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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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州 |
영어공식명칭 | Hanju |
이칭/별칭 | 한산주(漢山州),신주(新州),북한산주(北漢山州),남천주(南川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진접읍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종록 |
제정 시기/일시 | 757년 - 한주 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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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 지역 | 한주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진접읍 |
성격 | 행정구역 |
관련 문헌 | 『삼국사기』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과 진접읍 일대에 있었던 신라 시대의 행정구역.
신라는 삼국 통일 이후에 그 영토에 구주(九州), 곧 9개의 주를 설치하였으며, 한주는 이들 중 하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문왕 조에 따르면 재위 5년째인 685년에 처음 신라가 9주를 갖추었던 것으로 전한다. 삼국 통일 이후 신라는 9개의 주와 5개의 경(京), 그리고 그 하위에 군과 현을 둔 지방 조직을 정비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거의 성(城)과 촌(村)은 통일 이후 현 혹은 향(鄕) 혹은 부곡(部曲)으로 재편되었다. 신라가 백성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를 위한 더욱 세분된 지방 통치 체제를 구축한 결과였다.
나아가 신라는 각 지역의 방위와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9서당(誓幢)과 10정(停)을 배치하였다. 서당은 한산주서(漢山州誓)와 만보당(萬步幢)이 배치되었으며, 정의 경우는 9개의 주에 나누어 배치하였는데, 한주의 경우 특별히 남천정(南川停)과 골내근정(骨乃斤停)의 2개 정이 할애됨으로써 한주 지역의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형성 및 변천]
신라는 한강 유역을 553년(진흥왕 14) 백제로부터 빼앗은 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557년 신주를 북한산주(北漢山州)로, 568년 다시 남천주(南川州)로, 그리고 604년(진평왕 26) 다시 북한산주로 고친 후 한산주(漢山州)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1세기 가량 ‘한산주’라는 명칭이 유지되었으나, 757년(경덕왕 16)의 구주 전체에 대한 명칭 변경이 있었으며, 이때 한산주는 한주라는 이름으로 처음 칭해지게 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757년 개편 당시 한주는 소경(小京)인 중원경(中原京)과 27개 군(郡), 46개의 현(縣)을 관할하였으며 주의 직속 현은 2개였다. 한주의 군 중에서 한양군(漢陽郡) 중 과거 고구려의 골의노현(骨衣奴縣)이자 경덕왕 대에 황양현(荒壤縣)으로 개칭된 지역은 오늘날의 남양주시 진접읍·진건면 일대에 해당한다. 지리지에서는 황양현이 고려 시대의 풍양현(豊壤縣)이라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록]
“5년[685] 봄에 완산주(完山州)를 다시 설치하고 용원(龍元)을 총관으로 삼았다. 거열주(居烈州)를 빼서 청주(菁州)를 설치함으로써 비로소 9주를 정비하였으며, 대아찬 복세(福世)를 총관으로 삼았다[五年 春 復置完山州 以龍元為揔管 挺居列州以置菁州 始備九州 以大阿湌福世為揔管]”[『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8 신문왕 5년 봄].
“한주, 본래 고구려의 한산군이었는데 신라가 이를 취했다. 경덕왕이 이를 고쳐 한주로 삼았다. 지금의 광주이다. 거느리는 현은 2개이다[漢州 本髙句麗漢山郡 新羅取之 景徳王改爲漢州 今廣州 領縣二]”[『삼국사기』 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