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36
한자 宋彦琦
영어음역 Song, eon g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낙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성별
생년 1204년연표보기
몰년 1247년연표보기
본관 진천(鎭川)
대표관직 중서시랑평장사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천(鎭川). 증조할아버지는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이고, 할아버지는 송원겸(宋元謙)이며, 아버지는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순(宋恂)이다. 아우인 송언상(宋彦祥)은 대장군으로 몽고침입 때 귀주성과 죽주성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인물이다. 이때 진천 출신으로 무인 집정의 최고 자리에 오른 임연이 송언상의 말을 부리는 군사로 있었다.

[활동사항]

송언기(宋彦琦)[1204~1247]는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금주현령이 되었다. 정사를 청렴하고 공정하게 다스렸으며 끊고 맺음이 분명하여 간악한 토호들이 자취를 감췄다. 공적이 우수하여 도병마록사(都兵馬錄事)로 임명되었으며, 감찰어사(監察御使)에 승진하여 우창(右倉)을 감시하였다. 이때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창고에 비축된 식량을 대여해 기근을 면하게 하였다. 이 일로 사람들에게서 가장 현명하고 강직한 어사라는 칭찬을 받았다.

몽고군 200여 기가 수달을 잡는다면서 가주(嘉州)·삭주(朔州)·귀주(龜州)·태주(泰州) 등 4주의 영토에 들어왔으나 본심은 약탈을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송언기는 수기(數騎)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타일러 물러나게 하였다. 그 후 수차례에 걸쳐 강화사로 파견되어 몽고와 협상하였다. 그 결과 7년 동안 국경이 평온하였다고 한다.

벼슬이 여러 차례 올라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에 이르렀다. 1246년(고종 33) 강화사로 다시 보내려고 했으나 병으로 가지 못하자 당시 재상들이 “송(宋)이 살면 국가의 복이요, 송이 죽으면 국가의 걱정이다”라고 하였을 정도로 충성심과 공훈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실전되고 없으며,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매산상산백(常山伯) 묘역에 단비를 세웠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