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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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念丈-洞祭 |
영어음역 | Yeomjang Maeul Dongje |
영어의미역 | Yeomjang Village Tutelary Festival |
이칭/별칭 | 염장마을 거래제,염장마을 거리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염장리 염장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염장리 염장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개설]
염장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일 아침 7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당제와 거리제를 동시에 지내고 있다.
[연원]
당제와 거리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들은 마을이 성촌되면서부터 지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 있었던 참솔나무의 수령이나 입석이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아 당제의 역사도 그만큼 되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주민들이 알고 있는 한 중단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제일도 예전부터 음력 1월 1일이었다고 한다. 이때에 마을에 초상이 나더라도 당제와 거리제는 중단하지 않으나, 초상집에 간 사람은 참여할 수 없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제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당집에서 지내며, 거리제는 마을 앞 삼거리에 있는 후박나무와 주변의 길에서 지낸다.
당집에서 지내는 제사는 당할머니에게 지내는 것이고 후박나무에서 지내는 제사는 당할아버지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주변의 길에서 지내는 제사는 거리를 떠도는 임자 없는 귀신들을 위해서 지내는 제사라고 한다.
당할머니와 당할아버지에게 지내는 제사는 일반적인 제사와 제물과 절차가 유사하지만 거리제는 갈파래와 메생이를 넣은 국을 끓여 마을의 동서남북 방향에 짚다발을 놓고 그 위에 놓아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당집이 있던 곳에는 원래 수령이 매우 오래된 커다란 당목나무(참솔나무)가 있었다. 두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될 정도로 굵었으나 해방 전에 고사했다.
현재의 당집을 지은 것은 40년 정도 되었다. 그 전에는 짚으로 엮은 움막이 있었다.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당제를 지내기 전에 짚으로 엮은 마람을 갈아주었는데, 주민들이 귀찮다고 해서 블록을 쌓아서 당집을 지었다고 한다.
당집의 높이는 어른 키보다 더 낮고 넓이도 1미터 정도로 아담한 크기이다. 당집 양옆으로는 입석이 세워져 있는데, 예전부터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당집보다 낮은 높이의 반원 모양의 돌담이 당집을 둘러싸고 있다. 당집 안에는 줄이 걸려 있는데, 줄에는 마을주민들이 걸어둔 수건과, 무속인이 공들이기 위해 걸어둔 한복이 있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제관은 동제가 열리기 일 주일 전에 이장과 개발위원, 마을의 유지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유고가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한 명을 선정한다.
제관은 이장과 함께 장을 보며, 제물도 직접 요리해야 한다. 당제에서 쓰이는 제기도 제관집 그릇으로 사용한다.
[절차]
음력 1월 1일 아침 7시경에 제관과 남자주민들 6~7명이 함께 당집에 오른다. 아무런 하자가 없는 사람들만 제를 지내러 올라갈 수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약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걸궁을 치고 당집에 올라갔다. 지금은 걸궁도 치지 않고, 산에 올라가는 사람 숫자도 줄었다.
당집에 도착하면 주변에 있는 띠풀을 베어서 당집 바닥에 깔고 상을 차린다. 띠풀대신 마을에서 짚다발을 가지고 올라가기도 한다.
상차림이 끝나면 분향, 강신, 재배, 초헌, 아헌, 종헌의 순서로 제가 진행된다. 예전에는 독축도 했으나 50여 년부터 하지 않고 있다. 축문도 분실되었다. 대신에 구축을 하는데, “동네 모든 부정 없이 농사 잘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한다.
소지는 제관이 올리며 15장을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에는 객지에 있는 자녀들과 마을과, 작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말을 한다.
소지가 끝나면 상에 올린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돌 아래에 묻는 것으로 헌식을 한다.
당할머니에게 지내는 제사가 끝나면 마을로 내려와 마을 앞에 있는 후박나무 앞에서 당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 후박나무는 얼마 전에 새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제를 지내는 내용과 절차는 당할머니에게 지내는 제사와 같다.
당할아버지에게 지내는 제사가 끝나면 길밥, 거래밥을 놓는다. 길밥은 모두 12그릇으로 동네의 동서남북 방향에 짚다발을 깔고 그 위에 갈파래와 메생이를 넣고 끓인 국을 놓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것을 거리제, 혹은 거래제라고 한다. 거리제는 임자없는 귀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제물/용품/제구]
제물은 제를 지내기 하루 전에 장을 봐서 마련한다. 장은 2일과 7일에 서는 진도읍장을 이용한다. 장을 볼 때에는 음력설과 겹치지만 설음식과 제를 지낼 제물을 따로 구입한다.
제물로는 메 두 그릇, 생선국 두 그릇, 정화수 한 그릇, 나물(숙주나물·콩나물·시금치나물·무나물·고사리나물), 생선, 과일(밤·대추), 포(명태포), 쇠고기산적이다.
[부대행사]
당제와 거리제에 관한 본격적인 준비는 일주일 전에 시작되지만 주민들은 약 한 달 전부터 제를 지낼 준비를 한다. 제사에는 남성들만 참여하며, 제사에 참여하거나 제관을 할 사람은 한 달 전부터 미리 조심한다.
주민들은 제를 지내기 4~5일 전 당집에 올라가기 쉽도록 풀을 베고, 길을 닦는다.
당제와 거리제가 끝나면 회관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예전에는 당제와 거리제를 지내고 나서 정월 보름까지 가가호호 방문하며 걸궁을 쳤는데, 40년 전에 중단되었다. 또한 보름에 마을을 동서로 갈라서 줄다리기도 하였으나 역시 50여 년 전부터 흐지부지되었다.
[금기]
제관으로 선정되면 상갓집, 산고든 집을 방문하지 않고, 짐승 죽은 것도 보지 않아야 한다. 부정 탄 음식도 먹지 않고, 부부간 잠자리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조심하기 위해 집에서 해준 음식만 먹고, 외출을 삼간다. 예전에는 제관 집 앞에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했으나 현재에는 금줄을 치지 않는다.
동제를 지낼 제물은 제관이 직접 요리하는데, 요리를 하기 전에 목욕을 하고 화장실에 가지 않아야 한다. 이 때문에 제관은 동제가 끝날 때까지 거의 굶다시피 한다. 음식의 간도 보아서는 안 된다.
[축문]
예전에는 독축도 했으나 안 한 지 50년 정도 되었다. 축문도 분실되었다. 대신에 구축을 하는데, “동네 모든 부정 없이 농사 잘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한다.
[제비]
동제를 지내는 비용은 마을기금으로 충당한다. 마을기금은 동답에서 나온 수익금과 마을에서 상여가 나갈 때 운상을 하면서 받은 ‘천돈’을 모은 것이다.
당제와 거리제에 관한 결산은 양력 12월 말에 열리는 마을동계에서 이루어진다. 동제에 들어가는 비용은 총 25만 원 정도로, 제수를 마련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20만 원 정도이고 제관 수고비로 5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현황]
염장마을 동제는 당할머니에게 지내는 제사와 당할아버지에게 지내는 제사, 임자 없는 귀신들을 위한 제사로 삼 분화되어 비교적 고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임자 없는 귀신들을 위한 거리제에서 파래와 메생이를 넣은 국을 제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도서지역 동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비교적 순탄하게 지나온 이유를 동제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승가능성은 비교적 높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