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495 |
---|---|
한자 | 龍華山城 |
영어공식명칭 | Yonghwa Mountain Fortress |
이칭/별칭 | 성태봉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도천2길 35-108[신용리 산22-1] 일원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문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2월 14일 - 용화산성 익산시 향토유적 제8호 지정 |
---|---|
현 소재지 | 용화산성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도천2길 35-108[신용리 산22-1] 일원 |
성격 | 산성|성곽 |
양식 | 석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435m[주성]|189m[부성] |
면적 | 9,849㎡[주성]|2,161㎡[부성] |
문화재 지정 번호 | 익산시 향토유적 제8호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개설]
용화산성(龍華山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 여산면의 경계 지점에 해당하는 용화산에 주성과 부성으로 지어진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2m인 성태봉을 감싸는 부성과 부성에서 북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능선부와 동사면을 포함하여 축조된 주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부성은 일명 성태봉산성(城胎峰山城)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주성 및 부성의 성벽 대부분이 붕괴되었으며, 부성의 잔존 상태가 주성에 비하여 더 양호하지 못하다. 부성의 경우 용화산 정상에 해당되고 주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어 등산객의 발길이 잦으며, 능선부 잔존 성벽은 훼손된 상태이다. 용화산성은 2000년 12월 14일 익산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용화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후백제와 관련된 여러 설화가 전하고 있어 적어도 후백제 이전에는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산성 내에서 간혹 삼국 시대 토기편이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삼국 시대에 축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용화산은 과거에 군입산(軍入山)으로 불렸다. ‘군입산’은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대를 주둔시켰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贈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의 후백제군 정벌 기사에서 황산군(黃山郡)에 이르러 탄령(炭嶺)을 넘어 마성(馬城)에 군대를 주둔시켰다고 하는 내용이 있는데, ‘마성’을 용화산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용화산성 아래에는 견훤(甄萱)의 진터로 불리는 마산진터가 있다.
[위치]
용화산성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산22-1 일원에 있는데,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 여산면의 경계 지점에 해당한다.
[형태]
용화산성의 주성은 능선의 양쪽 봉우리[해발 340m]와 양 봉우리의 동사면, 사이의 작은 계곡부를 감싸는 포곡식에 가까운 구조를 띤다. 평면 형태는 마름모 형상이며, 둘레는 435m 내외로 전체 면적은 9,846㎡ 정도이다. 부성은 해발 342m의 용화산의 주봉인 성태봉을 감싸는 테뫼식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모를 죽인 삼각형에 가깝다. 둘레는 약 189m, 전체 면적은 약 2,161㎡ 정도이다.
[현황]
용화산성의 주성은 성곽 형태와 윤곽은 전체적으로 잘 남아 있다. 다만 남북 방향의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의 서쪽 방향에 군 공용화기 사격장이 있어 지속적으로 산성이 훼손되고 있다. 부성은 동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서벽과 동벽에 문지로 추정되는 지점은 현재 등산로가 개설되어 훼손이 심하며, 건물지로 추정되는 정상부의 평탄지 역시 민묘 조성으로 인하여 훼손되었다.
[의의와 평가]
용화산성은 익산 지역에 분포한 산성 중 유일하게 주성과 부성으로 나누어진 성곽으로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있어 미륵산성 및 주변 산성군과 인접 산성들 간에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성은 공격 시 실질적인 농성 장소로 판단되며, 부성은 주성과 연결되어 감시 및 경보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