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20 |
---|---|
한자 | 尹威 |
영어음역 | Yun Wi |
이칭/별칭 | 벽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윤진 |
[정의]
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송(碧松). 고려 숙종 때의 윤관(尹瓘)의 손자로, 남원부사를 지낸 윤언순(尹彦純)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176년(명종 6)에 겨우 1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국자감박사가 되어 국사를 편찬하는 임무를 맡았다. 신종대에 전국 도처에서 민란이 잦아 남원부도 경내가 소란스러웠다. 이때 신종이 윤위로 하여금 남원의 반란을 평정하도록 명하였다.
주위 군사들은 반적들을 군사력으로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윤위는 의리로 담판을 지어 타일러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반적을 분산시켰다. 조정에서 그의 지혜와 용기를 치하하고 남원백에 봉하여, 본래는 파평윤씨(坡平尹氏)였으나 남원윤씨(南原尹氏)의 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