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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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首生-妻李氏 |
영어음역 | Yang Susaengui Cheo Yissi |
영어의미역 | Lady Yim, Yang Susaeng'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윤진 |
[정의]
고려 말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열녀.
[가계]
아버지는 고려시대 문과급제자 이이시(李以時)이고, 남편은 직제학 양수생(楊首生)이다.
[활동사항]
이씨가 임신한 뒤에 곧바로 남편이 죽자 친정 부모는 개가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씨는 “나라의 풍속이 모두 그러한데 어찌 저 혼자만 어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양씨(楊氏)의 핏덩이가 배 속에 있으니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부모는 이 말을 믿고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 이씨가 아이를 낳은 후 부모가 다시 개가를 강요하자 이씨는 “원컨대 젖이 떨어질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젖이 떨어지고 아이가 두 살이 되니 이번에는 부모가 억지로 혼인 날짜를 정했다.
그러나 이씨는 양씨 집안의 두 여비(女婢)와 함께 모의하여 어린아이를 업고 도망하여 남원성의 서쪽에서 살았다.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운봉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 남원이 시끄럽게 되자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시 순창의 귀악산 아래로 피난하였다.
한편 아들이 성장하여서도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이씨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자리에 누웠다. 이를 본 아들이 깨우친 바 있어 사냥 그물을 불에 태우고 서당에 나가 학문에 전념하여 뒷날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양씨족보(楊氏族譜)』에는 정려가 남원성에 있다고 했으나 전란을 겪은 뒤라서인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