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28 |
---|---|
한자 | 李德恢 |
영어음역 | Yi Deokhu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윤진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무신.
[가계]
본관은 용인(龍仁). 충청남도 천원군 직산면 삼동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하여 1597년(선조 30)에 남원부판관이 되었다. 부임하자마자 정유재란으로 왜군의 재침이 더욱 성하자, 관청에 비축해 둔 재물을 처분하여 소와 술을 사서 모든 장졸들을 배부르게 먹인 다음 남원성을 사수할 계책을 세웠다.
그해 8월 12일경 남원성이 11만여 명의 왜군에 의해 포위되자 손수 판삽(板鈒)을 잡고 사병들과 노고를 함께 하여 장병들이 그의 정의(情義)에 감동하였다. 지원병으로 와 있던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이 우리측 여러 장수들을 꾀어 남원성을 탈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도리어 그를 꾸짖었다.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4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적과 격전을 벌이던 끝에 남원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죽었다.
[상훈과 추모]
이덕회를 비롯하여 여러 충신들을 위한 사당에 제향되었고 조정에서 병조참의를 증직하였다. 정묘년에 정려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