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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795
한자 吳尙濂
영어음역 O Sangryeom
이칭/별칭 유청(幼淸),연초재(燕超齋),택남(澤南),제월(霽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양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8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99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704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707년연표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동복(同福)

[정의]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유청(幼淸), 호는 연초재(燕超齋)·택남(澤南)·제월(霽月). 묵재(黙齋) 오백령(吳百齡)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오정벽(吳挺璧)이고, 아버지는 황주 판관(黃州判官) 오시적(吳始績)이다. 어머니는 윤매(尹梅)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오시수(吳始壽)이다. 형으로 오상함(吳尙涵)이 있고, 누이는 선조의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현손인 밀창군(密昌君) 이직(李樴)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오상렴(吳尙濂)[1680~1707]은 태어난 해에 경신환국으로 큰아버지 오시수가 사사되고,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거의 모든 정치권력을 잃게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제천으로 내려와 살았다. 오상렴은 어려서부터 총기가 있어 1699년(숙종 25) 기묘증광사마시(己卯增廣司馬試)에 생원·진사에 연달아 2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대과에 실패한 이후로 칩거하였다. 이때에 『장자(莊子)』, 불경까지 두루 섭렵하여 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1704년(숙종 31) 25세에 김이만(金履萬)과 함께 당시 과천(果川)의 청계산 부근으로 퇴거한 송곡(松谷) 이서우(李瑞雨)의 거소로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때 송곡으로부터 신라의 최치원(崔致遠)과 고려의 이색(李穡)에 비견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1707년(숙종 33)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학문과 저술]

제천을 배경으로 시작(詩作)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그의 문학은 전대 학당(學唐)의 시인들의 풍모를 이으면서 후대의 정범조·신광수 등 당풍의 문학을 지향한 남인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 시문집으로 『연초재유고(燕超齋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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