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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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寅 |
영어음역 | Jin In |
이칭/별칭 | 양초(養初)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판도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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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진극경(陳克敬) |
성별 | 남 |
본관 | 여양 |
자 | 양초(養初) |
[정의]
조선 전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양초(養初). 청백리 진유(陳猷)의 증손이며, 백곡(栢谷) 진극경(陳克敬)의 아들이다.
[생애]
어릴 때부터 힘써 배우는 데 뜻을 두었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자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약으로 드렸으나 홀연히 돌아가시자 3년상을 치르면서 돌을 스스로 날라다가 무덤가에 화성(火城)을 쌓아, 불이 나도 옮겨 붙지 못하게 하였다.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가 일어났을 때 같은 고을의 선비요 아버지의 벗인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이 투옥되자 서울까지 올라가서 매일같이 옥문 앞에 서 있었다. 최영경이 풀려나오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 기쁨을 어버이에게 빨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어진이를 사모하는 마음이 이와 같이 돈독했는데 불행히도 요절했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