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B010102 |
---|---|
한자 | 集姓村-炭鑛村-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동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경숙 |
흑토재 검은 흙이 유용한 석탄임을 인지 | 1904년 - 화순지역의 토호인 박현경은 화순 흑토재 일대 검은 훍이 유용한 석탄임을 인지하다. |
---|---|
박현경의 흑토재 일대 채광권 취득 | 1905년 4월 5일 - 화순지역의 토호인 박현경이 흑토재 일대검은 흙이 석탄임을 알고 그 일대의 석탄 채광권을 얻어낸다. 문헌 기록은 없지만 궁 내부의 허가를 얻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박현경의 흑토재 일대 토지 매입 | 1915년 - 박현경은 화순군 동면 복암리 891번지 748평을 매입하여 동암탄광 설립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
박현경의 동암탄광 설립 | 1918년 - 박현경이 동암탄광을 설립하고 탄광 개발을 시작한다. |
종연방적의 화순무연탄주식회사 인수 | 1934년 6월 30일 - 종연방적은 광주에 설립한 방직공장의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1934년 6월 30일에 화순무연탄주식회사를 인수하였다. |
종연방적의 종연광업주식회사 설립 | 1934년 7월 28일 - 종연방적은 화순무연탄주식회사를 매수한 후 1934년 7월 28일 종연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와타나베를 소장으로 하여 흑토재 일대의 종연탄광 개발을 시작한다. |
화순선 철도 부설 | 1942년 - 1942년에 석탄 광산이 위치한 복암리와 화순역 사이 12㎞ 구간에 석탄 운송을 위한 화순선 철도가 완공된다. |
대한석탄공사 설립과 화순탄광 개발 | 1950년 11월 1일 - 1950년 11월 1일에 석탄 개발을 위한 공영 대한석탄공사가 창립되면서, 복암리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가 흑토재 일대의 화순탄광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
탄광마을인 천운 마을 탄생 | 1958년 1월 1일 - 탄광 개발과 함께 오곡마을 규모가 커지자, 영빈관, 사택, 상가 등이 들어선 지역이 분리되어, 1958년에 천운장(또는 천운)마을이라는 탄광마을이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
화순광업소 절정기 | 1989년 - 화순광업소와 탄광마을들은 1989년에 최대 석탄 생산량을 기록하며 절정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소비자들의 청정 에너지 선호와 함께 1990년대 이후 쇠퇴하게 된다. |
마을지 | 흑토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
마을지 | 화순선 철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
[화순군 오지 마을, 집성촌을 이루다]
화순군 동면 지도를 들여다 보면, 여느 전라남도 지역과는 다르다. 촘촘한 등고선이 이어지고, 화순천이 그 사이에 겨우 물길을 낸다. 말 그대로 산간 오지이다. 그런데 충의로와 화순선 철도를 따라 제법 큰 마을들이 이어진다. 탄광 마을들이다.
탄광 마을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척박한 토양과 경작지가 좁은 오지인데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단다. 다양한 성씨의 외지인이 모여드는 탄광 마을과는 대비된다. 천운 마을에는 공씨, 여씨, 이씨가 살았다고 전하며 당시에는 샘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모듬 살이의 원천인 샘이 있었기에 일찍이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었으리라. 먹골이라 부르는 여우골에는 해주 최씨 40여 호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구암 마을에는 현재의 마을 맞은 편 당산나무 아래에서 류씨, 백씨, 김씨가 농사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오곡 마을에도 김씨들이 입향하여 거주하였다고 한다.
[집성촌 마을에 부는 흑토재 검은 바람]
집성촌 중심의 원래 마을들은 흑토재에 분포하는 검은 흙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흑토재는 오곡 마을[지금의 천운 마을]과 구암 마을 사이 고개이다. 검은 흙은 기름진 전라남도의 전형적인 옥토와는 사뭇 다르다. 농사에 의존하던 옛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불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화순의 부호 박현경은 검은 흙이 유용한 석탄임을 알아챈다. 이를 계기로 이 일대에 검은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흑토재 일대 화순 탄광의 시작에 관한 정식 문건은 없다. 그러나 당시 탄광 관련 노인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재현한 대한 석탄 공사 자료, 마을 주민 면담 등을 통해 그 면면을 알 수 있다. 박현경은 광양 금광 지질기사인 와타나베[渡邊]를 초빙하여, 석탄이 흑토재 일대에 다량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검증 받기에 이른다. 그는 1905년 4월 5일에 흑토재 일대의 광업권을 얻어낸다. 와타나베를 책임자로 하여 흑토재 오른편 너멍굴에 북갱을 뚫고, 석탄 사업을 시작한다. 당시는 나무와 흙만 제거한 후 석탄을 노지에서 긁어내는 것이 더 쉬웠다고 한다. 박현경은 1915년 흑토재 일대 토지를 매입하고 1918년 동암 탄광을 설립하는 등 탄광 개발을 지속한다.
[종연 방적 탄광 개발로 탄광 마을로의 문이 열리다]
흑토재를 중심으로 불던 검은 바람은 종연 방적과 함께 탄광 마을로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일본 굴지의 회사인 종연 방적은 1917년에 한국에 진출한다. 주로 군복 제작용 천을 짜던 종연 방적은 1933년에 광주 방직 공장을 설립한다. 전라남도의 면화 재배와 화순 탄광 석탄을 배경으로 조선 최대 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광주 방직 공장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 종연 방적은 1934년 6월 30일 화순 무연탄 주식회사를 인수하고, 1934년 7월 28일 종연 광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화순 석탄 개발에 착수한다. 1942년에는 저렴한 석탄 운송을 위해 화순-복암[11.1㎞] 간 철도까지 부설한다. 홍성 기업, 남일 기업, 남선 탄광도 석탄 개발에 나서면서 탄광 인근에는 임시 합숙소, 사택, 본관, 창고, 배급소 등이 들어서게 된다. 특히 오곡 마을[지금의 천운 마을]에는 병원과 일본 관리의 사택, 영빈관이 들어선다. 사람과 물자 그리고 검은 바람이 넘치는 풍요의 탄광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