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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마을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641
한자 碧波-洞祭
영어음역 Byeokpa Maeul Dongje
영어의미역 Byeokpa Village Tutelary Festival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설|대보름|추석
의례장소 당집
제관 마을사람들

[정의]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벽파마을에서 매년 설날, 정월 대보름, 추석에 당집의 당할아버지께 올리는 마을제사.

[개설]

벽파리는 본래 전라남도 진도군 고일면 지역으로서, 벽파정이 있어서 벽파정, 또는 벽정이라 불렸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동리, 벽동리와 군일면의 용장리를 병합하여 벽파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고,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 이름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벽파적’이 ‘벽파장’으로 와전되었으며 ‘뱀파장’, ‘별파장’ 등도 모두 벽파정의 와전이다. 벽파는 해변의 벽도를 미화해서 붙인 이름으로, 벽파항이라고도 한다.

주민들이 많이 살 때는 175호에 달했으나 지금은 68호가 살고 있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과 대파, 배추이다. 현재 주요 성씨로 김해김씨 20호, 이천서씨 10호, 밀양손씨 8호, 밀양황씨 3호 등이 살고 있다.

마을 공동재산으로 마을회관과 마을창고가 있다. 마을조직으로는 30명의 회원이 애사시 상부상조하는 상조계와 함께 마을주민 전체가 회원이 되어 친목 및 상부상조를 도모하는 동계가 있다. 마을 내 유물유적으로 이충무공 전첩비와 벽파정 유허지, 공적비 다섯 개가 있다. 마을의 주요시설로 마을회관, 벽파항, 공동화장실이 있다.

마을에서 바닷가로 동북쪽 산모롱이 끝 길가 숲이 우거진 곳에 당집이 모셔져 있다. 매년 설, 대보름, 그리고 추석 등의 명절 때 세 번에 걸쳐서 동제를 모신다. 세 번의 당제를 모시는 중, 대보름 때에는 굿도 치고, 바닷가에 짚을 깔고 열두 개의 제상을 차려 용왕제라고 부르는 갯제도 모신다.

이곳 동제는 마을사람들은 ‘당제’ 또는 ‘당지사’라고 부른다. 모시는 신은 ‘당하납씨당(할아버지)’이다. 할머니는 완도에 있다고 전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다.

당제는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모신다. 마을에 그 달 들어 초상이 났을지라도 날짜를 변경하지 않는다.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당이 있는 주변에서는 조심을 하며, 신심이 두텁다.

[연원]

벽파마을에는 당할아버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 진도 벽파와 바다 건너 해남의 옥동에는 예전부터 나룻배가 다녔는데, 날씨가 좋지 않을 것 같으면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루터 위쪽 바윗돌에 나타나 깃발을 흔든다고 한다.

그로 인해서 죽을 뻔한 사람이 살게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할아버지의 공에 감사하는 뜻으로 당제를 모셨옥고 한다. 그때 할아버지가 흔들던 깃발을 ‘당깃발’이라 하여 5방색으로 만들어 모셔놓고 당제를 모실 때는 사방에 꽂아둔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집은 조그마한 집의 형태이다. 높이 70㎝, 폭 100㎝ 정도의 집 모양을 하고 있다. 지붕은 양철, 벽과 바닥은 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나머지 세 방향은 막혀 있고 앞쪽으로 외문을 달고, 다시 그 안쪽으로 내문을 달았다.

내문 안쪽으로는 옥돌로 만든 할아버지상이 놓여 있고, 뒤쪽에는 깃발과 옷이 있다. 깃발은 5방색 다섯 개이며, 흰 당목으로 만든 옷은 당할아버지에게 바치는 것으로 매년 속옷까지 포함해서 한번을 마련하여 넣어둔다. 전에 있던 옷은 당제가 끝나면 태워버린다.

옷 속에는 돈도 넣어둔다. 그리고 당집 옆에는 3되 들이쯤 되는 단지가 놓여 있다. 단지 속에는 누룩과 물을 담아두는데 당할아버지에게 바치는 술단지이다.

