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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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常服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아 |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었던 옷.
[개설]
충청북도 진천 지역은 현대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평상복의 기본적인 형태는 특별한 점이 없다. 따라서 전통적·계절별로 지역에서 사용했던 옷감과 의복의 구성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써 평상복의 구성과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진천 지역에서 주로 평상복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전통적으로 바지·저고리·치마·속곳·두루마기 등이 기본이 된다.
[의복의 구성]
남성들이 주로 입었던 복식은 바지·저고리·겹바지·솜바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을 각각 계절별로 겹바지·겹저고리, 또는 홑저고리·홑바지로 갖춰 입었다. 예로부터 평상시 의복으로는 바지·저고리를 간단하게 입었으며, 점차 현대로 오면서 바지와 티셔츠 등에 점퍼 등의 의상을 갖춰 입게 되었다. 남성의 경우는 저고리 위에 조끼와 마고자와 같은 겉옷을 입고 겹저고리를 입어 보온을 유지하였다. 또한 전통적으로 외출용 겉옷인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계절에 따라 옷감을 달리 하였다. 평상시 활동이나 농사일 등을 할 때에는 주로 무명으로 만든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겨울에는 솜바지에 솜저고리를 갖춰 입었다.
여성의 옷은 전통적으로 저고리·적삼·치마·속곳·바지·버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의복을 살펴보았을 때, 임진왜란을 계기로 짧은 저고리가 일반화 되었다. 깃 너비도 좁아지고 섶·끝동·동정 등이 좁아져 저고리 전체가 작아지는 변화를 겪었다. 또한 일반 부녀들은 주로 민치마를 입고 속치마를 갖춰 입었다. 진천 지역에서도 이러한 의복을 갖춰 입다가 개화기의 영향을 받아 짧고 불편했던 저고리가 길고 편안하게 바뀌었으며, 치마의 길이도 짧고 활동적으로 변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평상시 작업복과 외출복이 크게 구분되지 않았으며, 무명으로 만든 앞치마를 착용하는 점이 여성 의복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계절별 의복]
평상시에 입는 옷에 있어서도 계절별로 의복의 재료와 구성이 변화하였다. 진천 지역에서 봄에 주로 입었던 옷은 무명으로 제작된 바지와 저고리였다. 여성의 경우에도 무명으로 만든 치마와 속곳·저고리 등을 입었다. 그리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겹저고리를 추가하여 입기도 하였다. 특히 지역에 따라 명주로 짠 의복을 입기도 하였으나 무명으로 만든 옷을 평상시에 보편적으로 많이 입었다.
여름철에는 주로 삼베·모시·무명·광목 등의 재료로 옷을 만들어 입어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삼베로 만든 중의적삼을 가장 많이 입었다. 가을철에는 봄철과 마찬가지로 무명으로 만든 옷을 입었으며, 겹바지를 입어 겨울철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 것에 대비하였다. 겨울에는 솜바지와 솜저고리를 입어 추운 날씨에 대비하였다.
[평상복을 구성하는 옷감]
현대에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는 옷감은 계절별·용도별로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진천 지역의 전통 평상복에서 주로 사용된 옷감은 삼베·무명·명주 등이었다. 진천 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은 옷감의 재료를 장만하여 수작업을 통해 의복을 제작하여 착용하였다. 특히 지역별로 삼베·무명 등의 직물을 직접 짜서 의복을 구성하였는데, 삼베와 무명은 원재료를 수확하여 다양한 과정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베짜기를 거쳐 의복으로 완성되었다.
진천군에서는 진천읍·이월면·덕산면·초평면·백곡면·문백면 등에서 직물을 직접 짜서 의복을 생성하였다. 그러나 백곡면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직물을 짠 경험이 별로 없다는 기록으로 보아 진천읍·덕산면 등지에 장이 크게 섰으므로 상업 경로를 통해 의복을 구입한 것이 아닐까 한다.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삼베·모시 등의 옷감을 이용하여 의복을 형성하였으며, 봄·가을·겨울철에는 무명을 기본 재료로 하고 기온에 따라 의복에 솜을 넣어 만든 솜바지·솜저고리 등의 보온성에 중점을 둔 의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진천 지역은 대체적으로 약 30년 전까지 베를 짜서 의복을 만들어 입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역에 따라서는 20년 전까지도 베를 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으로 수공업으로 이루어지던 의복은 점차 상업적인 재화의 교환을 통해 구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