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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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奭器 |
영어음역 | Lee Seokgi |
이칭/별칭 | 매호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석기는 3·1운동 직전까지 덕과면장을 지냈고, 1919년 3월 1일 당시 오수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조카 이광수를 극비리에 서울로 파견하여 오세창, 송팔용 등의 지도자를 만나 지시를 받고 독립선언문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3월 31일자로 면장직을 사임하고 그의 투쟁 의지를 남원군 19개 읍·면장을 비롯 인근 타군 면장에게 통문하여 함께 궐기하자고 권유했다. 식수 기념일인 4월 3일 덕과면민들은 그의 선창을 신호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사매면민들도 호응하여 헌병 분치소를 습격하자 당황한 헌병들은 남원헌병대에 구원 요청하여 기마대가 긴급 출동, 주요 간부들을 체포하는 한편 총검으로 위협하여 군중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이때 체포된 이석기는 갖은 고문 끝에 7년 징역형을 언도받았고,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
[저술 및 작품]
그의 격문으로 「3·1 만세운동 참가 취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