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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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履萬 |
영어음역 | Gim Iman |
이칭/별칭 | 중수(仲綏),학고(鶴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6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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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13년 |
활동 시기/일시 | 1745년 |
활동 시기/일시 | 1756년 |
몰년 시기/일시 | 1758년 |
묘소|단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예안(禮安) |
대표 관직 | 첨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중수(仲綏), 호는 학고(鶴皐). 증조할아버지는 김득선(金得善)이며, 할아버지는 김단(金鍴)이며, 아버지는 경주부 윤을 역임한 단계(檀溪) 김해일(金海一)이다. 어머니는 이은진(李殷鎭)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고, 부인은 오시만(吳始萬)의 딸 동복 오씨(同福吳氏)이다.
[활동 사항]
김이만(金履萬)[1683~1758]은 1713년(숙종 39) 사마시와 증광 문과에 급제, 성균관 전적과 병조 좌랑 등을 거쳐 양산 군수가 되었다. 양산 군수로 재직할 때에는 자신의 녹봉으로 제방을 쌓아 수재를 막은 일이 있다. 백성들이 이 공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우고 청전제(靑田堤)라 불렀다 한다. 1745년(영조 21) 사헌부 장령을 거쳐 사간원 정언,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등 청요직을 지냈다.
관직에 있으면서 민생의 안정과 청렴한 관리의 선발 등 시정 득실에 관한 상소를 자주 올렸다. 1756년(영조 32) 통정대부에 올랐고, 이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관직 생활 외에는 제천에서 살면서 제천의 역사와 풍광과 관련한 많은 시문을 남겼다.
[학문과 저술]
김이만은 특히 문장이 뛰어났으며, 문집으로 『학고집(鶴皐集)』이 있다. 이 외 규장각에 시문의 초고를 모은 『학고만필』 등의 저술이 있다. 『학고집』은 1994년 후손들이 김해일의 『단계집(檀溪集)』 등과 합하여 『예안김씨예천파문집』으로 영인하였다. 이 문집에는 「임호부(林湖賦)」를 비롯해 「학고초당기(鶴皐草堂記)」, 「임호채순기(林湖採蓴記)」 등 제천의 역사와 풍광과 관련한 시문이 다수 전한다.
[묘소]
묘소는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