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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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世䂓 |
영어음역 | Jeong Segyu |
이칭/별칭 | 군칙(君則),동리(東里),경헌(景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5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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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13년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활동 시기/일시 | 1654년 |
몰년 시기/일시 | 1661년 |
거주|이주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오티마을 |
비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동래(東萊) |
대표 관직 | 이조 판서 |
[정의]
제천에 거주한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 증조할아버지는 정진(鄭振)이며,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정언신(鄭彦信)이고, 아버지는 정율(鄭慄)이다. 동생인 정세구(鄭世矩)는 사마시와 문과를 거쳐 감사를 역임하였으며, 아들인 정담(鄭儋)은 사마시를 거쳐 뒤에 영월 군수에 이르렀다.
[활동 사항]
정세규(鄭世䂓)[1583~1661]는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의금부 도사를 거쳐 화순 현령·안산 군수를 역임하였는데, 선정을 베풀었다. 1636년(인조 14) 충청도 관찰사로 특진되었으며, 그해 병자호란으로 왕이 남한산성에서 포위되자 근왕병을 이끌고 남한산성에 가다가 패군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번갈아 역임하고 이조 판서에 오른 뒤 1654년(효종 5) 강화 유수가 되어 승천(昇天)·연미(燕尾)·갑곶(甲串)·광성(廣城) 등지에 진(鎭)을 설치하여 국방을 강화하였다.
문음 출신으로 육경(六卿)에 오른 대표적 인물이다. 은퇴한 후에는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오티마을에 거주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곡 이서우(李瑞雨)가 생전의 공덕을 기리면서 쓴 글이 있다.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신도비를 세웠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