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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의 두 열녀, 동복 오씨와 진양 하씨의 쌍렬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A020202
분야 종교/유교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지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쌍렬문 이전 1933년 - 하성래씨의 증조부인 하응락에 의해 193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마을지 쌍렬문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37-1번지
마을지 규남 박물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64번지

[열녀 동복 오씨와 진양 하씨]

야사 마을을 들어서서 규남 박물관 길 건너에는 넝쿨 숲을 배경으로 조그마한 정려각 하나가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이것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야사 마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진양 하씨 집안의 하성래 씨에 의하면, 쌍렬문은 정려각 두 개를 한자리에 모아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하대붕의 처인 동복 오씨 부인의 정려는 학당 마을에 있었고, 이득춘의 진양 하씨 부인의 정려는 전도 마을에 있었던 것이다. 현재 학당 마을과 전도 마을은 1984년 동복 수원지 확장 당시 수몰 지역에 포함되어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정확한 정려의 연도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감사 황신이 장계를 올려서 정려가 내려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정려각의 최초 위치가 전도 마을과 학당 마을에 있었던 것은 당시 야사 마을과 인접하고 있는 각각의 마을에 오씨 부인과 하씨 부인이 거주하였기 때문이다. 두 정려각이 쌍렬문이 된 것은 하대표(河大豹)[1550~1622]의 4대 손인 하영청(河永淸)[1697~1771]이 야사 마을로 옮겨온 때부터이며 정확한 위치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진양 하씨 후손 하성래 씨는 진양 하씨 집안이 1600년 경부터 야사 마을에 입향하여 생활하였고 전도 마을과 학당 마을에 있던 두 정려각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선조 하영청에 의해 야사 마을로 옮겨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하영청에 의해 옮겨진 처음 위치는 알 수 없고 현재의 쌍렬문은 이후 하성래 씨의 증조부인 하응락에 의해 193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쌍렬문은 야사 마을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을에 관계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으로 발길을 이끌고 있다.

[정유재란 때 절의를 지키려 자결하다]

쌍렬문의 주인공 중 한 명은 하대붕(河大鵬)[1535~1605]의 부인 동복 오씨이다. 동복 오씨 부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저 쌍렬문이 우리 마을로 온건 얼마 안 되는데 사연을 알면 마음이 짠해. 한 사람은 안 죽어도 된디 죽어불고, 또 한 사람도 남편 따라간다고 가불고. 요즘 같으믄 어디 그런 사람이 있간? 그래도 저 두 양반 덕에 우리 마을에 저런 열녀각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꼭 한번씩 보고 간당께”(이순준)

이에 대해 얽힌 사연을 풀어 놓으면 이렇다. 동복 오씨는 남편인 진사 하대붕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출병하여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또 하대붕의 집안에는 목산이라는 노비가 있었는데 목산 또한 주인에 대한 충절이 대단하였다. 목산은 “바깥주인은 적에게 포로가 되어 죽고, 안주인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니 어찌 나 홀로 살리오?”라고 말한 뒤 오씨 부인의 뒤를 따라 자결했다고 한다. 현재 쌍렬문 앞에는 충노 목산을 기리기 위한 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하대붕이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은 전란 중 잘못 전해진 것이었다. 훗날 전라 감사 황신이 말하기를, “부인은 절의에 죽었고, 노비는 충절에 죽었으니 일가의 충절이 빛나도다.” 라고 하며 장계를 올려 조선 시대 14대 왕 선조에 의해 정려가 내려졌다고 한다.

쌍렬문의 또 다른 주인공 진양 하씨 부인은 조선 선조 공조정랑(工曹正郞) 하대란(河大鸞)의 딸로 충의위(忠義衛) 이득춘(李得春)의 아내였다. 하씨 부인은 동복에 뿌리를 내린 진양 하씨 사람으로 유학에 근간을 둔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관리의 아내로 살면서 남편 못지않은 충절을 갖춘 인물이었다. 하씨 부인은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남편 이득춘이 전장에서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인근 전도 마을 앞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전란 이후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고 하씨 부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해 정려가 내려졌다고 한다.

열녀 동복 오씨와 하씨 부인의 절의(節義)는 마을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그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숙연한 자세로 회자되고 있다.

[정보제공]

  • •  이순준(남, 1955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전 이장)
  • •  하성래(남, 1935년생, 규남 하백원 선생 후손)
  • •  하태명(남, 1961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사무장, 규남 하백원 선생 후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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