당집은 전에 있던 것이 낡아서 5년 전에 새로 지었고, 이전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 그리고 당집 안에 있는 당할아버지 상은 십수 년 전에 새로 제작해서 모시고 있다. 그 이전에도 당할아버지 상이 있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지만 없어졌다.

예전의 당할아버지 상은 지금의 것보다 조금 컸고, 백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외지 사람이 팔아먹으려고 훔쳐갔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자였던 예전 이장이 없애버렸는지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당제의 준비는 제관을 뽑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보통 사흘 전에 뽑는다. 세 번을 모시기 때문에 매번 제관을 뽑는다. 마을에 일진을 보는 한학을 하신 분이 있어서 매년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나이에 해당되는 사람의 명단을 뽑아주면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의 개발위원들이 협의하여 제관을 정한다.

제관은 최소한 세 명을 뽑는다. 헌관, 축관, 그리고 제물을 마련하는 사람을 뽑는데, 이들을 모두 제관이라 부른다. 이때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을 가장 까다롭게 가린다. 제물을 만드는 집에는 사흘 전부터 왼새끼로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깐다. 요즈음은 이장집에서 주로 제물을 만들지만, 이장이 생기가 맞지 않으면 다른 깨끗한 집에서 제물을 준비한다.

제사에 필요한 경비는 마을의 돈으로 한다. 제물은 장에서 사오는데, 요즈음은 읍내에 상설시장이 있어서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이장과 제관들은 필요한 제물을 살 때 가격을 깎지 않는다. 필요한 제물을 사오면 제수를 준비하는 집에 가져다 보관한다.

또한 동제 사흘 전에 마을의 우물 하나를 골라 금줄을 친다. 당에 올릴 제물을 만들 때 이 물만 쓰고 제관들도 이 물로 목욕을 한다. 다른 사람은 물을 길어가지 못한다. 또 사흘 전에 당집 주변을 청소하는데, 제관들을 중심으로 마을사람들이 돕는다.

제사를 모시는 당일 아침에 당집이 있는 곳에 차일을 친다. 그리고 주변에 금줄을 걸고 황토를 깔아서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다. 제관들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 제관들은 아침부터 차일 안에서 자리를 지킨다.

[절차]

초저녁부터 제상을 놓고 그 위에 촛불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제청 입구에 장작불을 피워놓는다. 대보름 때에는 당굿을 치는데, 미리 마을을 돌면서 굿을 치고 특히 우물가에 가서는 물이 잘 나오라는 뜻에서 샘굿을 친다. 샘굿이 끝나면 마을회관에서 기다리다가 당제가 끝났다는 기별이 오면 당에 나가서 당굿을 친다.

밤 11시경에 제사가 시작된다. 각 가정에서도 이 시간에 맞춰 차례를 모신다. 제물을 마련한 집에서 제관들이 제물을 들고 와서 당집 바로 앞에 놓인 제상에 진설을 한다. 여자들은 음식을 장만할 수는 있지만, 제사를 모시는 곳에는 올 수 없다.

제사는 헌관을 중심으로 하여 술잔을 올리면서 여러 차례 재배를 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절을 하는 횟수는 정해져 있지 않고 당시 참가한 제관들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칙은 여러 차례 하여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제사가 끝나면 제상에 놓인 제수를 조금씩 떼어내 한지에 싼 다음 한쪽 귀퉁이에 놓아두면서 “모든 사람들 많이 잡수고 가십시오.” 하고 소리를 한다. 헌식이 끝나면 소지를 한다. 참여한 제관들이 모두 소지를 하는데, 마을 전체 소지를 올리고 나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 수대로 소지를 올려준다.

각각의 마을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큰소리로 그 사람에 해당되는 내용의 구축을 함께 한다. “○○○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 “○○○ 오늘 너 합격 분명히 되어야 한다.” “○○○ 잘 살게 해주십시오.” 등 해당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 소원하는 바를 빈다.

