. 여빈(汝濱), 해빈(海濱), 오성(烏城), 산양(山陽), 서양(瑞陽)의 별호가 있었다.

능성현은 백제 시대에는 이릉부리현(爾陵夫里縣)이라 하다가 통일 신라 경덕왕 16년에 능성군(陵城郡)으로 고쳐 불렀다. 지금의 화순군 능주면·춘양면·청풍면·도곡면·도암면·이양면·한천면이 관할 영역이었고, 치소는 능주면에 있었다. 죽수부리(竹樹夫里), 인부리(仁夫里), 연주부리(連珠夫里) 등의 별호가 있었다.

[변천]

순성현으로 개편된 후 3년 뒤인 1418년 7월에 다시 화순현능성현으로 복구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초기에 3년간 사용된 고을 명으로 화순과 능성의 역사적 변천을 알 수 있고 화순군의 향토학 역사 지명 자료로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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