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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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玟燦 |
이칭/별칭 | 송재(松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정민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 황민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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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05년 - 황민찬 동몽교관 증직 |
출생지 | 황민찬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중리 |
사당|배향지 | 황민찬 정려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장수(長水) |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장수(長水). 호는 송재(松齋). 방촌(蔯村)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교관 현령 황동규(黃東奎)이다.
[활동 사항]
황민찬(黃玟燦)[1876~1905]은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중리에서 태어났다. 「증 교관 황민찬 정려기(贈敎官黃玟燦旌閭記)」에 의하면 황민찬은 품성이 순하고 후덕하였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에 우애하고 배우기를 좋아 했다.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 황민찬이 일부러 손가락을 다치게 하여 어머니가 황민찬의 손을 불어 주려고 할 때 자신의 손가락 피를 어머니 입에 흘려 넣었다. 하늘이 감동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쳐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소생하였다.
[상훈과 추모]
용담 향교 유림들이 청원하여 1905년(고종 9)에 정려가 내려지고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김영한이 지은 정려기가 있다. 정려기의 원제는 「증 교관 황민찬 정려기(贈敎官黃玟燦旌閭記)」이다.
황민찬 정려각은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중배실 마을 어귀에 있는 화산 서원의 길 건너편에 있는 효자 정려이다. 전면 1칸 측면 1칸의 우진각 지붕의 정려각이 세워졌다. 이 정려각은 맞배 지붕의 와가로서 그 안에 허공 중간에 가로질러 걸려 있는 현판에는 ‘효자 학생 증 구품 후임부 중학교 교관 장수 황민찬지려(孝子 學生 贈 九品後任部 中學校敎官 長水 黃珉燦之閭)’라 새겨져 있다. 돌과 흙을 섞어 쌓아 기와를 얹은 담장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문은 기와지붕에 두 짝 열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