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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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Heojaebinori |
영어의미역 | Straw Effigy Play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선영 |
성격 | 민속놀이|세시 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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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시기 | 음력 정월 보름 |
관련 의례 행사 | 제천 오티 별신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무형 문화재 제8호[오티 별신제]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서 별신제의 마지막 과정인 해물리기를 할 때 벌이는 세시놀이.
[개설]
허재비 놀이는 수산면 오티리에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께 올리는 별신제(別神祭)의 마지막 과정에서 마을을 기웃거리는 잡귀들을 내쫓기 위한 대동놀이이다. 곧 허재비 놀이는 격년으로 지내고 있는 별신제의 마지막에 제액 초복을 위한 놀이 마당이다. 제천 오티 별신제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티리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정월 열나흘에 산신제[상당]와 본당제[하당]를 지낸다. 같은 날 오티리의 매차골[마을]에서도 매차골 서낭제를 지낸다. 열나흘의 동제는 매년 지내고 있다. 한편 보름날에 지내는 별신제는 2년에 한 번씩 지낸다. 별신제는 마을의 다섯 곳에 있는 서낭을 돌며 올리는 동제(洞祭)이다. 서낭에 제를 모두 올리고 나면 마을의 한 가운데 있는 둥구나무[본당]에서 신들을 모두 모셔 놓고 다시 한번 잔을 올리고 풍물을 치며 한바탕 허재비 놀이를 한다.
[연원]
허재비 놀이는 오티 별신제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오티 별신제의 연원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오티 별신제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 정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오티 마을이 생겨나면서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봉수와 관련된 기록으로 오티리가 언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세종 무렵 이미 오티마을이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허재비 놀이를 비롯한 오티 별신제는 세종 시기 또는 그 이전 시기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허재비 놀이를 하기 위해 짚으로 남녀 허수아비를 각각 하나씩 만드는데, 대개 제일(祭日)인 정월 대보름 3일 전에 준비한다. 크기는 만들어질 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두 살배기 아이만 하다. 이 허재비는 각각 ‘당나라’, ‘당초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당나라’, ‘당초위’는 각각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허수아비에 남근과 임신한 여자의 배 모양을 단다. 허재비와 더불어 액을 내보내기 위한 도구로 수수팥떡을 꽂은 화살, 활, 바가지와 칼, 몽둥이 등이 놀이를 위해 필요하다. 놀이는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본당[둥구나무] 앞의 넓은 논에서 사설(辭說)을 베풀며 진행된다.
[놀이 방법]
마을 가운데에 있는 본당에서 제(祭)를 마치면 주변에서 풍물이 울려 퍼진다. 한바탕 풍물을 신나게 놀면 곧이어 재담꾼에 의해 허재비 놀이가 시작된다. 논에 판자를 깔고 술잔 6개, 수수팥떡, 화살, 바가지, 칼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허재비를 두 사람이 각각 들고 나서면 ‘당나라’, ‘당초위’라 부르며 한참 동안 이들을 달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호통을 치기도 한다. 별도의 문서가 없어 사설은 재담꾼의 말솜씨에 따른다. 결국은 허재비를 협박하여 마을에서 나갈 것을 명령하고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수수팥떡을 화살에 꽂아 마을 밖을 향해 쏘아 버리고 해물리기를 한다. 칼을 던져 칼끝이 마을 밖을 향하면 바닥에 ×자를 긋고 그 가운데 칼을 꽂는다. 그리고 바가지를 밟아 깨고 침을 뱉고 마을로 돌아온다. 이것으로 허재비 놀이는 끝이 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허재비 놀이는 오티 별신제의 마지막 과정이다. 허재비를 만들어 노는 것만 제외한다면 이와 비슷한 것으로 외출을 하고 돌아와 잡귀로 인해 몸이 아픈 것이라고 여길 때 할머니들이 잡귀를 물리는 ‘해물리기’ 또는 ‘객귀물림’을 들 수 있다. 객귀를 어르고, 달래고, 쫓아내는 과정이 허재비 놀이의 과정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