소지가 모두 끝나면 제관들은 철상을 하고, 그 사이 마을회관에 있던 굿치는 사람들이 와서 당굿을 신명나게 친다. 당굿이 끝나면 제관들과 함께 마을회관으로 돌아온다. 회관에 기다리고 있던 마을사람들과 제상에 올렸던 음식으로 음복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대보름날은 형식을 달리한다. 당집에서 제사가 끝나면 다시 바닷가로 나간다. 어디에 상을 차릴 것인지는 그날 일진을 보아서 장소와 방향을 잡는다. 바닷가에 짚을 깔고 12상을 준비한다. 그 앞에서 제관들은 다시 절을 하면서 제사를 모신다. 용왕제라고도 불리는 갯제의 성격이다. 바닷일이 순조롭기를 비는 뜻에서 올리는 제사로, 여기에서 굿을 친다.

굿을 칠 때는 거의 날이 샐 때까지 노는 경우가 많다. 샘굿, 당굿, 용왕굿을 치고 나면 여러 가정을 돌면서 마당밟이도 해준다. 그러다 보면 날이 밝는 때가 많다.

제관들은 제사를 모시고 나서도 3일간은 궂은 곳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근신한다.

많은 사람들은 당할아버지의 공덕을 믿고 있다. 당집에 갖춰진 것들도 당할아버지의 이야기와 관련된 흰옷과 깃발 등이다.

벽파마을에는 당집 주변에 오줌을 쌌다가 자지가 부어서 크게 혼이 난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떤 사람은 당집 주변에서 오줌을 쌌다가 자지가 퉁퉁 붓자 그 어머니가 새로 메를 짓고 제물을 장만하여 빌었더니 나았다고도 한다.

벽파마을은 6·25전쟁 때도 당제를 모셨다고 한다. 그 덕분에 다른 마을에 비해서 큰 피해가 없었다고 믿고 있다. 또 당집 입구에 앵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다른 앵두보다 훨씬 크게 열매가 맺는다고 한다. 이 역시 마을사람들은 예사로운 일로 여지기 않는다.

마을사람 중에는 개인적으로 공을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마을의 한 부인은 매달 보름 새벽 4시에 당집에 촛불을 밝히고 정화수를 떠다 바치면서 비손을 한다고 한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건강히 잘 크고 밥벌이도 잘 한다고 믿고 있다. 또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개인적으로 공을 들여 손을 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제물/용품/제구]

제물은 주과포를 올리고, 나물과 돼지머리도 삶아 올린다. 제수를 만들 때 매운 고춧가루는 쓰지 않는다. 그리고 술잔과 메, 탕 각 3그릇씩을 올린다. 국은 반드시 듬부기국을 끓인다. 당할아버지와 두 할머니들 상이라고 한다.

[부대행사]

연말에 마을 총회에서 여러 가지 마을 일에 대해 상의하고, 또 당제의 결산도 하게 된다. 당제가 끝나고 난 뒤 마을회관에 모여 돼지머리를 음복하고 남자들은 밤새워 회관에 모여 논다.

예전에는 억세게 줄다리기도 했다. 짚을 걷어서 대보름 사흘 전에 외줄을 만들어두었다가 대보름날 낮에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했다. 여자편이 이겨야 그 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전한다.

[금기]

초상난 집의 사람이나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은 당제에 관여할 수 없다. 일단 제관을 맡게 된 사람은 궂은 곳에 가지 않고 궂은 사람과 만나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집 안에만 머문다. 또 사흘 동안 매일 목욕을 하고 부부생활을 하지 않는다.

또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이라도 유고가 있는 사람은 제관이 될 수 없다. 집안에 상을 당하거나 아이를 낳은 집 사람은 우선 배제된다. 그리고 그 달 들어 개고기를 먹은 사람이나 제사 시기에 집사람이 달거리가 있는 경우도 안 된다. 비록 이장이라고 하더라도 생기가 맞지 않으면 당 출입은 금지된다.

[현황]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당제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제를 앞으로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몇 년 전부터 당집을 새로 만들어줄 것을 군청에 요청하고 있다. 당집을 개수, 또는 새로 제작해야 하겠다는 마을 사람들 말 속에는 강한 전승 의지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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