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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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商業 |
영어의미역 | commerc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이수진 |
[정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입하여 ‘최종 소비자 또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자’에게 재화를 판매하는 사업.
[개설]
경제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상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개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업은 경제발전단계에 조응하여 변화·발전하여 온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개념에 대한 완전한 정립은 명확하지 않다.
[변천]
진주에 도시 상업을 대표하는 상업기관인 시전(市廛)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884년 1월이었다. 진주에 설치된 시전은 네 가지였다. 베 종류를 취급하던 포전(布廛), 어물(魚物)과 과일을 취급하던 어과전(魚果廛), 각종 비단을 취급하던 금전(錦廛) 그리고 각종 종이류를 취급하던 지전(紙廛)이 그것이다. 1895년 이후에는 진주군수가 분사무장을 맡았던 진주상무사(晋州商務社)가 설립되어 도내에서 활동하던 보부상과 상인단체를 보호·관리하였다.
개항 이후 일제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과정에서 민간 상업자본은 일본의 상업자본 진출로 크게 위축되었으나 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품 유통은 더욱 발전하였다. 당시 진주지역에는 7개의 시장이 있었다. 군내 시장으로 진주시장을 비롯하여 금동어(金冬於)[금곡] 시장, 수곡시장, 반성시장, 설매곡(雪梅谷)[대곡] 시장, 문산시장, 안간(安磵)시장[미천시장] 등이 있었으며, 이들 시장이 진주지방 상업의 중심적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였다. 군내 시장 가운데 진주시장은 당시로서는 경상남도 제일의 시장으로 인근에 있었던 사천·하동·곤양·의령·고성·삼가·합천·산청·함양·안의·거창 등 13개 군의 물화가 집산되던 큰 시장이었다.
이후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부산을 발판삼아 진출한 일본자본과 일본인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상남도 지역의 상업이 많은 발전을 보게 되었다. 이 무렵 진주에는 지수면 청담리에 지수시장이 개설되어 7개이던 시장이 8개로 늘어났다. 1924년을 기준으로 이들 시장의 상품별 거래액을 보면, 전체 거래액 375,576원 가운데 축산물이 126,157원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농산물 115,698원, 수산물 63,525원, 잡화류 38,724원, 직물류 31,472원 순으로 농·축산물의 거래가 대종을 이루었다. 이후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진주에 있었던 경상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한 1925년부터 진주읍이 진주부로 승격된 1939년까지의 상품별 전체 거래량에 있어서도 역시 농·축산물의 매매고가 가장 높게 나타나 농촌 경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표 1) 연도별 상품별 거래동향
(단위: 원)
자료: 『백이십년사』(진주상공회의소, 2006)
1939년에는 진주읍이 진주부로 승격되면서 진양군으로 분리·독립되었다. 이 당시 진주부와 진양군의 시장 거래액을 비교해 보면, 진주부내 3개 시장의 연간 거래액이 345만 5835원인데 반해 진양군내 7개 시장에서 거래된 유통액은 28만 3160원으로 8.1%선에 머물렀다.
한편 일제강점기를 통해 일본인의 진출도 크게 늘어나 상업 등 서비스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증가하였다. 일본인의 진주 진출은 1903년에 1가구 2명을 시작으로 한일합방 직전인 1909년에는 250가구 935명,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에는 278가구 1,025명으로 불어났고, 1914년에는 627가구 2,328명으로 증가하였다. 이후 경상남도청의 부산 이전으로 증가세는 주춤하였으나 1938년 조사에서는 763가구 2,746명으로 나타났다. 1939년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일본인이 138가구 589명이었던 반면 한국인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가구는 1,390호에 6,770명으로 집계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까지 진주지역의 경제 중심은 농업과 경공업이었다. 이 중에서도 제일 비중을 많이 차지한 산업은 농업으로 평균 30% 이상을 차지하였다. 상업의 경우, 1957년부터 1959년까지 관련 종사자수는 각각 1,854명(남자) 1,197명(여자), 2,382명(남자) 1,227명(여자), 2,283명(남자) 1,295명(여자) 정도였다. 1950년을 전후로 진주지역에는 중앙시장, 천전시장, 서부시장, 가축시장 등 5개의 공설시장이 있었다. 중앙시장만 755개의 점포로 규모가 컸지만 천전시장과 서부시장은 소규모였다. 1971년에는 도동시장을 선두로 동아상사, 자유시장, 제일쇼핑 등 4개 시장이 새로 개설되었다.
도·소매업 상점의 경우 1962년에는 1,337개에 불과했으나, 1970년에 138%가 증가하여 3,184개로 늘어났다. 1981년도에는 1962년에 비해 212%가 증가한 4,181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 비해 도·소매업 상점의 증가율은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그 이유는 진주지역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지 않아 소비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8년부터 1981년까지의 도·소매업 상점을 총괄하면 (표 2)과 같다.
(표 2) 1968~1981년까지의 도·소매업 상점 총괄
자료: 『백이십년사』(진주상공회의소, 2006)
1980년 이후 지방 시장은 거대자본을 앞세운 인터넷 쇼핑 채널을 통한 홈쇼핑, 대형유통점, 할인점, 백화점 등의 지방 침투로 지역의 재래시장이 큰 타격을 입는 유통산업의 대 소용돌이 현상을 초래하여 구멍가게 등 소자본 영세 점포의 붕괴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1990년 이후 진주지역의 기존 시장에 큰 변화를 준 것은 진주시 초전동 260번지[남강로 1689]에 개설한 진주시 농산물도매시장이다. 진주시 농산물도매시장에서는 2010년 말 현재 거래물량은 일일 평균 194톤(연간 59,481톤), 거래금액은 일일 평균 3억 6900만 원(연간 1127억 9500만 원)이다.
[현황]
2011년 현재 진주지역의 시장분포 현황을 보면, 재래시장 12개, 상가 10개, 대형마트(할인점) 3개, 백화점 1개 등 총 26개의 시장이 분포하고 있다. 재래시장과 상가는 문산읍, 금곡면, 일반성면, 지수면, 대곡면, 미천면, 칠암동, 봉안동, 상봉서동, 상대1동, 이현동, 초장동에 각 1개, 상대2동, 평거동에 각 2개, 중앙동, 강남동에 각 3개씩 분포해 있다. 백화점은 중앙동에 1개, 대형마트(할인점)는 성지동, 상대2동, 하대1동에 각 1개씩 분포해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진주지역의 시장분포현황을 살펴보면, (표 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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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시장분포현황
(단위: 개소)
자료: 『시정백서』(진주시, 2005)
다음으로 상업의 주체라 할 수 있는 도·소매업 현황을 사업체와 종사자수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표 4)과 같다.
(표 4) 진주지역의 도·소매업 현황
(단위: 개, 명)
자료: 『통계연보』(진주시,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