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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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秉哲 |
영어공식명칭 | Nam Byungchul |
이칭/별칭 | 자명(字明),원명(元明),규재(圭齋),강설(絳雪),구당(鷗堂),계당(桂堂),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선기 |
출생 시기/일시 | 1817년 - 남병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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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37년 - 남병철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49년 - 남병철 전라도관찰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859년 - 남병철 대제학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863년 - 남병철 사망 |
묘소|단소 | 남병철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로68번길 48[청학리 산27-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의령(宜寧) |
대표 관직 | 전라도관찰사|대제학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남병철(南秉哲)[1817~1863]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자명(字明)·원명(元明), 호는 규재(圭齋)·강설(絳雪)·구당(鷗堂)·계당(桂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일구(南一耉)이고, 할아버지는 남종헌(南宗獻)이다. 아버지는 판관 남구순(南久淳)이고 어머니는 김조순(金祖淳)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동생은 남병길(南秉吉)이다. 부인은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딸 안동 김씨이며, 아들은 남세우(南世祐)이다.
[활동 사항]
남병철은 1817년(순조 17)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외삼촌 김유근(金逌根)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37년(헌종 3) 정시 문과에 병과 3위로 급제하였다. 1849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851년(철종 2) 승지를 거쳐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59년 홍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1862년(철종 13)에는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 낭청(郎廳)을 맡았다.
남병철은 노론 계열의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특히 김좌근(金左根)·김흥근(金興根)·김병학(金炳學)·조두순(趙斗淳)·윤정현(尹定鉉)·박규수(朴珪壽)·김정희(金正喜) 등과 가깝게 지냈다. 남병철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글씨와 그림으로 소일하다가 1863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남병철은 과거 급제 이후에는 주로 경세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철종 대에 상수학(象數學)에 관심을 쏟아 1850년대 초반 『의기집설(儀器輯說)』을 저술하였다. 1861년 『해경세초해(海鏡細草解)』를 찬술하고 1862년에는 『추보속해(推步續解)』를 편찬하였다. 『의기집설』은 천문 의기(儀器)의 제작법을 다룬 것이고 『해경세초해』는 기하학에 해당하는 구고법(句股法)을 고찰한 것이며 『추보속해』는 역법을 연구한 저술이다. 1864년(고종 1) 동생 남병길이 남병철의 문집인 『규재유고(圭齋遺稿)』를 간행하였다.
[묘소]