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C0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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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도장 농우회 조직 | 1980년대 후반 - 김성인이 도장농우회 조직하여 민요를 수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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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 신문 기사화 | 1989년 - 민요를 지키려고 애쓰는 마을사람들의 활동이 빛고을 신문에 도장 마을밭노래가 기사화되었다. |
KBS 한국의 미 프로그램 출연 | 1992년 6월 7일 - KBS 한국의 미 프로그램에 어머니들의 힘겹고 고단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다. |
제20회 남도문화제 우수상 수상 | 1992년 10월 23일 - 마을 사람들은 도장리 밭노래로 제20회 남도문화제 출연하여(목포),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
제12회 화순군민의 날 행사 시연 | 1993년 4월 26일 - 마을 사람들은 도장리 밭노래를 제12회 화순군민의 날 행사에서 시연하였다. |
제14회화순군민의날 공연 | 1995년 4월 26일 - 마을 사람들은 도장리 밭노래를 제14회 화순군민의 날에서 공연하였다. |
전라남도 개도 100주년기념행사에 시연 | 1996년 8월 31일 - 마을 사람들은 도장리 밭노래를 전라남도 개도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여 시연하였다. |
제24회 남도문화제 공연 | 1996년 10월 2일 - 마을 사람들은 도장리 밭노래를 제24회 남도문화제 출연하여 공연하였다. |
제1회 운주대축제 공연 | 1996년 11월 1일 - 마을 사람들은 도장리 밭노래를 제1회 운주대축제 출연하여 공연하였다. |
제2회 운주대축제 공연 | 1997년 11월 2일 - 마을 사람들은 도장리 밭노래를 제2회 운주대축제에 1회에 이어 출연하여 공연하였다. |
KBS 6시 내고향 출연 | 2001년 8월 27일 - 도장 마을 사람들이 도장리 밭노래를 부르는모습이 KBS 6시 내고향에 방영되었다. |
현대 | 2005년 8월 1일 - 광주 MBC 송년특집 신얼씨구학당 출연하였다. |
광주 MBC 송년특집 신얼씨구학당 출연 | 2007년 10월 12일 - 도장 마을 사람들 광주 MBC 송년특집 신얼씨구학당 출연하였다. |
천태초등학교 공연팀 제36회 남도문화제 최우수상 수상 | 2008년 8월 1일 - 천태초등학교 어린이 밭노래공연팀 제36회 남도문화제 출전 학생부 민요부문 최우수상 수상을 수상하였다. |
도장리 밭노래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 2012년 12월 30일 - 도장리 밭노래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 되었다. |
마을지 | 목화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
마을지 | 옛마을회관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
[이야기는 거짓말, 노래는 참말]
도장 마을 여성들은 자신들의 힘겨운 삶을 노래로 풀어냈다. 시집살이의 고단함, 농사일과 가사일로 쉴 틈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동무들이었고 노래였다. 『도장리 밭노래』는 주로 목화밭을 매면서 부른 노래이다. 목화밭을 맬 때 도장 마을 여성들은 품앗이를 했다. 열댓 명이 모여서 오늘은 누구네 밭을 매고, 다음날은 누구네 밭을 매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일을 했다. 물레질을 할 때에도 함께 모여서 품앗이를 했다. 함께 일하면서 자신들의 속내를 말로 풀어내고, 말로도 부족한 것은 노래로 풀어냈다.
“매느리[며느리] 가는 질은 억만리 불고개
앞밭에다 고초 숭고 뒷밭에다 마늘 숭고
고초 마늘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매와요
시아버지 호령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시동생은 나발새요 시누 한나 삐죽새요
자석 한나 우령새요 남편 한나 미령새요”
『도장리 밭노래』의 소리꾼이었던 고 서정례 씨가 부른 민요이다. 며느리가 가는 길은 억만리 길이고 게다가 불고개라고 표현하였다. 고추보다 마늘보다 더 매운 것이 시집살이라고 하였다. 이런 노래를 부르다 보면 힘든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슬픔에서 한 발짝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도장리 밭노래』 앞소리를 맡고 있는 김금순 씨에서 도장리 밭노래는 어떤 노래인지를 물어보았다.
