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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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城館址 |
영어음역 | Yongseonggwanji |
영어의미역 | Yongseong Guest House Site |
이칭/별칭 | 휼민관,용성관 석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192-4[용성로 29]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유종국 |
성격 | 객사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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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691년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192-4[용성로 29] |
소유자 | 용성초등학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문화재 지정일 | 1984년 4월 1일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객사 터.
[개설]
용성관은 조선시대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된 건축물이다. 그 규모가 웅장하여 남원에서는 광한루, 관왕묘와 더불어 고대 건물의 삼걸(三傑)로 불렀다. 이후 불에 타서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쳤다.
[변천]
용성관을 처음 건립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인 691년(신문왕 11)인데, 용성관을 휼민관이라고도 하였다. 휼민관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위험에 처하자 병마사 이복남(李福男)이 휼민관을 그대로 두면 태조의 전패(殿牌: 殿자를 새긴 나무패로 임금을 상징)가 왜적에게 욕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소각하였다.
그 후 1620년(광해군 12)에 남원부사 최여립(崔汝立)이 휼민관을 재건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실되고 남쪽의 중문만 남게 되었다. 그 후 1680년(숙종 6) 남원부사 정동설(鄭東卨)이 재건에 착수하여 1690년(숙종 16)에 남원부사 정협(鄭峽) 때 대청을 완성하여 건축물이 완공되었다.
그러나 6·25전쟁 때 폭격으로 전소되었다. 지금은 용성초등학교 본관 계단으로 사용하는 돌계단 1기와 용성관 기단 70여 미터만 남아 있다. 당초에는 계단 1기만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였으나, 1994년 7월 15일 석물 29기를 추가하여 지정하였다.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용성초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6·25전쟁 때 불에 타서 지금은 기단, 계단 석물들만 남아 있다. 계단은 돌로 잘 다듬어진 것으로 보이고 난간 양쪽에 반원형으로 된 석물이 놓여 있다. 그것은 표면에 도깨비상을 조각하여 독특한 모습이다. 1994년에 용성초등학교에 세운 용성관에 대해 기록한 비가 교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