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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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時烈 |
영어음역 | Song Siyeol |
이칭/별칭 | 성뢰(聖賚),영보(英甫),우암(尤庵),우재(尤齋),문정(文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정의]
청풍의 황강서원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 아버지는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활동 사항]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九龍村) 외가에서 태어나, 후에 회덕(懷德)에서 살았다. 연산(連山)의 김장생(金長生)과 그의 아들 김집(金集) 문하에서 학업을 마쳤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입격한 후 1635년 봉림대군(鳳林大君)[훗날 효종]의 사부(師傅)로 임명되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면서 잠시 벼슬에 나아갔고, 1658년(효종 9) 효종의 부탁으로 세자시강원 찬선에 임명되어 관직에 나아갔으며, 그해 9월에는 이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1659년 5월 효종이 급서한 뒤 낙향하였으며, 1668년(현종 9) 우의정, 1673년(현종 14) 좌의정에 임명되었을 때 잠시 조정에 나아갔을 뿐 시종 재야에 머물렀다.
1674년(현종 15) 예송(禮訟)에서 패배하면서 1675년(숙종 1) 덕원(德源)으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장기·거제 등지로 이배되었다. 1680년(숙종 6) 서인들이 다시 정권을 잡자, 중앙 정계에 복귀하여 영중추부사로 임명되었으나, 1689년 1월 숙의 장씨(張氏)가 아들[훗날 경종]을 낳자 세자 책봉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그해 6월 국문을 위해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정읍에서 사사되었다. 권상하의 스승으로 한수재와 황강영당(黃江影堂)의 편액을 썼고, 청풍 한벽루와 청풍 팔영루의 제액(題額)을 썼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송자대전(宋子大全)』이 있다.
[상훈과 추모]
청풍의 황강서원(黃江書院)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