“『도장리 밭노래』는 엄마들이 하는 노래여. 흥글흥글 그렇게 했어. 엄마에게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했더니 “속 터진께 근다” 하대. 목포에 가서 민요를 부르니까 듣는 사람들이 옛 생각이 나서 그런지 눈물을 철철 흘리는 사람도 있었어. 옛날 노인들은 유행가를 모르고 그런 노래만 불렀어. 근께 우리 밭노래 요것이 민요도 아니고 흥글흥글, 어무니들이 시집살이를 하면서 맺혀서, 한이 맺혀서 하는 노래가 많이 섞여 있어. 노인들이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뜻이 있어서 부르는 것이여.”(김금순)
『도장리 밭노래』는 목화밭노래이면서 시집살이 노래이면서 여성들의 한을 풀어내는 소리였다. 시집살이의 어려움, 남편에 대한 원망, 사랑에 대한 희구, 부모에 대한 그리움, 자식들에 대한 기대를 노래 속에 진솔하게 담아냈다. ‘이야기는 거짓말, 노래는 참말’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곧 그들이 살아온 삶이었고 그들의 마음이었다.
[『도장리 밭노래』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구두로 전해지던 도장 마을 민요에 대해 제일 먼저 주목한 사람들은 도장 농우회 회원들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마을의 민속의 중요성을 인식한 도장 농우회 회원들이 마을에서 전승되는 민요를 녹음하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민요를 수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을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한두 곡씩은 민요를 부를 줄 알았다. 그 중에서도 고 김아님 씨, 나순례 씨, 이병순 씨는 수많은 노래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분들의 입에서는 마치 화수분처럼 민요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때 80여 곡의 민요가 수집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민요 잘 부르는 노인들을 선생님으로 하여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밤에 모여 노래를 부르다보면 농사일에 지친 몸과 여러 걱정으로 고단한 마음이 풀어지고 흥이 났다고 한다.
민요를 지키려고 애쓰는 마을 사람들의 활동이 1989년 당시 『빛고을 신문』에 기사화되면서 도장 마을은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KBS의 「한국의 미」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에는 어머니들의 힘겹고 고단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고 방송을 본 사람들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힘겹고 고단한 삶에 공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1991년에 수집한 민요 중에서 도장 마을의 생태적 환경에 가장 부합하는 밭노래를 연습하여 화순군민의 날 행사에 참여하였다. 이 행사에서 일등을 함으로서 화순군을 대표하여 1992년 제20회 남도 문화제에 출전하여 민요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도장리 밭노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남도 문화제와 전국 민속 예술 축제에 출전하는 민요는 대개가 논농사를 지으며 부르는 노래였다. 그런데 『도장리 밭노래』는 논농사 노래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을 절절하게 보여주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1991년에 이후 『도장리 밭노래』는 대외적인 행사에 자주 참여하게 된다. 1993년 제12회 화순군민의 날 참여를 시작으로 화순군에서 개최하는 행사의 인기 초청작이 되었다. 1996년 8월에는 전라남도 개도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하여 시연을 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제1회 운주 대축제에서 공연을 하였다. 이 공연은 도장 마을이 위치한 화순군 도암면에서 주최하는 행사라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목화 화분을 나누어 주며 목화 밭노래의 의미를 되새겼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의 음성과 몸짓에는 더욱더 정성이 실렸다. 2001년에는 KBS 「6시 내 고향」에 출연하여 밭노래로 하나되는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5년에는 광주 MBC 송년 특집 「신 얼씨구 학당」에 출연하여 공연하였다. 2008년 8월에는 마을 주민들이 지도한 천태 초등학교 어린이 밭노래 공연팀이 제36회 남도 문화제에 출전하여 청소년부 민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오래된 미래가 될 『도장리 밭노래』]
『도장리 밭노래』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처음 밭노래를 수집했던 때로부터 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당시에 뛰어난 민요 연행자였던 김아님 씨는 2001년에, 나순례 씨는 2003년에 세상을 떠나셨고 이병순 씨도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기 때문에 민요의 자연적 전승은 쉽지 않다. 하지만 도장 마을의 경우 다음 세대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근래에는 나순례 씨의 며느리인 양외순 씨, 이병순 씨와 동서지간인 김금순 씨,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인 강송자 씨, 유정자 씨가 『도장리 밭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매년 열리는 도장 마을 축제 때 『도장리 밭노래』가 연행되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별한 점은 2011년까지 도장 마을 민요를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인 천태 초등학교에서 특별 활동 수업의 일환으로 교육했다는 점이다. 2012년도에 와서 이 특별 활동이 중단되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고 있지만 지역 문화 교육 차원에서 교재를 만들어서 가르치고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도 바로 도장 마을의 주민들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지역에서 불렸던 민요를 그 지역의 아이들이 배우고,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전승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도장리 밭노래는 2012년 12월 30일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55호로 지정 되었다. 그동안 마을에서 애써 보존해온 민요가 도장 마을 사람들의 유산일 뿐 아니라 전라남도의 소중한 무형유산으로 자리매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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