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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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巖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75[별내동 산97]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윤성호 |
건립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불암산성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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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2월 6일 - 불암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제221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6년 - 불암산성 지표 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 불암산성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불암산성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경기도 기념물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불암산성 -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75[별내동 산97]|서울특별시 노원구 덕릉로94길 128[중계동 산101-45] |
성격 | 산성 |
양식 | 산봉형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불암산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개설]
불암산성(佛巖山城)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불암산[해발 510m]에 있다. 삼국간의 항쟁이 벌어진 한강 유역에서도 아차산, 용마산-망우산-불암산-수락산은 고구려와 신라의 관방 시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불암산성은 아차산 일대 보루군과 수락산 보루군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는 관방 시설로, 서울 아차산성과 양주 대모산성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신라 방어선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또한 동쪽으로는 국사봉보루와 퇴뫼산성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있다. 불암산성은 경기도와 서울특별시의 경계에 있어 경기도 기념물 제221호,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2호로 동시에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불암산성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산97번지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산101-45번지 경계에 있는 불암산 남쪽 제2봉[해발 420.3m] 정상부에 있다. 불암산은 남북으로는 아차산과 수락산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있는데, 동쪽으로는 왕숙천을 통하여 연결되는 교통로와 서쪽으로는 중랑천을 통하여 연결되는 교통로를 관장하는 요충지에 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불암산에 검암산 보루가 있는 것으로 기술되었고, 유사한 내용이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도 확인된다. 그렇지만 검암산 보루는 불암산성과 무관하게 오류가 많은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 고적 조사 과정에서 불암산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둘레 300보 정도의 산성 혹은 봉수지로 보고되었다. 1989년 『한국의 성곽과 봉수』에서는 산성과 봉수로 결합된 형태로 소개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지표 조사가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학술 조사로는 2016년 지표 조사 자료를 기초로 2018년부터 연차적인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형태]
불암산성은 불암산의 제2봉 하단부 능선을 둘러싼 산봉형의 석축산성이다. 불암산성은 둘레가 230m이고, 남북으로 폭이 65m, 동서로 70m의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성벽은 편축식으로 축조되었다. 상단부는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지만 잔존 높이는 4~5.5m이고 방형 또는 장방형의 치석된 면석을 바른층쌓기로 하였다. 북벽과 남벽에서는 부분적으로 1~3단의 단면삼각형 기단보축 후 점토로 덮은 흔적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1~2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졌는데, 원래 성벽의 높이는 5~6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은 지표 조사 때 북문과 남문지 2개소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발굴 조사 결과 남문터만 확인되었다. 남문터는 현문식이며 남벽에서 서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으며, 좌우는 약간 회절하면서 돌출되어 있는 형태이다.
[현황]
불암산성 내부에서는 소규모 목곽고와 주거지가 확인되어 불암산성에 운영 양상을 유추할 수 있으며, 지표 조사에서 봉수와 관련된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불암산성에서는 토기와 백자 등 자기류가 수습되었지만, 기와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출토된 토기는 6세기 후반 이후 신라 토기가 주를 이루지만, 목곽고 바닥에서는 통일 신라 시대의 표지적인 유물인 인화문토기편과 성 내부 수혈에서는 나말 여초의 편병도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를 통하여 외벽 보축이 갖춰진 석축 성벽의 특징이나 성문의 구조, 출토된 유물을 통하여 불암산성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에 축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의의와 평가]
불암산성은 발굴 조사를 통하여 6세기 후반 신라의 북진 이후에 축성된 신라의 관방 시설이며 통일 신라 시대에서 후삼국 시기까지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한강 유역으로 진출한 신라가 한강에서 임진강에 이르는 교통로를 중심으로 관방 시설을 구축하고 나당전쟁까지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아차산성에서 양주 대모산성을 남북으로 연결하고, 동서로 국사봉보루와 퇴뫼산성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어 비록 소규모의 관방 시설이지만 역사적으로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